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의 노동세상] 2. 노동은 곧 한 개인의 인격

우리 모두는 노동자다. 도서관 ‘죽돌이’로 고생 끝에 합격한 청년 공무원도, 관광지 매표소 직원도, 부지런히 일하는 노인도, 손님을 태우고 제주 곳곳을 누비는 운전기사도 모두 노동자다. 그러나 노동자로서의 의무만 다할 뿐 권리는 누리고 있을까? [제주의소리]는 민주노총제주본부 법규국장으로 활동하는 김경희 공인노무사로부터 ‘노동’이야기를 들어본다. 노동과 삶은 분리되지 않은 본디 하나라는 점을 알려줄 것이다. [편집자 주]

 

우리는 하루를 보내는 동안 매일매일 다양한 직종의 노동자를 만난다. 점심시간에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며 찾은 식당에서도 마찬가지다.

TV 맛집 프로그램에도 등장하며 도민과 관광객의 인지도가 높아져, 점심시간이면 항상 줄을 서야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있다. 같은 종류의 음식을 파는 다른 식당들 보다 반찬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는 사장님의 마음 씀이 훈훈하게 느껴지고, 먹고 나면 저녁까지 배가 든든한 식당이었다. 지금도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명한 식당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이 겪은 이야기다.

식당은 사장님과 50~60대의 여성노동자 3명이 일하는 소규모의 아담한 식당이다. 식당을 이용하면서 느꼈던 멤버들의 팀워크는 흡사 일요일 아침에 보는 드림팀과 같았다. 조리부와 서빙부가 환상의 짝을 이뤘고, 밀려오는 손님과 주문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인원이 활기차게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여성노동자들의 평균 근속연수는 10년을 훌쩍 넘겼고 한 달에 이틀을 제외하곤 매일 출근했다. 식당의 역사가 곧 본인들의 삶이자 역사였다. 

문제는 식당이 리모델링 공사에 들어가면서 부터였다. 노동자들은 실로 오랜만에 자의반 타의반의 휴식을 취하게 되었다. 하지만 잠깐 쉬면 될 줄 알았던 휴업기간이 예측하지 못할 정도로 길어졌고, 생계의 문제로 다가왔다. 휴업수당도 나오지 않는 터라 여성노동자들은 이직을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퇴직 의사를 밝히고 퇴직금을 지급해달라고 요구했다. 사장은 차일피일 미루다가 현금 100만원을 ‘퇴직금이라고 생각하고 받아주라’며 던져줬다.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를 고용한 모든 사용자는 퇴직금을 지급할 의무가 있다. 고용형태와 관계없이 노동자가 한 사업장에 1년 이상 근무했다면 퇴직금이 발생한다. 대략적인 금액은 근속연수 1년당 한 달치의 급여로 계산한다. 퇴직금은 과거에는 5인 이상 사업장에서만 적용되었으나 2010년부터는 1인 이상 모든 사업장에 확대하여 적용한다. 그러나 아직도 온갖 이유를 들어 퇴직금의 지급을 미루거나 거부하는 사용자들을 종종 마주할 수 있다. 퇴직금 역시 임금 체불의 ‘법 위반’ 사항에 해당하기 때문에 노동자는 고용 관서를 통해 진정, 고소 등의 구제절차를 밟을 수 있고, 사업주는 처벌을 받는다. 

식당 노동자들과의 노동 상담을 이어가면서 사업주의 위법 사항을 추가로 발견하였다. 당시 최저임금은 120만원이 넘었지만 노동자들이 받고 있는 급여는 100만원이었다. 한 달에 이틀을 제외하고는 매주 토요일, 일요일까지 일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표면적으로 근로 계약은 노동자가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근로를 제공하고, 사용자는 그 대가로서 임금을 지급하는 내용의 계약이다. 만약 사용자가 근로를 제공한 만큼의 임금을 지급하지 않았다면 관련 절차를 통해 대가만큼 지급받으면 될 일이고, 노동자가 근로를 제공하지 않았다면 사용자는 그에 해당하는 임금을 지급하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현실에서 발생하는 상황은 말처럼 쉽지 않다. 

퇴직금으로 인한 체불액에 최저임금 위반과 주말 근무에 대한 미지급액도 더 포함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여성 노동자들은 미간의 주름이 더욱 깊어졌고 눈동자는 더욱 슬퍼졌다.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 사업장에서 부당한 일을 당했고, 예상보다 훨씬 많은 피해액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리라. 덧붙여 감히 추측건대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식당에 자신의 모든 열정을 쏟아 부었던 본인에게 보내는 당혹감과 위로의 눈빛이리라. 10년을 하루같이 일했던 그곳에서 나의 노동력의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는 것보다 건물 리모델링이 우선순위가 되어버린 현실을 인식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정신없는 식당에 활기를 불어넣던 여성노동자들의 열정을 직접 눈으로 보았기 때문에, 마냥 친절하고 좋은 분이라고 여기던 사장님의 이면을 경험했기 때문에 몇 년이 지난 지금에도 이 사건은 생생한 기억으로 남는다.  

인격과 분류될 수 없는 노동의 특성은 근대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노동법을 등장시켰다. 노동법은 계약적 관점에서의 노동에 비상품적 가치(인격)을 재등장시키는 제도적 의미를 가진다 
– 알랭쉬피오, 《노동법 비판》

노동의 문제는 노동자의 인격과 연관된다.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노동자가 본인의 인격이 침해당했을 때 느끼는 당혹감과 허탈감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상실감을 불러오기도 한다. 이러한 종류의 상실감은 떼인 임금을 받았다고 해서, 회사에 원직 복직을 한다고 해서 잊히는 성질의 것도 아니다. 

그러한 면에서 노동법은 노동 인권 존중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장치다. 

평화와 인권의 섬, 제주. 노동자의 노동인권 존중으로 시작해보자. 

[참고법령]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제4조(퇴직급여제도의 설정) ① 사용자는 퇴직하는 근로자에게 급여를 지급하기 위하여 퇴직급여제도 중 하나 이상의 제도를 설정하여야 한다. 다만, 계속근로기간이 1년 미만인 근로자, 4주간을 평균하여 1주간의 소정근로시간이 15시간 미만인 근로자에 대하여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제5조(새로 성립된 사업의 퇴직급여제도) 법률 제10967호 근로자퇴직급여 보장법 전부개정법률 시행일(2012. 7. 26.) 이후 새로 성립(합병·분할된 경우는 제외한다) 된 사업의 사용자는 근로자대표의 의견을 들어 사업의 성립 후 1년 이내에 확정급여형퇴직연금제도나 확정기여형퇴직연금제도를 설정하여야 한다.

제8조(퇴직금제도의 설정 등) ① 퇴직금제도를 설정하려는 사용자는 계속근로기간 1년에 대하여 30일분 이상의 평균임금을 퇴직금으로 퇴직 근로자에게 지급할 수 있는 제도를 설정하여야 한다.

# 김경희는?

‘평화의 섬 제주’는 일하는 노동자가 평화로울 때 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노동자의 인권과 권리보장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공인노무사이며 민주노총제주본부 법규국장으로 도민 대상 노동 상담을 하며 법률교육 및 청소년노동인권교육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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