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헌범 칼럼] 여전한 성장지상주의에 위기에 처한 자연 생태계와 의료 생태계

‘바리깡’ 벌목

또다시 잔인한 4월이 돌아온 것인가. 겨우내 혹독한 추위에 떨며 따뜻한 봄날만을 기다려 왔던 벚나무들의 겨우 꽃 봉우리를 터뜨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꽃샘추위 같은 소식이 들려온다. 환경파괴라는 여론의 질타를 받으며 중단됐던 비자림로 확장공사가 재개돼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이다. 그동안 드라이빙으로도 즐길 수 있는 호젓하고 아늑한 숲길로 도민들과 관광객들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어 왔던 비자림로의 울창한 삼나무들에 대한 잔인한 집단 살육이 단행된 것이다. 아름다운 숲길이 나무들의 무덤으로 순식간에 바뀌어 버린 학살의 현장을 지켜보던 한 환경운동가는 인부의 기계톱을 끌어안고 대성통곡을 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오랫동안 이 척박한 땅에 뿌리를 내리며 이제 우리와 한 몸이 된 줄로만 알았던 삼나무 거목들이 어느 날 갑자기 흉측한 기계장비들이 투입돼 일률적이고 획일적으로 싹둑 잘려나갔다. 머리가 귀밑에만 내려와도 순경이 달려와 ‘바리깡’(수동식 이발기)으로 머리를 밀어대던 과거의 군사독재시절이 이랬을까. 무참히 베어진 숲에는 정작 삼나무들만이 아닌 곰솔과 산뽕나무, 밤나무 등과 수백종의 다양한 식물들, 그리고 여기에 서식하는 수많은 동물들이 서로 생태계를 이뤄 나가고 있었다. 어느 언론은 “27초 빨리 가려고 30년 된 나무를 베나요”라고 울부짖는 어느 환경운동가의 안타까운 모습을 큼지막한 사진으로 담으며 비자림 벌목공사의 재개 강행을 꼬집었다. 

판도라의 문

관광 개발과 해외자본 유치라는 이름으로 제주만의 특색 있는 자연 생태계를 계속 파괴해 나가는 제주의 관광정책. 특히 도내외에서 몰려든 수많은 언론들과 환경운동가들의 따가운 눈총 속에 얄팍한 꼼수를 써가며 기어코 ‘산림 학살’을 단행한 제주 도정의 독선은 유구한 세월을 이어온 4대강을 삽시간에 하수구의 ‘똥물’로 만들어버린 MB의 ‘삽질’을 방불케 한다. 그들에게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른 어리석은 농부'가 떠오르는 것은 필자만의 쓸데없는 망상은 아닐 것이다. 비자림로 자체가 제주에서 손꼽히는 최고의 관광명소였고 일부러 차속을 늦춰서라도 신선하고 이색적인 풍광을 감상하며 지나가던 곳이었다.

수많은 고령의 수목들을 갈아엎고 보잘 것 없는 고속도로로 만들어버린 길을 보려고 관광객들이 제주도로 오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아니면 그렇게 빨리 달려서 비자림로보다 특별한 볼거리라도 있다는 것인가. 자연의 모든 것은 있는 그대로 의미를 지니는 법이다. 시대가 바뀌었지만 관광정책을 보존이 아니라 개발과 토건의 관점에서 접근해 자연을 파헤치고 도로를 만들고 호텔과 놀이시설을 짓는 후진적인 도정은 아직도 전혀 고쳐지지 않았다. 제주도가 아무리 변명하더라도 이번의 ‘막무가내’ 도로 확장이 제2공항 공사라는 판도라의 문을 열기 위한 정지작업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가당착

억겁의 세월을 지켜온 제주의 고유한 자연이 파괴되는 것이 이제 겨우 시작에 불과하다. 제주의 고유한 산야가 황금알을 낳는다는 이유로 단견적인 도정과 탐욕스런 토건자본에 의해 본격적으로 사형대에 올려져 심장부를 가르는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다. 영리병원 허가는 또 어떤가. 제2공항 개발이 자연 생태계의 파괴라면, 녹지그룹의 영리병원 허가는 의료 생태계의 파괴가 될 공산이 크다. 우리의 건강과 생명에 직결되는 문제인 것이다. 원 지사는 압도적인 반대여론을 의식해 영리병원이 40여 병상에 불과하기 때문에 전체 의료계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는 주장을 내세웠다.  

그러나 원 지사가 영리병원 허가를 위해 내세운 같은 논리로 반문하면, 총 1조원의 거액을 투자하는 부동산 기업이 의료기관을 운영할 능력도 없으면서 겨우 40여 병상밖에 되지 않는 영리병원에 국내는 물론 국제소송까지 불사할 것이라며 악착같이 목을 매는 이유는 무엇으로 설명할 것인가. 소규모의 병상인데도 이번 영리병원 승인이 “경제 살리기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제주도 관광산업을 살리기 위한 것”이라고 변명하니 이것이야말로 심각한 자가당착이 아닌가. 거액의 공사대금도 지불하지 못해 전체 사업 자체가 존폐의 기로에 처했는데 겨우 40여 병상에 대한 내국인 진료 허가로 극적으로 기사회생이라도 할 수 있다는 말일까. 

제주의 최대 현안들을 둘러싸고 생사를 건 도민들과 환경운동가들의 절박한 투쟁에 대한 제주도정의 태도는 이제 냉소를 넘어 조소에 가깝게만 느껴진다.ⓒ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의 최대 현안들을 둘러싸고 생사를 건 도민들과 환경운동가들의 절박한 투쟁에 대한 제주도정의 태도는 이제 냉소를 넘어 조소에 가깝게만 느껴진다.ⓒ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트로이 목마

모든 정황들은 녹지그룹의 배후에 한국의 의료자본들이 숨어 있으며, 거시적으로는 지난 수 십 년 동안 의료부문의 기업화를 끈질기게 추진해 온 한국의 재벌들이 이번 원 지사의 영리병원 허가를 지렛대로 의료산업의 전면에 나서려고 있음을 의심하게 한다. 이것은 영리병원 허가가 나오자마자 국내의 보수신문들이 이 순간만을 기다렸다는 듯 일제히 “국내병원들에게도 역차별이 없어야 할 것”이라며 장단을 맞춘 데서도 알 수 있다. 즉 녹지 병원은 국내 대자본들이 국민들의 압도적 반대 여론을 우회하고 그동안 신자유주의 광풍에서 그나마 명맥을 유지했던 최소한의 사회복지인 의료체계에 균열을 내기 위한 한국판 “트로이 목마”인 셈이다.   

도전 의식과 투자 마인드의 결핍으로 새로운 투자가 두려워 수백조의 유보금을 안방에 쌓아놓고 골목에서 영세 상인들과 ‘쪼잔’한 경쟁만을 일삼으며 ‘삥’을 뜯어먹고 사는 한국 재벌들. 그들에게 영리병원은 국민들의 목숨을 담보로 '앉아서 떼돈을 벌 수 있는' 마지막 남은 블루오션이다. 공사장 인부들에 대한 임금마저 지급하지 못하는 심각한 자금난에 쩔쩔매는 녹지그룹이 국내 최대 로펌인 태평양 법무법인을 소송 대리인으로 선정했다는 소식까지 들려온다. 엄청난 소송비용에 대한 든든한 자금줄이 따로 존재하고 있음을 쉽게 짐작하게 한다. 이렇게 보면 그들과 소송으로 맞서겠다는 원 지사가 ‘당랑거철(螳螂拒轍)’의 무모한 사마귀로 느껴지기 쉽다. 

신의 한수

그러나 걱정은 시기상조다. 제한적 영리병원 허가를 내 준 게 소송을 피하기 위해서인지, 아니면 소송을 부르기 위해서인지 도무지 분간이 안 서기 때문이다. 오히려 제한적 허가는 녹지병원 측의 소송까지 내다본 원 지사의 법률가 출신으로서의 '신의 한 수'일 수도 있다. 소송에서 이기면 영리병원의 내국인 진료를 막은 영웅이 되는 것이고, 소송에서 지면 그 책임을 사법부의 판결에 넘기면 그만이다. 그러나 어떠한 판결 결과가 나오든, 국가 전체에 대재앙이 될 수도 있는 영리병원을 가지고 판도라의 문을 여는 위험한 불장난을 한 과오는 그에게 결코 씻을 수 없는 부끄러운 치부로 남을 것이다.  

현재 도청 앞에서 수많은 천막을 치고 제 2공항과 영리병원 반대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힘겨운 농성을 하고 있는 많은 도민들의 모습은 무엇을 말하는가. 숙의형 여론조사로 반대가 압도적이었음에도 영리병원허가를 내주고 직접당사자인 주민들의 의견수렴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산림을 파괴하고 제2공항을 강행하려는 태도는 원 지사에게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지방 자치제도가 단지 자신의 정치적 욕망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일 뿐임을 보여준다. 십 여 년 전 대선 경선을 앞두고 '광주 판' 홀로코스트의 원흉으로 비난받는 전두환 씨에게 큰 절을 올렸던 원지사의 엉뚱한 행동이 결코 우연이 아닌 것 같아 안타깝다. 

모범생의 함정

제주의 최대 현안들을 둘러싸고 생사를 건 도민들과 환경운동가들의 절박한 투쟁에 대한 제주도정의 태도는 이제 냉소를 넘어 조소에 가깝게만 느껴진다. 이미 수명을 다한 과거의 성장지상주의를 부르는 것은 창의력의 빈곤일까, 아니면 정치철학의 부재일까. 천혜의 절경이었던 강정을 일거에 살벌하고 흉측한 군사기지촌으로 만들어버린 ‘바리깡’ 독재가 또 다시 ‘경제 살리기’라는 미명하에 마지막 남은 금기의 영역에서 끝없는 물신(物神)의 욕망을 쫓는 가운데 우리가 절대 절명의 위기에 처한 것은 아닐까 두렵기만 하다. / 김헌범 (제주한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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