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너무나 짧아 더 씁쓸한 제주연극제 심사
[기고] 너무나 짧아 더 씁쓸한 제주연극제 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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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연극협회에 가입할 때까지 오랜 세월이 흘러야만 했다. 가입 극단으로서 올해 대한민국연극제 제주예선대회는 기실 오랜만에 (1986년과 1987년 당시 소리 극단의 명칭으로 참여 이후) 얻은 자격으로 대극장 무대에 서는 뿌듯함도 없지는 않았다. 

예선대회는 본인이 대표로 있는 극단 파노가리(판, 오가리)를 비롯해 총 세 극단의 열띤 경합이었다. 이전 양방전(兩方戰)에서 파노가리가 더해졌으니, 삼방전이 됐다는 것도 작은 변화다. 

대회를 치르면서 변화라고 느낀 것이 있다면 심사위원들의 노령화다. 이전에 비해 너무 뚜렷하게 원로 심사위원이 출현했다. 나이가 정신적인 예술혼을 잡아먹지는 않을 것이요, 늙었다고 예술 못할 것도 아니다. 아니, 자기 예술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늙어갈수록 자기 예술은 십상 성숙도를 더해갈 수 있는 것이다.

연극을 관람하는 차원과 심사하는 차원을 두고 생각해 보자. 늙은 배우를 놓고 보자면, 배우가 설사 몸이 말이 잘 들지 않을지언정 대사라도 잘 뱉을 수 있다면 우리는 경앙의 눈초리로 바라볼 수도 있다. 아무튼 꼭 같은 경우의 심사위원을 제주예선대회에 초빙했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의 모습은 기대와 달랐다.

배우의 기본기 테스트를 위해 마이크를 사용할 수 없다는 대회 규칙과의 상관을 무시하는 것인지, 아니면 당신들의 체력 때문인지 잠시 객석에 앉아 있다 모니터실로 이동하는 자율적으로 분주한 이들이었다. 이동하는 동안에 극단 연출이나 배우들의 극적 포인트로 매력을 방사할 장면이나 열정적인 몸부림, 복합 감정의 대사를 많이 놓쳐도 되는 무언의 피 보호 의식이 익숙하신 분들인가 의심스럽다. 과연 영화가 아닌 다음에야 감히 누가 살아 있는 자의 동작과 육성의 예술을 모니터를 보고 노안으로 심사할 수 있을까? 

심사위원이 작품을 ‘왜 좋은가, 왜 나쁜가’라고 평가하는 역할은 기본이다. 더 나아가서 공연의 질적 향상을 위한 날카로운 칼질, 공연자들의 극적 도안의 비교 분석과 개선을 향한 보완 사항이 필요하다. 

하지만, 평은 너무 간단하였다. “연극은 종합예술입니다.” 예선 참여 극단에 대한 개별적 평가도 없었다.

하나 달라진 계제(階梯)가 없진 않았다. 극이 끝나고, 심사위원들이 막 뒤로 와서 연출과 배우들에게 인사해주는 선거 캠페인에서 상시할 수 있을 민주주의적 형평성의 매너다.  

이를 예지한 극단 대표인 나는 심사위원들이 합석하는 쫑파티에 감히 불참했다. 예선대회는 노령 심사위원들을 위한 모금 캠페인의 시나리오였다. / 문무환 극단 파노가리 대표, 시인, 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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