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시선] 용기-결단에 박수 ...군경, '국민의 베프'로 거듭나야 

창간 15주년을 맞은 [제주의소리]가 제 '소리'를 내는데 한발 더 다가섭니다. 이름하여 '소리 시선(視線)' 입니다. '소리 시선'에는 일종의 사시(社是)가 담기게 됩니다. 금기의 영역은 없습니다. 다른 언론이 다루길 꺼려하거나 민감한 현안에도 어김없이 '소리 시선'이 향하게 될 것입니다. [편집자 주]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유족과 도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국가폭력으로 말미암은 그 모든 고통과 노력에 대해 대통령으로서 다시 한번 깊이 사과드리고, 또한 깊이 감사드립니다"

2003년 10월 노무현 대통령과 2018년 4월 문재인 대통령의 사과는 진정성이 읽혀졌다. 국가 수반이 두 차례나 머리를 숙일 만큼 제주4.3은 응어리가 많았다. 반세기 넘게 유족들이 겪은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으리라. 15년의 간극. 문 대통령의 사과는 두 번의 보수정부를 거치며 4.3해결이 퇴행한 측면도 배경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두 번의 사과 모두 글이나 말로 그치지 않았다. 현직 대통령 신분으로 직접 제주를 찾았다. 유족들을 만나 통한의 세월을 보듬었다. 그리고 더디긴 해도 후속 조치들도 이어졌다.

사과는 이런 것이다. 진심이 엿보이고 실천이 뒤따르는. 

국정을 책임지고 있는 대통령으로서 과거 국가폭력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 당연한 일을 하는데 꼬박 55~70년이 걸렸다. 여러가지 요인이 있었다. 우선 진상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 침묵을 강요당한 이들은 입을 다물었다. 무엇보다 진실이 드러나길 꺼려하는 세력들의 방해가 집요했다. 그런 점에서 두 대통령의 공식 사과는 높게 평가받아 마땅하다.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일이었다.     

4.3 71주년을 맞아 국방부와 경찰청장의 유감 표명이 조명을 받고있다.  

"제주4.3특별법의 정신을 존중하며 진압 과정에서 제주도민들이 희생된 것에 대해 깊은 유감과 애도를 표한다"

"4.3당시 무고하게 희생된 모든 분들의 영전에 머리숙여 애도의 뜻을 표한다"

이걸 사과로 볼 수 있느냐는 작은 논란이 일었다. 시쳇말로 쿨하지 않지 않느냐는 얘기다. 물론 국방부는 '입장문' 에 머물지 않고 서주석 차관이 서울 광화문광장의 추모 공간을 찾아 헌화 분향한 뒤 유족들과 만나 "진심으로 죄송하다. 사과의 마음을 전한다"고 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서주석 국방부 차관이 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차려진 4.3희생자 추모 공간을 찾았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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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갑룡 경찰청장이 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 차려진 4.3희생자 추모 공간을 찾았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경찰청도 민갑룡 청장이 같은 장소를 방문해 방명록에 글을 남겼다.   

당사자인 제주4.3희생자유족회는 환영과 아쉬움을 동시에 표명했다. 

성명을 통해 "만시지탄이지만 환영한다"면서도 "군경의 수장으로서 희생자와 유족들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와 이에 수반하는 추가적인 조치 약속 등이 누락된 부분은 크게 아쉬움이 남는다"고 했다. 

유족회의 표현을 빌면, 4.3당시 군경(軍警)은 국민의 편이 아니었다. 갖은 학살과 만행의 주도자였다. 

어디 이 뿐이랴.

육군이 제주4.3사건을 '무장공비의 폭동 진압'이라고 비튼게 불과 6년여전의 일이다. 경찰 또한 '제주경찰사(史)' 등을 통해 제주4.3을 폄훼, 왜곡했다.  

4.3특별법에 제주4.3사건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그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라고 규정됐다. 한마디로 무고한 양민이 희생된 참극이다. 

대통령의 사과와 국방부, 경찰청장의 유감 표명. 뭔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국군통수권자이자 경찰청장 임명권이 있는 대통령이 공식 사과한 마당에 그 지휘를 받는 국방부와 경찰청장이 고작(?) 유감 표명이라니. 

어학사전에 유감(遺憾)은 '마음에 차지 아니하여 섭섭하거나 불만스럽게 남아 있는 느낌'이라고 나와 있다.  사과 또는 사죄, 미안 또는 죄송과는 개념이 다르다는 뜻풀이도 있다. 

말꼬리를 잡자는 게 아니다. 

쉽지 않았을 것이다. 조직의 이미지와 구성원들이 아른거렸을 것이다. 도매금으로 매도당하는 듯한 억울함도 들 수 있다. 4.3 당시 모든 군경이 가해자였던 것도 아니다. 개중에는 학살을 거부하거나 희생을 막은 의인도 여럿 있다. 유감 표명에도 용기와 결단이 있었겠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국방부와 경찰청장의 유감 표명에 대해 "4.3의 아픈 상처를 치유하고 희생자.유족의 명예회복을 위한 새로운 전환점이 되길 기대한다"고 했다.

4.3유족회는 앞으로 군경이 4.3특별법 개정에도 적극 협조해 국민의 군대, 국민의 경찰로 우뚝 서기를 당부했다. 요즘 화제가 된 단어로, 서로 허물을 덮어주는 '베프'(베스트프렌드)가 아니라 정말 국민을 위하는 '국민의 베프'가 돼 달라는 말일 테다. 

희생자 배.보상 근거 등의 내용을 담은 4.3특별법 개정은 유족회의 염원이다. 그런 점에서도 4.3의 완전한 해결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 논설주간·상임이사

* 소리시선(視線) /  ‘소리시선’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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