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난 더을 생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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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의 借古述今] 114. 좋았던 그 버릇 생전 간다

* 좋아난 : 좋았던, 좋아하던
* 더을 : 후유증, 몸에 배어 버린 습관 혹은 그런 버릇

버릇은 제2의 천성이라 한다. 후천적인 쪽이 많다. 좋았던 버릇은 몸에 진득이 밴다. 고생을 해 보지 않고 호강만 누리던 사람이 갑자기 쪼들리는 형편에 맞닥뜨리면 이만저만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도저히 견뎌 내지 못할 정도로 흔들리기 쉽다. 어려움에서 벗어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는 얘기다. 세상살이 어려운 줄 모르고 편하게만 살다가 곤경에 빠지면, 돌변한 환경에 대처해 적응하려 하기보다는 지난날 좋았던 시절의 안이한 환상으로만 빠져들게 마련이다. 결국 자생력을 잃고 마는 수가 있다. 살아생전 커다란 장애요인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고생 모르고 살았던 호사스러운 삶이 현실의 어려움을 짐 지지 못한 나머지 나약한 사람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렇다면 호강은 병폐다.

우리 속담에 ‘초년고생은 양석(양식)지고 다니면서 한다’ 했다. 젊어서 고생하면 늙어 낙이 오는 수가 많으니 젊을 때 고생을 달게 하라는 말이다. ‘초년고생은 돈 주엉도 못 산다’와 같은 맥락이다. 

어린 시절을 1950년대에 겪은 사람은 초년고생을 안다. 가난을 어지간히 겪은 사람들이다. 뱃가죽이 등짝에 붙어 본 사람들이고, 고픈 배를 맹물로 채우며 짧다는 겨울 낮을 하루 두 끼로 면했던 기억을 갖고 있을 테다. 고구마가 구황작물(흉년 때 주식을 대신하던 것)로 톡톡히 한 몫을 했다. 그것 두세 개로 배를 속이기도 했으니 요즘 아이들에게 그러라면 까무러칠 것이다.
  
옆집 70대 한 분이 40줄의 아들 네 형제를 앉혀 놓고 옛날 자신이 겪었던 가난을 회고하며 밥 굶었던 말을 하자, “아버지, 무사 밥을 굶읍디가? 라면이라도 끓영 먹주게”(아버지, 왜 굶습니까? 라면이라도 끓여 먹을 일이지) 했단다. 라면은 5.16쿠데타 직후에 나온 음식 아닌가. 한창 몰라 한 얘기다.
  
요즘 도농(都農) 할 것 없이 초년고생 모르고 자라는 젊은이들이 많다. 문제다.

하지만 초년고생 운운하는 속담은 옛말이 돼 버린 것 같다. 예전에는 너나없이 고생을 하면서 살았으므로 초년고생은 돈 주고도 못 한다고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이제는 그냥 고생하는 식의 막연한 그런 고생은 하지 않는다. 결핍해야 글을 쓴다고 한다. 어쩌면 이런 뚜렷한 목적이 있는 사람이라야 그 목적에 이르기 위해 고생하지 그렇지 않고 경험을 위해, 삶의 지혜를 얻기 위해 하는 고생은 싫어한다. 

1950년대 학교 교실 모습. 출처=제주학아카이브.
1950년대 학교 모습. 지금은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콩나무 교실이다. 출처=제주학아카이브.

그나마 젊어서 고생하는 이들이 있다.

운동선수라든지, 특별히 자기 재능을 살리기 위해 하는 일은 젊어서 어느 경지에 이를 때까지 고생을 하는 것으로 당연히 받아들인다. 고생을 하되 골라서 한다.

그러니까 목적이 있을 때는 고생을 사서도 한다는 얘기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정말 먹을 것을 질어지고 가서 하는 것처럼 고생을 한 사람에게는 그만한 대가가 주어지게 마련이고, 그 고생으로 하여 제가 원하는 것을 얻을 때는 사회적으로 충분히 보상을 받는 셈이 된다. 요즘 젊은이들은 그런 시대를 살고 있다.

모든 것은 젊었을 때다.

공부도 그렇고 운동도 그렇다. 그 외에 자신의 재능을 살리는 일에 이르기까지. 모두 젊어서 해야만 그만큼 능률이 오르고 원하는 성과를 획득할 수가 있는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젊어서 그런 고생을 하는 쪽보다는 쉬운 길을 찾아가기를 원한다. 그러다 종국에는 노년에 이르러 고생을 하게 되고 만다.

무슨 일에는 기회가 있는 법이다.  

인생은 실기(失機)하면 다시 회복하기란 쉽지 않다. 아니,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다. 재능을 갖고 있고 그것을 좋아한다 해도 나이가 들어서는 절대로 이룰 수 없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자랑스러운 피겨의 여왕, 우리 문화의 아이콘인 김연아를 보라. 나이가 든 사람은 ‘김연아’가 되지 못한다. 아직 걸음도 제대로 놓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스케이트를 신겨 타게 했단다. 그렇게 피나는 훈련을 해서 이뤄낸 눈부신 성과가 ‘김연아의 피겨’다. 중학생만 돼도 시작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안되는 것은 안된다. 하고 싶어도 안된다.

무엇을 시작하려 해도 초년에 해야 소기의 목정을 달성할 수 있다. 나이가 들면 이루려는 성과와는 거리가 멀어진다. 스타가 되기 위해서는, 적어도 그것을 직업으로 삼기 위해서는 초년에 고생을 해야만 가능하다.

‘좋아난 더을 생전 가기’ 전에 어서 탈탈 털어 버려야 한다. 고난을 헤쳐 나가는 것이 인생이다. 초년고생을 한 사람은 인생의 바다를 힘차게 노 젓고 난 뒤 안온한 고향의 포구로 돌아와 닻을 내린다. 성공한 항해자가 될 것이다. 성난 파도가 억센 뱃사공을 만든다. /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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