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시선] 정부 무책임에 元도정 ‘조삼모사’...상황 엄중, 함께 헤쳐나가야

원희룡 제주지사가 결국 영리병원(녹지국제병원) 허가를 취소했다. 시각차는 있겠으나, 겉으로만 보면 결자해지를 택한 모양새다. 애초 개설을 불허했다면 간단했을 문제가 다소 복잡하게 꼬였다는 지적도 있지만, 뒤늦게나마 민심을 받든 셈이 됐다.   

원 지사는 취소 사유로 녹지 측의 진정성 부족을 꼽았다. 도통 개원 준비 노력이 안보였다는 것이다. 주장의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태도의 모순도 꼬집었다. 

무엇보다 주어진 3개월 동안 병원 문을 열지 않은게 결정적이었다. 절차와 규정을 앞세우는 행정기관의 생리상 이해못할 바는 아니다.  

조건부 허가를 내준 작년 12월5일로 돌아가보자.

행정의 신뢰도, 거액의 손해배상, 고용 유지, 외교마찰, 책임 공방 소지… 

현실적으로 거부할 명분이 없었다며 원 지사가 내뱉은 말들이다.   

불가피한 선택이라며 국가의 미래까지 걱정했던 그에게 “공공의료체계의 붕괴 우려를 그냥 놔둘 수 없었다”는 말을 기대하기는 만무한 노릇이다.   

허가 취소에 대해 영리병원 반대 측에선 환영 입장과 함께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여러 의혹에도 ‘묻지마 허가’를 내준 과오를 인정하고, 사회적 혼란을 야기한 정치적 책임을 다하라는 주문도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원 지사로서는 고독한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얼마전에는 도민 사과, 나아가 원죄(原罪)에 대한 반성 요구에 직면했다. 

‘신중 모드’에서 불허(공론조사 수용)로, 조건부 허가에서 취소로…. 결과적으로 두차례 입장을 바꾼 터라 갈등과 혼란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 정치적으로도 책임질 일이 있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 

여기서 한가지 따져볼 게 있다.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에서 비롯된 ‘최초의 죄’ 원죄 부분이다. 원지사 입장에서는 매듭을 엉키게 했는지 몰라도, 왜 자신이 원죄까지 짊어져야 하는지 억울해 할 수 있다.  

엄밀히 말해, 원죄는 정부(보건복지부)가 더 크게 지었다. 2015년 12월18일 녹지병원 사업계획서 승인이 모든 논란의 출발점이다. 당시에도 국내 자본의 우회 투자 등 여러 의혹이 제기됐다. 박근혜 정부 때였다. 

정권이 바뀌었어도 정부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아니 너무 무책임했다. 

2017년 8월28일 녹지 측으로부터 병원 개설 허가 신청을 받은 제주도는 그해 9월4일 보건복지부에 공문을 보내 도움을 구했다. 사업계획을 승인한 정부와 허가 여부를 결정할 제주도가 공동 대응하자는 취지였다. 이 때부터 제주도는 영리병원을 뜨거운 감자로 인식하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 돌아온 대답은 허가권자가 ‘알아서 하라’는 거였다. ‘(문재인)정부는 의료 공공성을 훼손하는 의료 영리화 정책을 추진하지 않을 것을 밝힌 바 있다’고도 했다. 

현 정부는 영리병원을 반대하지만, 이미 전 정부에서 승인이 났으니 괜히 끼기는 싫고 제주도가 판단하라는 식이다. 이 얼마나 무책임한가. 

이 뿐만이 아니었다. 

원 지사는 지난 9일 도의회에서 “공론조사 후에도 청와대와 보건복지부, JDC(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에 '논의를 하자'고 몇 달간 읍소, 압박 등 온갖 노력을 했지만 협의 다운 협의를 못해봤다”고 털어놨다. 허가 신청부터 조건부 허가(2018년 12월5일)까지 14개월 넘게 온갖 비판과 압박을 원 지사 홀로 감수한 셈이다. 

두둔하고픈 게 아니다. 조건부 허가에 개인의 정치적인 의도가 배어 있었다면, 그 책임은 오롯이 원 지사의 몫이다. 

이제야말로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원죄도 원죄려니와, 이후의 상황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진행중인 조건부 허가 취소 소송은 실익이 없어졌으므로 각하될 가능성이 높지만, 이번 허가 취소에 대한 소송이 제기될 수 있다. 또 손해배상소송이 이어질 수 있다. 원 지사가 조건부 허가 당시 불가피하다며 내세웠던 이유들이 현실화할 가능성도 있다. 

녹지측의 입장이 변수이긴 하나, 영리병원이 아니라면 그 건물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문제도 남아있다. 

물론 사회적 논의는 이미 시작됐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는 공공병원 전환을 전제로 정부, 제주도, 녹지, JDC 4자협의를 제안했다. 제주도의회 고현수 의원도 제주도와 JDC, 녹지, 정부가 참여하는 ‘3+1 협의체’ 구성과 병원 인수 후 4.3치유센터 건립 또는 어린이재활병원 유치 등의 방안을 제안했다. 이에 원 지사는 취지에 적극 공감하면서 거꾸로 도의회의 중재를 요청했다. 보건복지부, 건강보험, 국민연금 등 책임있는 기관들에 다리를 놔달라는 얘기다. 

제주도 혼자 헤쳐나가기에는 하나같이 버거운 문제들이다. 지금이 이해당사자들의 책임있는 모습이 절실한 때다. 네탓 공방은 그 이후에 해도 늦지 않다. / 논설주간-상임이사

* 소리시선(視線) /  ‘소리시선’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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