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시선] 입법권 침해 논란, 공론·설득 중요성 되새기는 계기 되길 

창간 15주년을 맞은 [제주의소리]가 제 '소리'를 내는데 한발 더 다가섭니다. 이름하여 '소리 시선(視線)' 입니다. '소리 시선'에는 일종의 사시(社是)가 담기게 됩니다. 금기의 영역은 없습니다. 다른 언론이 다루길 꺼려하거나 민감한 현안에도 어김없이 '소리 시선'이 향하게 될 것입니다. [편집자 주]
 

지방의회의 핵심 기능은 자치입법이다. 여기서 ‘법’은 조례를 의미한다. 자치입법은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도록 조례를 만들고, 반대로 그것을 저해하는 조례는 없애거나 뜯어고치는 일이다. 개별 의원의 의정활동 평가에 있어서 조례 발의 건수를 주요 지표로 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조례 제·개정은 한마디로 지방의원의 존재 이유인 셈이다. 의원 한테 입법을 못하도록 하는 것은 그의 손발을 묶는 것이나 다름없다. 

‘삶의 질’은 소득에 국한된 개념이 아니다. 환경을 보전하는 것도 그와 직결돼 있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지닌 제주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최근 제주도의회에서 우려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입법권 침해를 의심할 만한 상황이 연출됐다. 전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중심에 선 인물은 홍명환 의원(제주시 이도2동 갑, 더불어민주당)이다. 그는 4월 임시회(8~18일)에 맞춰 ‘제주도 보전지역 관리조례 일부 개정 조례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의 골자는 관리보전지역(지하수자원보전지구, 생태계보전지구, 경관보전지구) 각각의 지구 중 1등급 지역 안에 설치할 수 없는 공공시설에 공항과 항만을 추가한 것이다. 등급 변경·해제가 필요한 경우 도의회 동의를 받도록 하는 내용도 있다.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는 공항이나 항만은 대규모 환경훼손을 유발할 수 밖에 없다는 문제 의식이 깔려있다. 알려진 바로는 이 조례안에 동료의원 23명이 서명했다. 전체의원(43명)의 절반이 넘는다. 

하지만 ‘공항’이란 두 글자가 제2공항 찬성 측을 자극하고 말았다. 이들은 입법예고 자체를 ‘제2공항을 막으려는 속셈’으로 받아들였다. 

조례 개정 중단 요구를 넘어 낙선운동, 도의회 폐지까지 거론했다. 추진 의원들을 ‘공공의 적’으로 간주하겠다는 엄포도 놓았다. 이쯤되면 해당 의원들이 무슨 중죄라도 범한 것처럼 들린다.  

대의민주주의사회라 하더라도 의회 또는 의원의 행위에 대해 얼마든지 이의를 제기하거나 비판할 수 있지만, 이번에는 도가 지나쳤다. 

제주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연대회의)는 이를 입법방해 행위로 규정했다. 논평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위한 토론과 공론화는 전혀 요구하지 않고 물리력을 동원해서라도 실력행사로 막겠다는 것은 도민의 민의를 대변하는 제주도의회에 대한 위협을 넘어 도민사회에 대한 협박”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약효는 곧바로 나타났다. 서명 의원들이 조례 개정을 부담스러워 한다는 소식이 들리는가 싶더니 홍 의원이 발의 보류 입장을 밝혔다. 4월 임시회 의안제출 마감일(28일)의 상황이다.    

그는 페이스북에서 조례 개정은 반드시 필요하다며 ‘철회’가 아닌 ‘’보류‘임을 강조했으나, 다시 추진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사실 관리보전지역에서의 행위 제한 문제는 오래전부터 논란이 돼 온 사안이다. 규제가 너무 느슨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제주특별법(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제주에는 다른 지방에 없는 두 가지 제도가 있다. 절·상대보전지역과 관리보전지역이다. 둘 다 난개발을 막기위한 규제 장치다.

둘 사이엔 괴리가 존재한다. 제주특별법에는 관리보전지역의 각 1등급 지역을 해제하더라도 절대보전지역으로 지정된 것으로 간주한다고 돼 있다. 그러나 절대보전지역에는 공항과 항만을 설치할 수 없는 반면, 관리보전지역 각 1등급 지역에선 가능하다. 쉽게말해 ‘급’은 같으나 ‘대우’가 다른 셈이다. 보전지역관리조례에 그렇게 규정돼 있으니 이 참에 이러한 불합리를 없애보자는 심산도 있었다.    

‘설치할 수 없는 공공시설’에 공항을 추가한 게 제2공항 건설을 원천 봉쇄하는 것인지도 따져볼 일이다. 

관리보전지역 등급 변경·해제 때 도의회 동의를 받도록 한 것은 결국 1등급 지역이라도 도의회가 동의할 경우 공항 또는 항만을 설치할 수 있는 길을 열어뒀다는 얘기가 된다. 

절대보전지역 지정·해제와 관련해선 도의회 동의가 필요하나, 관리보전지역은 그게 없다. 급은 같으나 대우가 다른 두 번째 사례다. 관리보전지역에서 환경훼손을 유발하는 대규모 개발이 진행돼도 절대보전지역이 아닌 이상 도의회는 손을 쓸 수 없다.  

제2공항 예정지 내에 1등급 지역이 얼마나 되는지도 문제다. 제2공항 예정지 면적은 495만㎡. 이 안에는 지하수보전지구 1등급 지역이 5곳에 총 4만4582㎡ 분포해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1%도 안되는 면적이 제2공항 건설의 걸림돌로 작용할 지는 미지수다. 

일각에선 제2공항 찬성 측의 움직임에 도정의 입김이 작용한게 아니냐는 시선을 보내고 있다. 

연대회의는 논평에서 제2공항 찬성 측의 조례 개정 중단 압박과 관련해 “원희룡 도정이 유감을 표명하기는 커녕 벌써부터 재의 요구를 거론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조례 개정이 부당하다는 논리를 설파하며 제2공항 찬성 단체들을 선동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홍 의원 역시 페이스북에서 도청 관계자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재의 요구’ ‘소송’ 등을 운운한 정황이 있다며 “갈등 조장과 분탕질을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도정의 이전 모습을 보면 억측으로만 들리지는 않는다.  

제주도는 도의회가 제2공항 갈등 해결 결의안을 추진하는 와중에, 더구나 그 방안을 모색하는 토론회까지 예고된 상황에서 제2공항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담화문을 전격 발표했다. 

그동안 “제2공항은 국토부 소관이라서...”라며 방관자 적인 태도를 보였던 것과는 너무 대조적이었다. 도의회는 “도민에 대한 겁박”이라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지난 4년간 재산권 행사 제약(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고통을 겪었다는 지역 주민들의 심정을 이해못할 바는 아니나, 순리라는게 있다. 이번 입법권 침해 논란이 공론과 설득의 중요성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 김성진 논설주간ㆍ상임이사

* 소리시선(視線) /  ‘소리시선’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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