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제주민예총 ‘역사맞이 4.3거리굿’

거리 위에서 제주4.3의 역사를 재현해온 제주민예총의 ‘역사맞이 4.3거리굿’은 2016년 큰 변화를 시도한다. 이전까지는 해방에서부터 3.1기념대회 발포, 봉기, 학살까지 4.3 전체를 재현했는데, 그해는 현기영 작가의 소설 <순이삼촌> 줄거리에 초점을 맞췄다. 특히 소설 구절을 작가들이 무대 위에서 낭독하고, 강요배 화백의 4.3연작을 대형 화면에 띄우며, 퍼포먼스와 연기를 더하는 복합 예술을 시도했다.

<순이삼촌> 중심의 거리굿은 지난해 4.3 70주년까지 이어간다. 그동안 무대는 관덕정 마당과 문예회관 대극장을 거쳐 갔고, 연출이나 무대 장치도 여러 변화를 시도했다. 내부 구성을 바꾸며 완성도를 높였지만, 공연은 큰 틀을 유지했다.

올해 거리굿은 다시 제주시청으로 돌아오면서 3년간의 방식을 탈피했다. 줄거리는 4.3 이전의 역사를 주목했다. 법정사 항일운동, 3.1만세운동, 해녀항일운동, 만주독립운동까지 포함시켰다.

3일 제주시청 앞 마당에서 열린 역사맞이 4.3거리굿. ⓒ제주의소리
3일 제주시청 앞 마당에서 열린 역사맞이 4.3거리굿. ⓒ제주의소리

변화는 이뿐만이 아니다. 거리굿을 채운 음악·노래, 연기, 퍼포먼스, 낭독 가운데 ‘음악·노래’에 힘을 실었다. 극의 배경 시간이 4.3에서 족히 30년 가까이 앞당기면서, 그 간격을 음악으로 채웠다.  

<독립군가>, <물질소리>, <인민항쟁가> 등 당시 역사와 함께 한 노래들이 거리 무대에서 울려 퍼졌다. 여기에 판소리 <유관순 열사가>, 백난아의 <찔레꽃>, 2017년 TV드라마 <역적 : 백성을 훔친 도적>의 수록곡 <봄이 온다면> 등 유연한 편성도 시도했다. 오랜만에 등장하는 새 곡 <건국5칙>, 새로운 감각으로 편곡한 <장두>와 <아리랑>까지. 올해 거리굿은 음악극이라고 느껴질 만큼 극 전반의 색깔을 바꾸려 했다. 그 색깔은 흡사 무지개와 같았다. 

줄거리와 노래 모두 늘어난 만큼 정돈되지 않고 늘어날까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끝까지 힘을 잃지 않고 끌고 가는 저력을 발휘했다. 

저력의 비결을 꼽으라면 예술성 강화라고 본다. 예를 들어 이번 거리굿에는 지난해 놀이패 한라산의 창작 마당극 <조천중학원> 출연진과 내용을 일부 삽입했다. 덕분에 이야깃거리는 더욱 풍성해지고, 전반적인 극의 무게 중심도 탄탄해지는 인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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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만세운동 장면.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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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꾼 조애란이 판소리 '유관순 열사가'를 열창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특히, 충북 지역에서 활동하는 국악관현악단 더불어숲은 녹음 반주 음악이 따라갈 수 없는 라이브 연주를 들려주면서 공연의 질을 높이는데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흥을 배가시킨 전통예술공연개발원 마로와 풍물굿패 신나락, 제주대학교 탈춤동아리 OB모임인 제주두루나눔도 든든히 제 역할을 소화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제주국제대학교 공연예술학과와 제주 10~20대들로 구성된 극단 청춘모닥치기 포함 ‘젊은 피’ 10여명을 빼놓을 수 없다. 이들은 낭독, 연기, 합창까지 적재적소에 투입돼 공연을 지탱하는 핵심 역할을 소화했다.

지난 거리굿을 돌아보면 볍씨학교 중심의 10대와 민요패소리왓·놀이패한라산 등 40대 이상만 존재하는 ‘허리’가 없는 출연진 구성이었는데, 그런 갈증을 올해는 어느 정도 해소했다. 첫 출연한 강정평화합창단은 풍성한 소리를 만들어내는데 일조했다.

역사맞이 거리굿의 줄거리를 채우는 서사는 4.3이라는 하나의 물줄기에서 크게 마당극 ‘조천중학원’과 최근 소설집 《대한 독립 만세》의 어린 해녀 이야기 <열다섯 홍련>으로 나뉜다. 두 가지 서사는 자연스럽게 해녀항일운동, 해방, 3.1절 기념대회 등으로 뻗어가며 한층 자연스러운 흐름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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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요패 소리왓이 열연하는 해녀 연기.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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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5칙을 부르는 연기자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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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모닥치기, 제주국제대학교 공연예술학과, 볍씨학교, 강정평화합창단이 모여 합창하는 모습. ⓒ제주의소리

다만, 비슷한 풍물 연주가 반복되고, 노래가 늘어났지만 화면·홍보물 어디에도 가사가 없는 점, 한 막이 끝나고 다음 막으로 가는 구간이 종종 매끄럽지 않게 '붕 뜬' 분위기로 넘어가는 경우는 아쉬움으로 남는다.

‘익숙함의 탈피’

무엇보다 이번 거리굿에서 주목해야 할 핵심은 익숙함의 탈피다.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일명 ‘순이삼촌’ 거리굿뿐만 아니라, 그 이전에도 거리굿에서 '항쟁부터 학살까지' 연출은 흡사 ‘클리셰’와 같은 고정된 방식이었다. 군경, 총소리, 쓰러지는 배우들로 대표되는 직접적인 묘사는 역사의 충격을 최대한 옮겨내자 고자 하는 노력이라고 짐작해본다.

하지만 올해는 과감히 이런 방식을 버렸다. 출연진이 한 목소리로 노래 <입산>, <세월>을 부르는 연출로 마무리했다. 동시에 강요배 화백의 4.3연작도 배경으로 사용하는데 최소한으로 그치고, 새로 제작한 영상물을 띄웠다.

평가를 떠나, 편한 길을 택하지 않고 또 다르게 4.3을 표현할 방법은 없는지 고민한 제작진의 노력이 느껴져 무척 반가운 대목이었다. 

‘4.3예술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누군가 질문을 던진다면, 맨 앞은 세대를 넘어 이어갈 지속성이라고 떠올려 본다. 하지만 지속성 못지않게 예술성을 담보한 ‘변화’도 중요하다. 현기영 작가를 비롯한 제주의 원로 예술가들이 새로운 4.3예술을 줄기차게 강조해온 이유다.

어느덧 4.3문화예술축전의 얼굴 마담으로 성장한 역사맞이 4.3거리굿. 2019년 거리굿은 느리지만 분명히 발전 중임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최상돈 총연출의 바람대로 ▲대중예술 ▲예술연대 ▲정체성이란 방향을 지켜가면서, 보다 많은 도민들이 거리굿을 ‘4.3 대표 공연’이라고 여기는 날이 오길 기다린다.

거리굿의 마무리 장면. ⓒ제주의소리
거리굿의 마무리 장면.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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