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한라산회·칠머리당영등굿보존회, 2일 예비검속 희생자 위령제 공동 개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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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검속 희생자 위령제가 2일 옛 주정 공장 터에서 열렸다. ⓒ제주의소리

71주년 제주4.3 예비검속 희생자 위령제가 2일 오전 9시부터 제주시 건입동 옛 주정 공장 터에서 열렸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를 맞는 이번 위령제는 끔찍했던 4.3의 순간을 지나 국가에 의해 억울하게 숨진 예비검속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그들의 혼을 달래는 자리다. 일본에서 주로 활동하는 제주4.3한라산회와 제주칠머리당영등굿보존회가 공동 주관하는 행사다. 문화재청, 문화재청 국립무형유산원, 한국문화재재단, 제주4.3평화재단, 제주4.3희생자유족회가 후원했다.

옛 주정 공장 터는 4.3 당시 많은 도민들이 용공혐의를 뒤집어쓰고 고문 받고 집단 수용된 핏빛 어린 공간이다. 인근 산지항을 통해 육지형무소로 보내지기도 했다. 또한 한국전쟁이 벌어지고 나서는 예비검속자들이 집단 수용됐다가 부두 앞 바다에 수장되는 등 아픈 역사가 서려있다. 

한국전쟁 이후 예비검속자들로 추정되는 시체 수백 구가 일본 대마도 해안가로 흘러들어왔다. 당시 에도 히카루라는 일본인은 이 시체들을 정성껏 수습했다. 그의 아들인 에도 유키하루는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2007년 5월 공양탑을 세우고 매년 위령제를 봉행했다. 4.3한라산회는 2014년과 2015년 공양탑에서 전체 4.3 희생자를 위한 위령제를 지냈다. 지난해와 올해는 제주·대마도 두 곳에서 예비검속자를 위한 위령제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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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위령제는 제주칠머리당영등굿보존회와 제주4.3한라산회가 공동 주관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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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령제를 집전한 김영철 심방. ⓒ제주의소리

이날 현장에는 일본에서 온 4.3한라산회 40여명이 참석했다. 제주 출신으로 4.3 당시 일본으로 떠난 김시종 시인(제42회 오사라기 지로상 수상)도 함께 참석했다. 동시에 예비검속으로 가족을 떠나보낸 유족과 4.3희생자유족회 인사들도 함께 했다.

1935년생 김을생(제주시 화북) 씨는 자신이 14살이던 때 아버지가 제주경찰서에서 대구형무소로 끌려간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했다. 아버지 故 김경행 씨는 대구형무소에 수감됐다가 예비검속으로 총살당했다. 지금도 매해 4월이 되면 가족들은 대구로 향한다.

김을생 씨는 “아버지가 왜 죽었는지 그 이유를 똑똑히 알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 때문이다. 전쟁이 났으면 죄 없이 수감된 제주도사람들을 잘 지켰다가 고향으로 보내라고 명령해야지, 없애라고 지시한 것 아니냐”고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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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검속 유족들을 비롯해 참가자들이 희생자를 위한 월미를 뿌리고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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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검속으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울부짓는 김을생 씨. ⓒ제주의소리

나가타 이사무 4.3한라산회 고문은 "비록 국경을 넘어 일본에서 위령제를 해왔지만 (사람 된 도리로서)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시작했다. 내년 제주에서는 4.3행방불명인까지 추모하는 자리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올해 예비검속희생자 위령제는 제주칠머리당영등굿보존회 도움으로 문화재청의 ‘무형문화재 전승자주관 전승활동 지원사업’으로 치러졌다. 

양혁준 제주칠머리당영등굿보존회 사무국장은 “영등굿보존회가 대마도로 건너가 굿도 하면서 4.3한라산회와 인연을 이어왔다. 4.3희생자를 위한 위령굿은 제주도민들이 해야 할 일이다. 그동안 일본 분들이 모든 비용을 부담하면서 진정성 있게 이웃나라의 아픔을 공감해줘서 정말 감사하다”면서 “소식을 듣고 영등굿보존회원들의 뜻을 모아 지난해부터 지원사업으로 진행했다. 앞으로도 꾸준히 한라산회와 함께 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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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령제 참가자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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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타 이사무(왼쪽에서 두 번째) 4.3한라산회 고문을 비롯한 주요 인사들이 희생자들을 위해 절을 올리고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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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령제에 참석한 김시종 시인(가운데).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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