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넘어서려는 인간, 트랜스휴먼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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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世通, 제주 읽기] (129) 신상규, 《호모 사피엔스의 미래: 포스트휴먼과 트랜스휴머니즘》, 아카넷, 2014.
신상규, 《호모 사피엔스의 미래: 포스트휴먼과 트랜스휴머니즘》, 아카넷, 2014. 출처=알라딘. ⓒ제주의소리
신상규, 《호모 사피엔스의 미래: 포스트휴먼과 트랜스휴머니즘》, 아카넷, 2014. 출처=알라딘. ⓒ제주의소리

최근 들어,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른바 알파고 쇼크 이후에 ‘4차 산업 혁명’이란 단어는 거의 일상어가 되었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거의 모든 후보들이 이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하더니 인공지능이 미래의 일자리를 잠식할 것인가 하는 질문은 이제 모두의 관심사가 되었다. 그 단어가 유독 한국에서만 사용된다든가, 창조경제 담론의 허망함을 어쩐지 닮아 있다는 비판이나 반론은 우리 앞에 닥쳐올 미래의 거대한 위협 혹은 희망찬 낙관이 불러일으키는 뜨거운 복합감정 속에서는 속수무책인 듯하다. 

4차 산업 혁명만큼이나 최근 학계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포스트휴먼’이란 용어이다. 포스트휴먼(posthuman)이란 한 마디로 과학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탄생할 미래의 인간, 인간 이후의 인간을 뜻한다. 건강과 수명, 기억과 추론과 같은 인지 능력, 감정적 능력 등이 현재의 인간보다 월등하게 뛰어난 존재를 그대로 인간이라고 부르기 어려워질 것이다.

이를테면, 120살 남짓 될 것으로 추정되는 인간의 수명이 500살이나 900살이나 혹은 거의 영생에 가까워진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인간에 대한 개념과 이미지는 전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러한 미래의 인간을 포스트휴먼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포스트휴먼과 관련된 다양하고 복잡한 담론들이 포스트휴머니즘(posthumanism)이다.

《호모 사피엔스의 미래》의 저자인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신상규는 한국에서 포스트휴머니즘과 관련된 학술적 담론을 선도적으로 제기하고 주도하고 있는 학자이다. 인간의 개념과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는 과학기술을, 그리고 이 변화 자체를 깊이 사유해야하는 것이 포스트휴먼 시대의 인문학, 즉 ‘포스트-인문학’의 존재 이유일 것이다. 미래의 인간과 사회에 대해 진지하게 숙고해볼 사람은 이 책을 먼저 읽어보는 것이 좋겠다.

‘트랜스휴먼’(transhuman)은 포스트휴먼으로 가는 중간 형태의 인간, 즉 ‘과도기의 인간(transitional human)’을 나타내는 말이다.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은 인간이 포스트휴먼으로 변화하는 것을 긍정하고 그 변화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지적, 문화적 운동을 지칭한다. 트랜스휴머니즘이란 말은 영국의 생물학자 줄리언 헉슬리가 최초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는 진화론의 보급에 기여한 동물학자 토머스 헉슬리의 손자이다. 또한 그는 흥미롭게도 <멋진 신세계>의 작가인 올더스 헉슬리의 형이기도 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트랜스휴머니즘적인 주제나 포스트휴먼의 이미지는 주로 SF 작가들에 의해 다루어졌다고 한다. 아이작 아시모프나 아서 C. 클라크, 로버트 하인라인, 스타니스 와프 렘과 같은 유명한 SF 작가들은 복제, 유전공학, 인공지능, 안드로이드, 에너지 형태로 존재하는 포스트휴먼과 같은 소재들로 SF의 지면을 채웠다. 아니나 다를까 많은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은 실제로 SF에서 주요한 영감을 얻어왔다. 

그런데 우리 시대는 더 이상 SF와 현실 간의 경계가 의미가 없어졌다. SF에서나 등장했던 신기한 과학기술이 현실화되고, 더불어 SF의 주요한 사회적 문제들이 바로 우리들이 고민해야 할 의제로 부상한 것이다. 특별히 이 책에서 주목하는 주제는 ‘인간 향상’(human enhancement) 기술과 그에 관련된 윤리적 문제이다. 

생명공학기술, 분자나노기술, 정보기술, 인지과학으로 불리는 이른바 NBIC(Nano, Bio, Information technology, Cognitive science) 기술들은 인간 이해의 변화를 넘어 인간 본성 자체를 변화시키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은 이러한 신생기술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장애, 고통, 질병, 노화, 죽음과 같은 인간의 한계 조건들을 제거하거나 극복하기를 꿈꾼다. 

특별히 생명공학기술과 의료 분야에서 트랜스휴먼 기술의 변화 징후가 가장 먼저 목격되고 있다. 잘 알려진 것처럼 한국은 인구 대비 성형수술 횟수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이다. 이 책의 저자가 책의 서문에서 밝힌 일화는 흥미롭다. 한국에서 트랜스휴머니즘 논의가 활발하지 않다는 것에 대해 외국의 다른 학자가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이미 트랜스휴머니스트이므로 과학기술에 대한 입장을 정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는 것. 저자의 말처럼, 과도한 일반화이지만 일면 수긍할 측면이 많다. 실제로 한국연구재단은 트랜스휴먼 기술에 관한 연구를 박사과정의 연습 과제로 제시하기도 했다. 

불로초를 찾던 진시황 이야기에서처럼 인간은 ‘트랜스휴먼’이란 말이 없었던 아주 오래 전부터 영생불사와 무병장수를 꿈꿔왔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이제 과학기술은 정말로 무병장수의 꿈을 이루게 해줄 가능성을 점점 높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 외국에서는 트랜스휴먼 인간 향상에 대해서 격렬한 논쟁이 진행 중일 정도로 단순화할 수 없는 문제이다. 첨단 과학기술로 인간 본성을 변화시키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윤리적인 이유로 걱정을 한다.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트랜스휴머니즘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사상’이라고 비판했다는 것은 유명하다. 마이클 샌델이나 위르겐 하버마스 등도 윤리적 이유에서 인간 향상에 반대했다. 인간의 존엄성이 무너질 것이라거나, 향상 기술로 인해 사회적 불평등이 심해질 것이라거나, 생물학적인 위험이 존재할 것이라는 등의 다양한 논거들이다. 

향상은 그 표현 자체가 더욱 나은 인간으로 변화시킨다는 평가적인 함축을 가진 것처럼 보여서 많은 오해를 유발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인간의 향상에 반대하고 있기도 하거니와, 특정한 인간 능력의 향상이 필연적으로 더 나은 인간이나 더 나은 인간적 삶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가령 마이클 하우스켈러(Michael Hauskeller)와 같은 철학자는 생명공학적 기술을 이용해 정신적 혹은 육체적 능력을 향상시킴으로써 우리의 삶이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에 대해서 매우 회의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Hauskeller, 2013). 우리는 이 책에서 가능한 한 가치중립적인 의미로 과학기술을 통한 인간 능력이나 특징의 변화라는 의미로 향상이란 표현을 사용하고자 한다. 여기에는 더 나은 인간이나 더 나은 삶이라는 의미는 함축되어 있지 않다. (66~67면)

또한, 트랜스휴먼 인간 향상 기술이 인간의 행복을 그대로 이루게 해줄 것이라는 믿음 역시 지나치게 순진하다. 그러나 저자가 인간 향상에 반대하는 주장들을 충실하게 반박하는 것처럼, 반대 논리들 역시 합리적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무턱대고 인간 향상에 반대하거나 겁을 먹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인간 향상이 불러올 경쟁이나 도덕적 문제가 아니라 왜 우리는 그토록 ‘경쟁적으로’ 인간 향상을 원하는가 물어볼 수 있겠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의 다음과 같은 반론이야말로, 다 같이 곱씹어볼 만한, 이 책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도덕적 결의의 훼손이 문제라면, 이는 인간 향상의 추구 때문이 아니라, 향상을 추구하도록 만드는 시장 자유주의나 자본주의적 삶의 태도와 같은 오늘날 우리의 삶의 양식으로부터 기인하는 문제일 것이다. 인간 향상은 도덕적 결의의 훼손에 대한 원인이 아니라 그 결과에 해당한다. (2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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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대원 제주대 교수

서강대학교 국어국문학·신문방송학 전공, 동대학원 국문학 박사과정 졸업
대산대학문학상(평론 부문) 수상 
2011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평론 부문 당선
제주대학교 국어교육과 조교수 재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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