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풍습 속 숨겨진 금융상식] (12) 자리젓

지난 9월부터 시작된 <제주풍습 속 금융상식> 기고문이 절반이 지났다. 시작하는 글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제주의 관혼상제와 연관된 소재들을 살펴볼 계획이었다. 첫 기고에서 제주의 소녀가 해녀로 성장하는 과정을 관례 풍습에 빗대어 이야기를 시작했다면, 지난번 기고까지는 제주에서의 혼인과 관련된 소재를 다루면서 결혼 정년기의 당사자들에 필요한 금융 상품과 상식을 언급했다. 이번 기고부터는 상례와 제례와 관련한 주제로 들어가고자 한다. 

# 가장 제주스러운 음식, 콩잎에 자리젓

입도한 지 오래지 않은 어느 날 점심, 동문시장에 있는 한 식당에 들렀다. 말린 옥돔을 참기름을 발라 구워서 주셨는데, 동행했던 제주 분들은 옥돔보다도 다른 밑반찬에 더욱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닌가? 다름 아닌 콩잎과 자리젓이었다. 

오래전부터 콩 재배가 많은 제주에서 상추나 깻잎보다 콩잎이 더욱 보편적이라고 알고 있었지만, 어린 시절 처음 맛본 콩잎쌈은 아무래도 조금은 비린 맛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제주에서 맛본 콩잎은 완전히 달랐다. 자리젓과 함께 싸먹으면 식욕을 돋우는 별미였다. 특히 제주 출신의 직원들은 어린 시절 어머니의 손맛으로 기억하는 음식 중에 자리젓을 1순위로 손꼽을 정도였다.  

자리젓은 제주 근해에서 많이 잡히는, 크기가 6~12㎝ 정도인 자리돔으로 만든 젓갈이다. 초여름에 중간 크기의 자리에 소금을 넣고 자리젓을 담갔다가 가을이면 먹기 시작한다. ‘자리’라는 이름은 한자리에서 위로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제자리를 지킨다고 해서 ‘자리돔’이라 불린다. 자리물회로도 많이 즐기며, 자리구이와 자리조림, 자리무침으로도 일품이다. 해마다 서귀포 보목동에서는 자리돔 축제가 열린다. 말린 옥돔과 멜젓 등과 함께 가장 제주스러운 저장 음식이다.

자리젓과 콩잎.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자리젓과 콩잎.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에 젓갈이 많은 것은 당연히 해산물 수확이 많은 반면, 내륙 지방까지 운송, 유통해야 했거나, 오랜 기간 보존해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내륙 지방에서도 육류를 보관하기 위해서는 염장이 필수였으며, 스페인 또는 독일 같은 나라에서 햄이나 하몽 등의 음식 문화가 잘 발달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삼면이 바다인 특성으로 인해 젓갈 문화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보편화되어 있다.

# 모딜리아니 교수의 ‘생애주기가설’과 인출(decumulation)의 시대

5~6월 자리돔이 많이 잡히는 시기에 소금에 담가 저장했다가 꼭 필요한 다른 시기에 사용하는 삶의 지혜는, 연금제도의 기초가 되는 프랭크 모딜리아니의 ‘생애주기가설’의 기초와 흡사하다.  

모딜리아니 교수는 앨버트 안도 교수와 함께 생애주기가설 발표해 1985년에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그 내용은 이러하다. 소비자의 일생에 걸친 소득과 소비의 변화 패턴에 주안점을 두고 있으며, 따라서 각자의 환경에 맞도록 생애 재무 설계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경제 생활이 왕성한 시기(A)에는 지출보다 소득이 많고, 경제적 은퇴 시점 이후(B)에는 소득보다 지출이 많아진다. 젊은 시절은 소비를 줄여 자산을 저장해 두어야 하는 축적(Accumulation)의 시기라면, 은퇴 시점 이후의 시기는 축적돼 있던 자산을 인출해 지출해야만 하는 인출(Decumulation)의 시기이다. 

중요한 것은 (A)의 축적된 자산의 크기가 (B)의 소비해야 하는 자산의 크기보다 크거나 같아야만 행복한 노후가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특히 한국 사회가 고령화 속도는 빨라져서 2018년도에 고령사회(65세 이상 고령자가 전체 인구의 14%인 단계)에 진입했고, 근로자들의 실질적인 경제적 은퇴 시기가 55세~60세로 앞당겨지는 추세이기 때문에 은퇴 이후에 필요한 자산규모(B)가 더욱 많이 요구되고 있다. 

제공=손권석. ⓒ제주의소리
제공=손권석. ⓒ제주의소리

# 퇴직연금과 개인형 퇴직연금(IRP, Individual Retirement Pension)

과거의 퇴직금 제도는 사업주가 재무제표 상 부채의 항목에 퇴직급여충당금 계정에 예상되는퇴직금 부담금을 적립했다가, 실제 퇴직이 발생하는 시점에서 지급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사업이 어려워 졌을 때에는 퇴직금을 즉시 받지 못하거나 예정된 금원보다 적게 받아 분쟁이 발생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노사의 합의하에 퇴직금을 기업 외부의 금융 기관에 매월 예치할 수 있는 퇴직연금제도가 시행됐다. 회사의 재무 상황과는 무관하게 직원의 퇴직금은 보전되기 때문에 안전하다. 사업주의 입장에서는 부채 항목이던 충당금 계정이 줄어들면서 퇴직 급여 지급을 통해 비용이 늘어나므로 법인세 절감 효과가 즉시 나타나는 혜택을 기대할 수 있다. 자세히는 퇴직 급여의 운용 주체와 운용 방식에 따라서 확정급여형(DB, Defined Benefit)과 확정기여형(DC, Defined Contribution)으로 구분된다. 

여기에 여유 자금이 있다면, 연간 1800만원까지 추가 불입했다가 5년 경과한 이후 그리고 만55세 이후에 연금으로 수령할 수 있는 개인형 퇴직연금(이하 IRP)에 가입하는 것도 좋다. 연간 700만원까지 납입하는 경우에는 연말정산시 세제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 가입자의 세액공제율에 따라서 92만4000원(세액공제율 13.2%)~115만5000원(세액공제율 연 16.5%) 정도의 세금이 적게 납부할 수 있다. 단, 연금 개시 시점에 일시금으로 납입 금액을 수령한다면 그 동안 공제받았던 세액을 다시 납부해야 하는 점은 명심하자.

제주사람들이 가장 즐겨 찾는 젓갈인 자리젓. 소비를 줄여 저장해 두는 대신에 언제나 필요할 때면 밑반찬으로 입맛을 돋우는데 손색이 없다. 생애주기가설의 개념과 유사한 이 논리는 금융 상품으로도 구현이 돼 있다. 퇴직연금(DB형, DC형)과 개인형 퇴직연금(IRP) 모두 현재 적립한 연금 재원에 대하여는 파격적인 세제 혜택을 부여하고 있어 반드시 가입해야 하는 금융 상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이를 때이다. 지금이라도 가입하자. 

손권석은? 

현재 KEB하나은행 제주금융센터 내 제주인터내셔널PB센터를 이끌고 있는 프라이빗뱅커이다. 미 일리노이대학 경영대학원 MBA 출신으로 세계적인 IT서비스기업인 아이비엠에서 기술영업대표와 컨설턴트를 지냈다. KEB하나은행 입행 후 거액자산가들을 위한 금융상품 개발과 자문업무를 수행했고, 부자들의 투자방법과 라이프스타일을 연구하기 위해 부자보고서를 발간했다. 금융업의 집사라고 불리우는 프라이빗뱅커(Private Banker) 업무는 금융자산 관리 뿐만 아니라 부동산과 기업재무관리까지를 포함한다. 가업승계와 증여를 통해 절세전략을 세우는 등 가문의 재산을 관리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는 학창시절부터 세계배낭여행과 국제교류를 통해 다양한 문화를 접해 본 여행가이며, 2001년 가을 이후 제주의 매력에 빠져 사진기 하나를 달랑 메고 계절마다 제주를 찾았던 제주 애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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