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시선] 미심쩍은 구석 다분...원희룡 지사 뜻 아니길  

관제집회가 횡행한 적이 있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 극에 달했다.  ‘어버이연합’이 대표적이다. 나중에 대표가 기소까지 된 이 단체는 국정원 등의 지원을 받아가며 정치집회를 자주 열었다. 보수 정부의 입장을 대변하거나, 정부에 비판적인 인사들에게 뭇매를 가했다. 

효과는 작지 않았다. 보수언론을 타고 그들의 주장이 건전한 여론의 한 축인 양 둔갑했다. 촛불정국이 아니었으면 그대로 묻혀버렸을지 모를 보수 정부의 치부였다. 

남의 일로 여겨졌던 관제집회의 그림자가 최근 제주에서도 아른거린다. 5월1일 예정된 ‘교통약자 이동 지원 및 제2공항 건설 추진 촉구대회’가 그것이다. 아무리봐도 미심쩍은 구석이 많다.   
  
주최자는 한국교통장애인협회. 이 협회 제주시지부 회장은 원희룡 지사 팬 클럽 ‘프렌즈 원’의 리더격인 A씨다. 

A씨는 인터넷매체도 운영중이다. 이 매체와 한국교통장애인협회 제주도협회는 사무실은 물론 전화번호도 같다. 제주도청과 도의회 인근 가로수에는 각각 한국교통장애인협회와 제주시지회 명의의 현수막이 걸려있다. 제2공항을 건설하자는 내용이다. 

더구나 프렌즈 원은 SNS를 통해 5월1일 집회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원 지사 팬 클럽과 특정단체가 제2공항 여론몰이에 적극 나서는 모양새다. 

타이밍이 절묘하다. 

공론조사로 압박을 받고있는 원 지사의 SOS일까, 팬 클럽 리더의 충정어린 자가발전일까. 그도 아니면 이심전심일까. 

이에대해 A씨는 오해 소지가 있음을 인정하면서 프렌즈 원 회원과 교통장애인협회 회원 간 겹치는 부분이 많다고 해명했다. 

협회 현수막에는 ‘교통약자 하늘길 보장’이란 문구가 등장한다. 장애인이 교통약자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활로가 제2공항이라는 식의 논리는 뭔가 어색하다.   

A씨도 겸연쩍었던지 “이번 집회는 교통약자 이동 지원이 주(主)이고, 제2공항은 곁가지나 마찬가지”라고 얼버무렸다.

집회까지는 아니어도 관제 여론몰이는 과거 제주에서도 단체장들이 애용했던 카드였다. 그 형태는 기자회견, 성명서, 공청회 동원 등으로 나타났다. 공무원, 관변단체 회원은 물론 해당 지역 주민까지 동원 대상도 다양했다. 급조하다보니 이름을 도용당했다며 항의하는 일도 벌어지곤 했다.   

여론몰이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주로 사회적 약자가 전면에 나선다. 한라산 케이블카 논란이 한창일 때 장애인 단체가 나서는 식이다. 그럼 아무래도 절박해 보인다. ‘어버이’가 부성애 혹은 모성애를 자극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우리에게도 한라산 정상을 밟을 기회를 달라”는 구호는 케이블카 반대 측을 머뭇거리게 했을지 모른다. 당시 각종 장애인 단체의 입장을 모두 의심하는 건 아니다. 

누구나 목소리를 낼 수는 있다. 현직 단체장의 팬 클럽이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관제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번 집회가 원 지사의 뜻이 아니길 바란다. 아무리 다급해도 그렇지, ‘제주판 3김 시대’도 저문 마당에 악습을 끊겠다는 그가 여론조작에 가까운 무리수를 둘 리 만무하다고 믿고싶다. /상임이사.논설주간

* 소리시선(視線) /  ‘소리시선’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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