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청진기] (1) 청년의 힘으로 움직이는 나라를 세우자 / 박경호

'제주 청진기'는 제주에 사는 청년 논객들의 글이다. 제주 청년들의 솔한 이야다. 청년이 함께 하면 세상이 바뀐다. 우리 주변의 소소한 이야기에서, 각종 사회문제에 대한 비판적 시선, 청년들의 삶, 기존 언론에서 다루지 않는 서브컬쳐( Subculture)에 이르기까지 '막힘 없는' 주제를 다룬다. 전제는 '청년 의제'를 '청년의 소리'로 내는 것이다. 청진기를 대듯 청년들의 이야기를 격주마다 속 시원히 들어 볼 것이다. [편집자] 

 

제주 4.3 71주년이다. 7년 간 무분별한 학살로 제주도민 중 최소 3만여명이 희생됐다. 대한민국의 슬프고 아픈 역사임이 분명하다. 수많은 희생 중에는 당시 10대, 20대, 30대가 가장 많다. 현재까지 파악된 인명 피해 중 약 72%가 청년인 셈이다. 해방 후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갈 청년들이었다. 이제야 꿈을 펼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그들이 희생된 것이다.

많은 희생의 이면에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제주4.3의 정신이 있다. 1946년 남한은 미군에 의해 과도입법의원(過渡立法議院) 선거를 진행했다. 당시 선거는 남성 가부장제 중심의 간접선거로 일부 기득권이 선거권을 가졌다. 여성과 청년들은 선거에서 배제됐다. 해방 후 만들어지는 새로운 시대에 여성과 청년들의 의사는 전혀 듣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배제된 많은 분들의 염원이 제주 4.3에 담겨져 있다.

① 기업가와 노동자가 다 같이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세우자 
② 지주와 농민이 다 같이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세우자
③ 여자의 권리가 남자와 같이 되는 나라를 세우자
④ 청년의 힘으로 움직이는 나라를 세우자
⑤ 학생이 안심하고 공부할 수 있는 나라를 세우자

제주 4.3 평화기념관에는 ‘민주주의민족전선’의 건국 5칙이 전시돼 있다. ‘민주주의민족전선 제주위원회’는 28주년 3.1절 기념행사를 주도했고, 명예의장으로 당시 박경훈 도지사가 있을 정도로 범도민적 단체였다. 이 건국 5칙을 지난 해 전국 청년 활동가들과 함께 보며 마음이 뭉클했었다. 바로 이게 당시 도민들의 염원이자 우리가 이어가야 할 제주 4.3의 정신이지 않을까. 국민 모두가 평등하며 잘 살 수 있는 그런 나라를 세우는 것.

과연 그런 나라는 이루어졌을까? 제주 4.3 이후에도 더 많은 청년들의 희생은 이어졌다. 5.18 광주민주화항쟁도, 87년 6월 항쟁도 그 시작은 학생이었고, 학생들이 맨 앞에 섰다. 그 만큼 많은 청년들이 희생되었다. 71주년이 되는 이 시점에 유독 ‘청년의 힘으로 움직이는 나라를 세우자.’라는 문장이 와 닿는다.

니트족, N포세대 등으로 불리는 것이 우리 시대의 청년들이다. 많은 기사와 뉴스에서는 청년 일자리 문제, 제주를 떠나는 청년들의 모습을 비춘다. 제주특별자치도의 ‘2017년 제주청년실태조사’에는 제주를 떠나고자 하는 청년들은 46%였다. 71년이나 지난 지금도 제주 청년들은 꿈을 펼칠 수 없는 불안한 사회 속에서 배제되고, 희생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학업, 일자리 등으로 매년 2만 명 이상의 청년들이 제주를 떠난다. 최근 제주살이 붐으로 유입된 청년들이 다시 제주를 떠난다. 소득과 주거비가 결정적 원인이었다. 제주를 떠나고자 하는 청년들은 일자리, 인프라, 경험과 기회 등을 언급하였다. 청년들이 제주에서 살려면 한정된 직업을 선택해야 하고, 전국 최저 임금을 받지만 서울 다음으로 비싼 주거비를 부담해야 한다. 

문화, 교육 등의 인프라가 부족하다 보니 경험과 기회를 위해 시간과 비용을 들여 타 지역을 다녀와야 한다. 제주청년 실태조사 중 많은 청년들이 제주의 가치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정작 ‘나는 제주가 나의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한다’라는 질문에는 29.7%으로 부정적 답변이 긍정적 답변보다 높았다. 제주 청년으로 사는 것은 이렇다. 제주에서 꿈을 펼치는 것이 어렵다. 71년 전 해방 후 새로운 시대에서 꿈을 펼치고자 했지만 배제됐던 청년들과 비슷하다.

수많은 희생으로 만들어진 나라이다. 그 중에서도 청년들의 희생은 가장 많았다. 그렇게 희생된 청년들의 정신은 제주4.3에서 말하는 ‘청년들의 힘으로 움직이는 나라를 세우자’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 이 나라의 많은 청년들은 ‘부모세대 보다 못 사는’ 그런 존재가 되었다. 일부에서는 ‘더 노력해야 한다’, ‘약해 빠졌다’ 라고 말한다. ‘88만원 세대’, ‘노오력의 배신’이라는 책 제목만 봐도 지금 청년들이 얼마나 힘든지 알 것이다. 임금 빼고는 모든 물가가 증가한다. 수저계급론으로 시작하기 전에 이미 결과는 정해져 있다. 청년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졌지만 정작 그들이 바라던 나라는 멀어 보인다.

많은 분들의 고생으로 지금의 청년들은 먹고사는 문제보다 자아실현을 중요시 생각한다. 그리고 그 가치는 너무나 다양하다. 어떤 말로도 한데 묶을 수 없을 것 같다.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제주. 걱정 없이 자아실현으로 활력이 넘치는 제주. 모두가 평등하게 노력이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제주. 그런 제주의 미래를 기대해본다. 그리고 그런 제주를 청년들이 만들 수 있는 제주가 되길 바란다. 그게 바로 제주4.3의 정신을 계승하는 일이라 생각된다.

박경호(34)는?

"제주 청년, 사람을 연결하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 청년이다. 2015년 제주사람도서관, 제주청년협동조합을 함께 하면서 많은 사람들, 특히 청년들을 만나왔다. 그 과정에서 청년들과 함께 재미난 프로젝트도 진행했다.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들을 함께 고민하며 풀어갔다.

현재는 프리랜서로 제주에서 재미난 작당을 고민 중이다. 그 안에는 개인의 자유가 존중되는 느슨한 커뮤니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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