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지휘자 '특별전형' 논란 본질 아니, 진짜 속내는 '합창단 내분' / 한형진 기자

제주예술단 공연 모습. ⓒ제주의소리
제주예술단 공연 모습. ⓒ제주의소리

'말 많고 탈 많은' 제주도립 제주합창단이 좀처럼 정상화의 길에 접어들지 못하고 있다.

제9대 양은호 지휘자는 지난해 4월 10일 임기를 마쳤지만, 1년이 넘도록 상임지휘자가 공석으로 남아있다. 3년 넘게 이어온 전 지휘자와의 법적 다툼도 최근 마무리 수순을 밟으면서 새로운 지휘자 물색에 나섰지만, 도의회가 제주시의 ‘특별전형’ 채용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제주시는 전임 지휘자와의 갈등, 단원들 간의 다툼 등을 고려할 때 제주합창단과 인연도 있는 연륜과 실력을 갖춘 지휘자를 초청해 빠른 시일 내에 합창단을 안정화해야 한다는 이유에서 특별전형을 추진했다. 

조례에 근거한 특별전형은 ▲해당 분야에 전문지식과 경험이 풍부하고 국·내외에서 그 실력이 우수하다고 인정되는 사람을 위촉할 필요가 있을 때 ▲공개전형 시 지원하는 사람이 없을 때 ▲해당 분야에 대한 국·내외 유명 예술경연대회에서 입상한 경력이 있는 사람 중에서 도지사가 필요하다고 인정할 때, 제주예술단 운영위원회 심의를 거쳐 특정인을 추천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도의회 문화관광체육위원회(문광위)는 지난 15일 열린 임시회에서 “제주시가 말하는 그런 상황일수록 정식으로 공모해서 지휘자를 선임해야 말이 나오지 않는다”면서 특별전형에 반대 입장을 피력했다. 

때문에 17일 제주시 주최로 열린 제주예술단 2분과 운영위원회 회의에서는 특별전형 후보였던 국내 명망있는 K 지휘자 선임 안건이 부결됐다. 교향악단과 합창단 관리를 담당하는 2분과 운영위원회에 문광위 소속 L모 도의원도 속한 만큼, 사실상 도의회가 부결을 주도한 모양이 됐다.

혼란스러울 때 일수록 '정공법'을 택해야 한다는 의원들의 지적은 나름 일리가 있다. 그러나 후보를 한 명으로 추려 선임하는 특별전형 제도가 “전문성, 공정성의 문제가 따른다”는 주장은 지나치다. 

특히 이번 특별전형에 추천된 K 지휘자의 경우에 더 그렇다. 국립합창단 상임지휘자를 지낸 K 지휘자에게 도의회가 "(예술적) 전문성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 꼴이다. 또한 현재 조례에 근거한 '특별전형'을 두고 의회 스스로 공정성을 지적한 것도 결과적으로 어색한 상황이다.

앞서 도의회 이경용 문화체육관광위원장은 지난 15일 제주합창단 특별전형 제도개선 문제를 언급하며 “아무리 특별전형이라도 공정성과 전문성이 확보돼야 한다”며 이에 따른 제도개선과 진행과정의 재검토를 주문했다.

물론 'K 지휘자'를 콕 집어 공정성과 전문성을 언급한 것이 아닐 순 있다. 다만 현 조례에 근거해 진행되고 있는 K 지휘자에 대한 특별전형 과정에서 문제를 지적했기에 대한민국 최고 권위의 국립합창단 상임지휘자 출신에 대한 '전문성' 운운은 지나쳤다는 지적도 일리 있다.  

특별전형은 제주예술단 설치 및 운영 조례에 나와 있는 대로 운영위원회가 결정하는 제도다. 현재 2분과 운영위원회에는 제주 안팎에서 활동하는 음악인들과 앞서 언급한대로 문광위 도의원도 한 명 포함돼 있다. 특별전형의 전문성, 공정성에 대한 문제제기는 곧 운영위원회가 전문성, 공정성이 없다는 주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더욱이 제주시는 이번 지휘자 특별전형을 추진하면서 공정성 문제를 우려해 (사)한국지휘자협회에 복수의 후보를 선별해 자문까지 받았다. 

“(특별전형 후보가) 왜 한 사람이어야 하냐”는 도의원들의 인식도 마찬가지.

공개모집이 필요하다는 의견은 십분 이해되나, 특별한 경우에 한해 후보 ‘한 명’을 선정하는 방식이 제도의 문제라는 주장은 무리한 비약에 다름 아니다. 특별전형의 조건 가운데 하나가 ‘공개전형 시 지원하는 사람이 없을 때’이다. 도의원들의 말마따나 특별전형에서 "2~3배수 후보"를 두라고 한다면, 특별전형과 공개모집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여러 사안에서도 느꼈지만 문광위 도의원들의 문제 제기 '깊이'에 아쉬움을 느낀다.

제주시는 특별채용 부결에 대해 “다른 특별채용 대상자를 찾든지, 지금처럼 객원 지휘자를 초빙하든지, 아니면 공개 모집하든지 여러 선택지가 남아있다”면서 “혼란스러운 상황을 하루 빨리 수습하고 합창단이 정상화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15일 문광위 도의원들이 “위급한 상황”, “편가르기”, “불협화음”, “불화”라는 단어를 사용할 만큼, 지휘자 공백 1년을 지나는 제주합창단의 현실은 대략 짐작 가능하다. 일각에서는 이번 특별채용 후보 지휘자를 둘러싸고 도의회에서 벌어진 공방이, 합창단 내부의 세력 다툼이 옮겨갔다는 씁쓸한 시각도 있다.

합창단 내부 갈등은 시기를 달리하며 반복됐다는 점을 고려할 때, 결국 어느 지휘자가 오더라도 꼬인 매듭을 푸는 실마리는 단원들이라는 판단이 앞선다. 단원들이 화합·단합을 이루지 않는 이상, 설사 세계적인 지휘자가 오더라도 제주합창단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도민들은 99회에 멈춘 제주합창단의 정기연주회를 1년 넘게 기다리고 있다.  

제주합창단 사정을 잘 아는 도립예술단 관계자는 “자세히 밝힐 수 없지만 제주합창단은 단원들 양 쪽 모두 문제가 있다. 누가 누구를 욕하거나 타박할 처지가 아니”라는 말을 남겼다. 단순한 양비론으로 치부하지 말아야 하는 조언이다. '세금 도둑'이니, '3류 합창단 전락'이니 하는 극히 일각의 지적이 도민사회 전반의 비판이 되지 말란 법이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 문화부 한형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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