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115. 걱정하는 사람은 빨래하러 산짓물에 가도 흔들리는 팡에 앉는다

* 조드는 : 걱정하는

* 산짓물 : 제주시 건입동에 있는 샘물의 이름. 지금은 산지천(山池川)으로 확대되면서 생태계가 복원됐다.

* 궁근 : 흔들거리는

* 팡 : 짐을 내려놓고 쉬게 만들어진 곳(쉼팡)인데, 여기서는 빨래터에 있는 넙죽한 돌판을 말함.

* 앚나 : 앉는다

 

걱정거리가 많아 늘 수심에 겨워 있는 사람은 이상하게도 자꾸 곤란한 일만 겹치게 된다. 수심이 또 다른 수심을 부르는가.

오죽 했으면 빨래하러 산짓물에 가 앉았는데 앉은 돌까지 이리 흔들 저리 흔들 할까. 하필 흔들리는 돌판을 만난 거다. 까딱하다 넘어져 물에 빠질라. 그러니 불안한 곳에 앉아서 빨래마저 제대로 할 수 없다 함이다.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무슨 일이 잘 풀리지 않는 사람은 안되는 쪽으로만 돌아간다는 빗댐이다.

‘물랑 지컬랑 산짓물 지곡/ 낭이랑 지컬랑 동박낭 지라/ ᄌᆞ드는 사름은 산짓물 가도/ 궁근 팡에 앚아사 ᄒᆞᆫ다(물을 질 바에랑 산지물 질 것이고, 나무를 질 것이면 동백나무를 지라. 걱정하는 사람을 빨래하러 산지물에 가도 흔들리는 돌 위에 앉아야 한다). 구전돼 오는 ‘맷돌‧방아 노래’로 타고난 제 팔자를 한탄하고 있다. 장탄식성이 들린다.

비슷한 속담이 있다.

“조드는 사름 못할일 엇나(걱정하는 사람 못할 일 없다)

무슨 일이 닥치면 유별히 걱정으로 드새는 사람이 있다. 타고난 천성이거나 능력이 없는 것도 원인이겠으나, 닥친 일을 어떻게든 타개해 보려는 심리적인 양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빈말에 불과한 걱정이지만, 남 눈에는 관심과 성의가 대단해 보인다. 바로 그 점을 이용해 생색을 드러내게 되니, 그런 사람은 못할 일이 없다 함이다. 걱정으로 한몫을 하는 사람을 꼬집을 때 쓴다.

“게와시 떡 쳐먹쟁 하난 시리가 벌러진다”(거지가 모처럼 떡 쪄 먹으려 했더니 시루가 깨어진다)

“빈복헌 놈 나시 독쌔기엔 빼들엉 못 먹나‘(복 없는 놈 적시 달걀엔 뼈가 들어 있어 먹지 못한다)

모처럼 떡을 쪄 먹으려 했더니 하필 시루가 깨어질 건 뭐며, 계란에 뼈가 들어 있을 건 또 뭔가. 일이 꼬여도 유분수지 안 좋은 일에 또 성가신 일이 자꾸 겹치는 판국이니 그야말로 설상가상 격이다.

설상가상(雪上加霜), 눈이 내린 위에 서리까지 내려 쌓인다는 뜻으로, 어려운 일이 거듭해서 일어남을 빗대는 말이다. 흔히 ‘엎친 데 덮친 격’, ‘엎친 데 덮친다’, ‘눈 위에 서리 친다’ 등으로 풀어 쓴다.

연거푸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때 많이 쓰는 말 가운데 “재수 없는 놈 뒤로 자빠져도 코 깨진다”가 있다. 서로 통하는 말이다. “병을 앓는 동안에 또 다른 병이 겹쳐 생긴다”는 뜻의 ‘병상첨병(病上添病’)도 비슷한 성어다.

설상가상엔 유래담이 있다.

옛날 중국에 대양화상이라는 큰 스님이 있었다. 무척 유명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한다. 대양화상을 만나기 위해 전국에서 많은 스님이 찾아왔다.

“대양화상 앞에 서면 나도 모르게 떨려.”

“진짜 살아 있는 부처님 같아.”

“속마음을 훤히 들여다보는 것만 같다니까.”

대양화상을 만나본 사람이면 누구나 비슷한 생각이었다. 그러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눅 들어 함부로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먼 곳에서 우러러보곤 했다.

어느 날, 한 스님이 대양화상을 찾았다. ‘나는 그동안 수행을 할 만큼 했으니, 저 스님 앞에 가도 부끄러울 것이 없어.’ 그자신 만만하게 대양화상에게 인사했다. 대양화상은 한눈에 그 스님이 겸손하지 않은 마음을 꿰뚫어 보고, “그대는 앞만 볼 줄 알고, 뒤를 돌아볼 줄은 모르는구나.” 남 앞에 드러나는 것만 중요하게 여기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수양을 소홀히 여김을 꾸짖은 것이다. 그러자 그 스님이 이렇게 말했다.

“눈 위에 다시 서리를 더하는 말씀이십니다.”

그러니 애초 ‘쓸 데 없는 참견이나 중복’이라는 뜻으로 쓰인 말이었다. 한데 세월이 흐르면서 뜻이 점점 넓어져 지금은 뜻이 ‘좋지 않은 일이 계속해서 일어남’을 뜻하게 됐다. 전의(轉義)된 것이다.

‘걱정도 팔자여’라든가, '조드는 사름은 무산디 조드는 코러레만 가느녜.’ (만날 걱정하는 사람은 왠지 걱정하는 쪽으로만 간다니까).

비웃으며 조롱하거나 심심하게 넘길 게 아니란 생각이 든다. ᄌᆞ들려고 해서 ᄌᆞ들겠는가. 살림 형편이 어려우니 소소한 일에도 걱정을 안 할 수 없어 앉아도 걱정 서도 걱정일 테니까 말이다.

세상이 변했다. 못 살던 때를 떠올리면 오늘의 이 시절이 얼마나 편리하고 윤택한가. 그런다고 걱정거리야 을까만 잠시 잊고 설상가상의 반대말 ‘금상첨화’를 떠올리면 어떨까. 비단 위에 꽃을 얹는다. 좋은 것 위에 더욱 좋은 것을 더한다 함이다. 그만 ‘조들고’, 발끈 몸 일으켜 세우면 절로 살맛도 나려니.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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