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113. 봄잠은 가시덤불에 걸어져도 잔다

* 봄좀 : 봄잠
* 가시자왈 : 가시덤불

봄이 되면 유난히 졸음이 몰려온다. 어린 아기도 가물가물 꾸벅꾸벅, 어른도 노인도 고개가 기울어 있다. 특히 초등학생 나이엔 잠이 많다. 오죽 졸렸으면 “아이 땐 낭(나무) 가지에 걸쳐도 자는 게 좀이여” 했겠는가. 앉아도 졸고, 밥을 먹으면서도 졸고. 옛날 동생이 밥 먹다 숟가락을 떨어뜨리던 장면이 떠올라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그렇게 어릴 때는 좀이 돌았다(잠이 달았다). 그렇게 쏟아지던 잠도 나이 들면서 줄어들다 늙으면 어디로 갔는지 도망가고 없다. 한창 자랄 때라서 그럴까. 어릴 적엔 잠이 참 많았다. 한 생을 두고 보면 견디기 힘들게 졸음 겹던 때가 아잇적이다.

더욱이 추운 겨울을 힘겹게 나고 다스한 봄을 맞으면 온몸이 나른해진다. ‘춘곤증’이다. 일을 하다 잠시 쉬노라면 무심결에 졸음이 몰려온다. 일하는 중에도 어느새 눈이 살살 감기면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봄잠은 가시자왈에 걸어져도 잔다’라 한 것은 몰려오는 잠을 실감나게 묘사한 것인데, 참 그럴싸한 표현이다. 몸뚱이가 가시덤불에 걸쳐졌다고 안 올 잠이 아니라 함이니 말이다. 정말이지 떨쳐 버리기 힘든 잠이 ‘봄잠’이다. 계절에 따른 생리현상인 걸 어찌하랴.

봄잠에 몹시 부대끼는 현상을 잘도 부각시켰다.

춘곤증, 봄이면 누구나 경험하는 것이라 비켜갈 수가 없다. 이는 피로가 특징으로 나타나는 신체의 일시적 현상인데, 이를테면 환경부적응증이다. 한때 정신 못 차리게 하지만 보통 1~3주가 되면 자연히 없어진다.

춘곤증은 일단 병이 아니다(사실은 의학적 용어도 아니다). 하지만 가볍게 넘겨 버리면 간염이나 결핵 같은 증상이 비슷한 다른 질병의 초기 신호를 놓치고 말아 생고생하는 경우가 있다. 계속될 때는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을 찾는 게 상책이다. 그 원인은 아직 의학적으로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한다. 

그러나 겨우내 잔뜩 움츠렸던 몸이 따뜻한 봄 앞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호르몬 중추신경 등에 미치는 지극의 변화로 나타나는 일종의 피로 누적 현상으로 보면 된다. 봄이 되면 밤이 짧아지고 피부의 온도가 올라가 근육이 이완되면서 나른한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 바로 춘곤증이니까.

또한 봄이 되면서 갑자기 활동량이 늘어나 단백질, 비타민, 무기질 같은 각종 영양소의 필요량이 증가하는데, 겨울 동안 이를 충분히 섭취하지 못해 생기는 영양상의 불균형이 춘곤증으로 고개를 쳐들 수 있다. 겨울에 갇혀 살아 운동량이 부족한 사람이나 과로가 쌓인 사람에게서 심하게 나타난다.

증상도 다양하다. 피로감, 졸음 외에도 식욕 부진, 소화불량, 현기증….

갑작스레 식욕이 떨어지고 기운이 축 처지며 특별한 일도 없는데 가슴이 뛰고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오르는 등 갱년기 증상과 유사한 신체적 변화를 경험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하지만 너무 무겁게 생각할 건 아니다.

춘곤증이 생활에 미치는 영향 가운데 가장 위험한 것이 있다. 바로 운전 중 졸음이다. 특히 장거리를 가는데 춘곤증이 일어나면 주의 집중이 안되고 졸음운전으로 이어져 사고를 일으킬 우려가 다분히 있다는 얘기다.

더구나 운전 시는 대형사고가 일어나는 수가 많기 때문에 매우 주의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음주운전보다 더 위험하다고 지적한다. 춘곤증 등 졸음운전으로 인한 사고는 특징이 있다. 깜빡하는 한 찰나에 일어나는 사고라, 차체가 360도로 한 바퀴 돌아버린다는 게 아닌가. 상상한 해도 끔직한 일이다.

한국도로공사가 고속도로 구간에 내건 졸음운전 방지 현수막. 출처=오마이뉴스.
한국도로공사가 고속도로 구간에 졸음운전 방지 현수막을 내걸었다. 출처=오마이뉴스.

따라서 특히 장거리를 탈 때는 2시간 간격으로 휴식을 취해야 한다. 차 밖으로 나가서 체조를 하거나 자동차의 이상 유무를 점검하는 것도 현명한 일이다. 차장을 열어 신선한 골기를 안으로 들여 공기를 순환시켜 주어야 한다. 지극히 상식적인 일인데도 막상 닥치면 실천이 어렵다. 큰 사고를 만나고서야 가슴을 쓸어내리는 게 사람의 일이니 하는 말이다.

하루 일과가 끝난 뒤, 잠을 충분히 자는 것 또한 중요한 습관이다. 밤잠을 설쳤다면 점심 식사 후 15~30분 낮잠을 자는 것 또한 오후의 업무 능률을 위해 지혜로운 일이다. ‘꿀맛 같은 잠을 잤다, 새우잠을 잤다, 아시잠을 잤다’ 하는 건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춘곤증이 턱없이 오래 가면 예삿일이 아니다. 질환이 아닌가 한번 의심할 필요가 있다.

활력을 잃어 나타나는 한때의 현상이 춘곤증이다. 요즘 미세먼지라는 뜻밖의 복병을 만나 부대끼는 일과 속에 졸음까지 겹치면 일이 힘들어 하루의 삶이 엉망이 될 수 있다. 제 몸을 가장 잘 아는 것은 의사가 아닌, 자기 자신이다. 몸의 반응을 놓치지 말고 체크하면 큰 탈 없이 춘곤증에서 헤어날 수 있다.
  
‘돌아온 4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 어린 무지개 계절아’ 하고 4월이 노래 부른다. 봄을 활기차게 하기 위해 마음에 날개를 달아야 하리.

‘봄좀은 가시자왈에 걸어져도 잔다’는 ‘푹 자라’, ‘깊은 잠을 자라’는 말로 바꿔 들었으면 한다. 잠이 보약이라 했다. <차고술금> 독자 여러분! 기다리는 봄이 왔으니, 너나없이 숙면 뒤 상쾌한 아침으로 하루를 시작하시라. /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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