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예술공간 오이 연극 '4통3반 복층사건'

제주 극단 ‘예술공간 오이’가 지난해 처음 공연한 4.3 연극 <4통3반 복층사건>은 여러모로 화제를 모았다.

모처럼 등장한 4.3 창작 연극인 동시에, 4.3 70주년을 맞아 5월말부터 12월까지 6개월 간 매주 장기 공연한 유래 없는 작품이다. 과거(4.3)와 현재를 오가는 구성에서 사람 목숨이 ‘목숨’이 아니던 학살의 역사를 통해 현대인, 그 중에서도 방황하는 청년 세대와 공감하는 이야기로 많은 이들이 <4통3반 복층사건>을 주목했다.

예술공간 오이는 가능하면 매해 4월마다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리겠다고 밝힌 바 있는데, 70+1주년이 되는 올해부터 당장 시작했다.

“작년에 7개월 동안 장기 공연을 했던 <4통3반 복층사건>이 올해 4.3을 맞아 재공연하게 됐습니다. 연출을 맡은 저는 작년과 다른 작품을 보여 드리고 싶다는 욕심이 컸습니다.”

전혁준 작가 겸 연출가의 소개 글처럼 2019년 <4통3반 복층사건>은 지난해와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6일 '4통3반 복층사건' 첫 공연을 마친 예술공간 오이 출연진들. ⓒ제주의소리
6일 '4통3반 복층사건' 첫 공연을 마친 예술공간 오이 출연진들. ⓒ제주의소리

일단 인물은 과거 변동 없이 현재에서 허세 넘치는 건물주, 삐딱한 성격의 경찰, 엉뚱한 배달부가 추가됐다. 한 배우가 두 가지 역할을 맡는 특성 상, 4.3 당시 젊은이를 살리려고 자신을 희생한 중년 여자는 건물주로 분했다. 자신의 재력으로 한껏 과장하지만 대화 상대가 ‘박사’라는 사실에 태도가 바뀌는 모습에서 관객은 실소를 짓는다. 4.3 때 중년 여자와 같은 역할이었던 남성은 경찰이 됐다. 자신이 원하는 결과에 맞게 주변 상황을 짜깁기하는 껄렁껄렁한 인물로 그려진다. 

주연 격인 30대 백수 상식(배우 현대영)과 건물주, 경찰의 관계는 여러모로 대비를 이룬다. 상식에게 4개월이나 월세를 받지 못하자 그를 내보낼지 말지 고민하는 건물주는, 오늘 날 경제적인 기득권 세력을 대변한다. 상식의 까칠한 태도를 이유 삼아 그릇된 의심으로 몰아붙이는 경찰은 청년들을 잘못 이해하는 일부 기성세대의 시선을 상징한다고 본다.

엉뚱한 배달부는 검은색 마스크에 오토바이 헬멧까지 착용해 누군지 알아보기 힘들다.(극 초반에 군경의 총을 맞고 숨지는 역할의 오상운 배우가 유력하다.) 속된 말로 ‘밑도 끝도 없는’ 배달부의 행동은 ‘뜬금포’ 웃음을 터트린다.

무대 연출도 많은 부분을 바꾸고 추가했다. 다른 시공간을 복층으로 재현하는 작품의 정체성과 같은 무대는 그대로다. 다만, 지난해와 반대로 현재를 상징하는 공간을 아래쪽, 과거는 위쪽으로 배치했다. 덕분에 아래쪽에서 기어 다니고 웅크렸던 배우들의 동선이나 연기가 한층 펴진 느낌을 받았다. 

새로 등장한 무대 중앙 한라산 그림은 배우들의 통로 겸 중요한 상황 변화를 보여주는 장치다. 4.3희생자들의 절규를 상징하듯 손바닥으로 찍어 그려 더욱 눈길이 간다. 옷장, 자취방 내부 구성 등 무대 소품도 비교적 세세하게 강화했다.

故 이한열 열사 추모곡 <마른잎 다시 살아나>를 극중 ‘민중가요 동아리’ OB멤버들이 열창하고, 연주곡 버전으로도 나오며 꽤 비중있게 사용한다.

이전 작품에서도 과거와 현재는 무대 공간이 자주 겹치지만, 이번에는 한 걸음 나아가 물리적인 영향을 주는 단계까지 발전했다. 현재 일행이 먹고 남긴 그릇, 숟가락 등을 과거 사람들이 가져가는 식이다. 개연성을 무너뜨리는 요인이 될 수도 있지만, 4.3과 오늘 날을 잇는 기능에는 효과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지금까지는 과거 혹은 현재, 하나의 장면만 보여주고 집중시키는 연출이었다면, 이번에는 양쪽 모두에 시선이 가도록 조명을 분배했다. 마찬가지로 ‘이음’을 중요시한 의도에 가깝다.

망자들을 드러내 작품 속 4.3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일명 ‘딜라이트(delight)’ 장면은 여전히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올해는 4.3 희생자들을 반갑게 불러 모아서 전개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번 <4통3반 복층사건>에서 가장 인상적인 새로운 연출을 꼽자면 흰색 가면 장면이다. 사랑하는 여인, 순임(배우 김민경)을 지키기 위해 명석(현대영)이 군경의 시선을 끌어 총에 맞는 구성은 지난해와 같다.

명석은 몸을 던지는 대신 노래를 부르며 뒷걸음질 하다가 총에 맞아 쓰러진다. 덕분에 인물의 감정이 보다 길게 객석에 전달된다. 그리고 암전이 흐른 무대 위에는 하얀 가면을 쓴 배우 셋이 등장한다. 두 명은 명석의 시체를 흰색 천에 싸서 질질 끌고 나가고, 한 명은 관객 앞에서 몸짓을 보인다.

이 셋은 무고한 양민을 대량 학살한 4.3의 배경에 미국(하얀 가면)이 있음을 암시하는 은유적 연출로 보인다. 낯선 전위적인 퍼포먼스에도 가면과 도민 시체를 끌고가는 행동은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총소리였습니다. 학살이었습니다.
방아쇠는 경찰이 당겼습니다.
총구 뒤에 서 있던 하얀 얼굴 낯선 군인을 향해서 외쳤습니다.

올해 4.3전야제에서 발표한 김동현 문학평론가의 표현(하얀 얼굴=미국)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4통3반 복층사건>은 미국인들이 시끄러운 파티를 연다는 설정으로 다소 우회해서 미국을 언급한 바 있다. 그 보다 파격적인 하얀 가면 장면은 4.3 학살의 미국 책임을 직접 조준한다. 

하얀 가면들이 시체를 천으로 싸지 않고, 있는 그대로 과감하게 끌고간다면 연출 의도가 더 부각될 수도 있겠다는 개인적인 사족을 더해본다. 천을 싸는 행위가 마치 정성껏 예의를 지키는 행위로도 보였다.

작품에서 새로 추가한 시도들은 온도차는 존재하나 대부분 흥미롭게 다가온다. 다만 극 전체로 볼 때 기존 줄거리에 자연스럽게 녹아든다는 인상은 아직 받지 못했다. 신·구 배우가 호흡을 맞추고, 새로운 표현·대사·역할도 가다듬어 보다 매끄러워 진다면 한층 나아지리라 본다. ‘가족극’을 표방하면서 늘어난 욕설 대사는 다소 아이러니하다. 새 등장인물 경찰의 복장은 시급히 개선될 필요가 있다.

2018년 4월, 같은 해 5~12월, 그리고 2019년 4월까지. <4통3반 복층사건>은 2년 동안 세 번에 걸쳐 무대에 올랐다. 이번 작품은 시기나 내용을 봐도 사실상 ‘버전(Version) 2’라고 봐도 무방하다. 일부분을 수정 보완한 연극 <4통3반 복층사건>은 변함없이 분명한 메시지를 객석에 전달한다. 

우리가 사는 이 섬이 부조리하고 비상식적인 자들에 의해 망가진 게 아니라, 부당하게 희생당하고 고통 받으며 살아남은 존재들 덕분에 이 정도라도 지켰다는 것. 그렇기에 좌절하고 포기 말고 살아라. 비록 방향을 찾지 못해 헤맨다 하더라도, 너의 삶은 무수한 피 범벅 위에서 기적적으로 피어난 아름다운 꽃이기에, 존재만으로 소중하기에 꿋꿋이 살아라. 살다보면 살아진다.

전혁준 연출은 “우리는 기억할 것이며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대를 업고 또는 그 위에 서서 나아갈 것입니다. 이것이 관객여러분에게 드리고 싶은 것입니다”라고 작품을 소개했다.

예술공간 오이는 <4통3반 복층사건>을 ‘가족극’이라고 현수막에 소개했다. 4.3을 알고 있는 중년 이상, 4.3을 이제야 알아가는 청년·청소년 모두의 눈높이에 맞는 연극이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여러모로 유머 코드가 늘어나서 더 즐겁게 관람할 수 있다.

<4통3반 복층사건>은 4월 6일부터 28일까지 매주 토·일요일(오후 3시·7시)마다 공연한다. 관람료는 일반 1만2000원, 청소년 8000원이다. 매 공연마다 인터파크에서 예약하는 선착순 10명에게 현금 6000원과 관람료 50% 할인권 2매를 증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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