석양이 아름다운 빌레로 형성된 돌코지 산물 
석양이 아름다운 빌레로 형성된 돌코지 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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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섬의 산물] 112. 옹포리 바릇물

제주시 한림읍 옹포리에는 삼별초 일화가 전해 내려온다.

고려 장군 김통정이 삼별초군을 이끌 때 삼별초 본진이 옹포 포구로 들어왔다. 해안망태(海岸望台)와 본성을 축조하여 명월진(明月鎭)을 둔 항몽 역사의 시발점인 셈이다. 삼별초를 격퇴하기 위하여 상륙 작전을 전개한 여·몽 연합군 본대도 이 포구를 이용하여 입도했다.

마을 이름은 ‘바위 너설로 이뤄진 개’이면서 하나뿐인 포구라는 뜻에서 ‘독개’라고 불렸다. ‘독’은 ‘너럭바위(제주어로 빌레)’로 빌레로 형성된 개라는 뜻이다. 그래서 이 마을은 ’돌캐, 돌코지‘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지형이 항아리와 같다고 하여 한자 차용 표기로 옹포(瓮浦)리로 개명했다고 알려진다.

이 마을은 예전부터 옹포천에 풍부한 물이 있어 식수를 얻는데 별 어려움이 없던 곳이다. 누운오름 남사면에서 발원하는 옹포천은 하천 길이가 짧지만 하류에서 많은 양의 물이 용출한다. 일제 강점기에 와서 한림항이 개발되고 해안가 독개빌레 주변에 일본 거류민들에 의해 식품, 제약, 직물, 전분, 술 등을 생산하는 공업지대와 군수품 납품 등 상공업이 활발했던 마을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옹포천의 풍부한 물 덕분이다. 지금 옹포천 하류는 지역의 문화, 역사가 소통하는 추억의 강으로 되살리는 ‘고향의 강’ 사업으로 산물을 이용한 실외 수영장이 조성되어 있다.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옹포천.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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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포천 실외 수영장.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그러나 바닷가 동네는 옹포천까지 허벅을 지고 물을 길러 가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다행스럽게도 솟는 양은 많지 않지만 넉넉한 정도의 물통을 가진 산물이 바닷가 동네에 솟아났다. 이 산물은 서북쪽으로 길게 내뻗은 독코자 포구 동측 변에 홀로 떨어져 새색시까지 다소곳이 자리 잡은 바릇물이다.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정비 전 바릇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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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비 후 바릇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바릇(바르)’는 ‘바다’의 옛말이다. 바닷가에 있는 산물, 바닷가에서 솟아나는 물이란 의미로 바릇물이라고 하는데, 옛 모습이 비교적 잘 간직한 몇 안 되는 제주 산물이다. 주위를 두른 돌담은 정성을 많이 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산물은 비양도가 한 눈에 보이는 마을 중심 바닷가에 있다. 용암 암반을 그대로 이용한 사각 식수통과 물팡 등 비교적 옛 모습이 잘 보전되어 있다. 조선시대 때는 명월수전소가 있어 수군주둔지의 군사용으로, 그리고 포구와 옹포리 중동의 식수로 사용되었던 귀한 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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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릇물 내부 모습(바다 방향).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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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릇물 내부 모습(마을 방향).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바릇물은 용암층 밑을 흐르는 지하수가 해안 지대의 용암 말단부에서 솟는다. 상수도가 들어오기 전까지 음료수로 사용했던 옹포 바닷가의 유일한 생명수였다. 바릇물은 바르물로 부르기도 하는데 요즘에 와서는 어원 변형으로 바른물로 통용되고 있다. 이 산물의 특징은 돌담으로 둘러싼 영역이 크지 않아 사각 식수통을 중심으로 물의 영역을 단순화하여 생활용수로 사용했던 산물이다. 그래서 이 산물에서는 음식물을 씻거나 빨래만 하였다. 목욕은 옹포천에 가서 하거나 산물 밖으로 흘러나오는 물을 받아서 사용했다.

바릇물 아래쪽에 있어 ‘바릇물알원’이라 부르는 원 모양의 장소가 있다. 풍족한 해산물과 물고기가 모여들 수 있는 터전을 제공해주고 있다. 그런데 이 원은 바릇물 바로 아래쪽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독코지 안쪽 후미진 곳인 조금 서쪽에 치우쳐 있다. 이 원은 물목에 긴 둥근 꼴로 약 32m의 담으로 둘러막아 원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한동안 상수도의 보급으로 주민들이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오다가, 2014년에 산물 주변과 입구를 옛 모습을 그대로 보전한 채 정비해 마을의 작은 쉼터가 됐다. 올레길 탐방객들이 체험장으로 잠시 쉬어가는 곳이다. 그리고 주차장으로 사용하던 공터에는 주민들이나 탐방객들이 쉴 수 있도록 초가를 형상화한 바위그늘집을 만들어 놓았다.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바릇물 정비 표석.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산물 입구에 있는 안내석(표석)은 정비 후 세웠다. “제주의 주요한 자산으로 우리 모두가 소중하게 간직하고 보호하여 후손에 물려주어야 할 소중한 유산”이라고 적혀 있다. 

바릇물은 물팡과 물통, 그리고 돌담 등을 예전 모습을 그대로 지키면서 모범적으로 정비했다. 불편하고 모양새 없다는 이유로 180도 개조하여 목욕탕 등 정체 불명의 산물로 만들어 버린 다른 마을들에게 귀감이 된다. ‘바른’이란 이름 그대로 흐트러짐이 없고 규범에 맞는 산물의 가치가 담겨져 있다. 

또한 맑고 풍부한 옹포천이 마을을 가로지르고 있지만 한 방울이 물도 결코 헛되이 쓰지 않고 마을의 생명수로써 귀하게 여겼다. 옹포의 물이 곧 마을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교훈적 가치를 후대에 전하고자 하는 의지가 표석에 담겨 있다.

이는 설촌 유적으로 지켜야 한다는 마을 주민들의 강한 향토 의식과 애향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개인적으로 이 산물을 정비하기 전에 마을에 거주하는 청년 회장이었던 제자가 내게 자문을 구하여 같이 산물 현장을 찾고 최대한 옛 모습을 유지하는 것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던 보람도 느껴본다. 

바릇물은 중동 바닷가를 지키고 있지만 올레길을 걷다가 한번쯤 잠시 시간을 내서 시원한 산물에 발을 담가 보자. 비양도가 손에 잡힐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정도로 시야가 확 트여 있다. 붉은 노을이 수놓은 석양빛에 물든 포구가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등 주변 경관에 매료되기에 충분하다.

그래서인지 보면 볼수록 비양도와 더불어 한 폭의 그림이 되고 더더욱 애착이 가는 정감 어린 산물이다. 규모는 작지만 옹포천만큼 세차게 솟아 바다를 향해 유유히 흘러간다.
 

#고병련(高柄鍊)

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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