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랑쉬 오름을 오르며
다랑쉬 오름을 오르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바람섬 숨, 쉼] 지난 이야기...오늘 이야기

다랑쉬 오름은 높지는 않지만 처음부터 가파르게 경사진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오름 등반이 밥 먹고 차 마시는 일과 비슷한 사람에게는 쉬운 길이겠으나 간만에 작정하고 오르는 이들에게는 만만한지 않다. 휴일 오전 친구들과 다랑쉬 오름을 오른 내가 그랬다. 종아리야 조금 팍팍해졌지만 자연의 품안에 푹 안기니 몸과 마음이 편안해진다.

날이 좋아 제법 많은 사람들이 오름을 오르고 있었다. 우리도 그 물결에 몸을 맡겨 이야기꽃을 피우며 올랐다. 

옛날 옛날 나 기자할 때 이 동네 와난. 다랑쉬굴에서 4·3 유해가 발굴 됐댕 핸. 지금이야 누구나 편하게 4·3을 말하지만 그땐 좀 그랜. 내 담당은 아니었지만 따라갔지. 유해가 너무나 나란히 누워있는 것만 떠올라. 이건 뭐 , 뭐라 말 할 수가 어신게.

언니, 나도 지난주에 일본 사는 언니가 모셔온 손님들이랑 여기 와난. 언니에게 오랫동안 한국어 배우시던 분들. 젊어야 60대 후반이고 80대 분도 계셨는데 다들 너무 잘 오르더라. 근데 그 분들이 제주에서의 3박4일 일정을 마치고 마무리 시간을 가졌는데 그 중 한 할머니의 이야기를 잊을 수 어서. 이 분들이 4월 3일 4·3 평화박물관을 갔다 왔거든. 근데 중학교 교장선생님 하다 퇴임하신 이 할머니가 사실은 이날이 자기 생일이랜. 당신이 태어난 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은 게 너무 슬펐댄. 근데 또 생각해보난 좋댄. 앞으로는 매해 생일 날 그분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어서.

다랑쉬오름을 내려오다 잠깐 앉은 나무 의자에서 내려다본 풍경. 정답고 편안하다. ⓒ제주의소리
다랑쉬오름을 내려오다 잠깐 앉은 나무 의자에서 내려다본 풍경. 정답고 편안하다. ⓒ제주의소리

친구들과 나는 천천히 오름 정상에 올라 분화구를 내려다보며 둘레 길을 돌았다.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게 주변 풍경도 , 사람도 구경하며. 앞으로는 제주의 곳곳을 좀 더 자주 다니자고 다짐도 하며. 초록 초록 가득한 빛 사이로 생뚱맞게 자리 잡은 산불 감시초소안에 사람이 있다 없다 논쟁도 벌여가며.

다랑쉬 오름에서 내려오는 길, 올라가는 길에 찜해두었던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언덕의 모양을 그대로 살려 만든 나무 의자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니 정다운 풍경들이 손에 잡힐 듯 펼쳐져있다. 우리는 오래 오래 앉아 살랑이는 바람을, 마음속에 가득 차오르는 편안함을 즐겼다. 


편히 앉아 즐기면서 동시 쓰는 친구 김희정의 시 한 편을 떠올렸다.

맹게낭 

자보미 오름 언덕에 맹게낭들
토끼 눈알처럼 빨간 열매 달았다.
가시넝쿨 속 빨간 열매
까마귀밥이나 되려냐 했더니
4·3때 죄 없는 목숨
여럿 구했다는구나
난리통 피해 숨어살던 사람들
멩게낭 가지 꺽어 불피우면
연기조차 안 났다는구나
그 착한 나무 얘기 듣고 보니
빨간 열매 가을 햇살에 참 곱구나


(2004년 2월 어린이문학 김희정)   

 

/ 홍경희 제주교재사 대표(http://jejubooks.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0 / 400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순 추천순 이 기사에 달린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