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민예총, 위미초-도리초 '4.3 평화예술학교'
제주민예총, 위미초-도리초 '4.3 평화예술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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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주민예총은 지난 4.3 60주년부터 제주도교육청 후원을 받아 청소년 문화사업을 추진하고, 64주년부터는 ‘찾아가는 청소년 4.3 평화예술학교’ 사업으로 전환했다.

4.3과 학교는 공동체라는 말로 시작할 수 있다. 해방의 열기 속에 섬 특유의 공동체성으로 각 마을마다 십시일반 자금을 모으고 땅을 내놓으며서 세운게 바로 학교다. 이후 군경대토벌 시기를 지나면서 학교는 토벌대의 근거지가 되었고, 대부분의 마을 집단학살은 그 학교를 중심으로 발생했다. 

자신들이 세운 학교에서 죽임을 당하면서 결국 공동체까지 무너져 버렸다. 마을마다 사연은 조금씩 다르나 거시적 관점은 똑같은 역사, 4.3 그 역사를 올바로 전승하기 위해 제주민예총은 예술가치들을 교육 자료화 하고, 학교로 찾아가 청소년을 만나고 있다.  

‘찾아가는 청소년 4.3 평화예술학교 <청소년 4.3문화교실>’은 공연 위주 형식에서 벗어나 올바른 자의식과 가치관 형성에 도움을 주는 교육으로, 동원대상과 주입식 교육이 아닌 아이들의 감성적 통로 즉 예술체험을 통해 4·3을 이해하는 과정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올바른 관점’과 ‘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으로 제주 4.3의 평화가치를 확산하리가 기대한다.

올해는 25일 위미초등학교와 30일 도리초등학교에서 진행되며, 4.3을 주제로 활동하고 있는 화가, 사진가, 영화감독, 가수, 제주전통음식 전수자, 공연팀을 중심으로 문화예술교육이 이뤄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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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민 2019-04-23 08:40:11
위미초 학생 여러분 민예총은 왜 우리학교를 택했을까를 생객해 보기 바랍니다
125.***.***.18

산폭도 2019-04-22 13:05:34
우린 그 대때 산폭도라고 했는데

위미리 마을 을 산폭도들이 습격하여 이웃을 무자비하게 살해한 산폭도 중에는
보나마나 마을을 아는 산폭도가 있어 더욱 피해가 컷답니다

더욱 나쁜 것은 자기 마을 습격하는 천인공노할 범죄를 저지른 산폭도들이 양심선언하는 산폭도는 없는 세상이 되어

모두가 희생자 대열에 끼어들지는 않았는지 알 방법이 없는 것이 슬픈 진실입니다
125.***.***.18

나그네 2019-04-22 10:18:53
제주4.3, 무장대에 희생된 마을(위미리)
http://blog.daum.net/ohyagobo/514(다음 블로그 참조)
이런 마을 초등학교에서 민예총이 무장대 피해를 주제로 하는 공연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위미마을 어린아이들을 세뇌시켜 조상들이 이런 피해 사실을 잊어 버리도록 하려는가?
마치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이 생각나는 날이다.
59.***.***.44

나그네 2019-04-22 10:08:14
4.3 당시 남원읍 위미리는 무장대에 의한 피해마을이었다.
"1948년 11월 28일 새벽 6시 무장폭도 약 200명과 비무장폭도 500명이 남원리와 위미리를 공격했다. 주택 250채가 폭도들에 의해 방화되었으며, 민간인 50명이 사망했고, 민간인 70명과 경찰 3명이 부상당했다." (이 내용은 4.3 진상보고서에 있는 내용이다)
그리고 어느날은 위미리에 무장대가 습격하여 죽창으로 마을 주민18명을 찔러 죽였으며, 마을내 초가를 불태우고 가축과 재물들을 약탈해 간 사실이 있는 무장대에 의한 피해마을이다. 그 후 위미리 주민들은 무장대 습격이 무서워 마을을 방어하기 위해 약 3km 정도의 성담을 쌓았는데 그 성담이 지금도 위미초등학교 뒤쪽에 남아있다. 민예총이 이런 위미 마을의 초등학교에서 무장대의 집단 학살에 대한 공연은 어불성설이다. 위미리에서는 무장대들이 마을 주민 학살과 약탈에 대하여 공연해야 맞다.
59.***.***.44

제주도민 2019-04-22 09:15:33
1951년
9월15일 새벽 1시30분 김창규등 40여명의 산폭도들은 광양에 있는 당시 HLKS
제주방송국(KBS 제주방송총국)을 습격하여 6명이 청사 안으로 진입, 야근
중인 방송과장 김두규 (金斗奎), 숙직원인 견습 직원 채종식(蔡鍾植. 18세),
사환 김석규(金錫奎.19세) 3명을 포박, 납치하여 조천 선흘곶 야산에서
죽창으로 무참히 살해.
이 날 숙직조에는 장병양(張炳陽), 권중훈(權重勳) 등 8명이 숙직 중이었
으나 장병양 등은 포박하려는 산폭도를 걷어차고 탈출 무사했으며 일부는
책상 밑 등에 숨어 납치를 모면.
12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