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은희의 예술문화 이야기] 39. 글로벌 시대의 제주청년작가를 위한 지원

요즘 책과 평론을 보면 종종 ‘21세기 미술’이 등장한다. 컨템포러리 아트(Contemporary Art, 현대미술)가 지난 30여 년간 글로컬 시대의 초국적 미술을 지향하며 비엔날레와 미술관의 기획전을 통해 자리를 잡았다면, ‘21세기 미술’은 컨템포러리 아트의 당위성을 딛고 더 나은 미래의 비전을 담은 용어라고 할 수 있다. 동시에 삶의 양상이 기술의 발전에 따라 변화하는 현재 향후 다가 올 4차 혁명부터 인공지능까지 새로운 기술이 예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는 상태에서 다소 낙관적인 시각을 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21세기 미술’이 어떤 형식과 내용으로 펼쳐질 지 파악하기 어렵지만 재능 있는 예술가를 위해 각 나라, 각 지역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창의성의 발현을 지원하고 있다. 그중에 최근 주목할 만한 소식이 들린다. 우리에게 노무라 증권으로 알려진 노무라에서 <노무라 예술상 Nomura Art Award>을 만들어 올해부터 선정된 1명에게 1백만 달러를 주고, 2명의 청년작가에게는 1십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고 한다. 수상자격은 ‘문화적 중요성이 큰 예술작업을 창작’해야 한다는 것이며 작가들이 개별적으로 지원할 수 없는 대신에 추천을 받은 후 심사위원회에서 선정한다고 한다. 심사위원은 이미 명단이 나와 있다. 한국계 큐레이터 정도련 (홍콩 M+ 미술관), 토쿄현대미술관 관장 유코 하세가와를 비롯한 글로벌 미술계의 유명인사 7명이다. 어쨌든 1백만 달러는 지금 현재 지구상에서 제시된 예술상 중에서 가장 많은 상금이라니 누가 수상자가 될 지 벌써부터 관심을 끌고 있다. 

노무라예술상 홈페이지
노무라예술상 홈페이지

그동안 많은 나라에서 재능 있는 예술가를 위해 상을 만들어 창작의욕을 고무시킨 바 있다. 한국에도 이인성 미술상, 석남미술상 등 크고 작은 상이 있다. 노무라 예술상은 재능이 많은 사람이라면 국경을 초월해서 지원하겠다는 것이 특징이다. 일본의 쿄토상( Kyoto Prize)이나 미국의 맥아더 펠로우 프로그램(MacArthur Fellows Program, 보통 맥아더 천재상이라고 부른다) 은 예술가뿐만 아니라 창의성이 발휘되는 타 분야도 포함한다. 이런 상은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를 인정하고 인류의 미래를 이끌 비전을 제시할 기회를 장려한다. 맥아더 천재상은 예술가부터 과학자까지 다양한 재능의 소유자에게 주어지는데 1981년부터 매년 수 십 명의 인재에게 5십만 달러(몇 년 전부터 6십2만5천 달러로 인상)를 주며 공적을 치하하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처럼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곳에서만 상을 주는 것은 아니다. 2009년 제정된 <미래세대 예술상 The Future Generation Art Prize>은 우크라이나 키에프의 ‘빅터 핀축 재단’이 2년마다 주는 상으로 35세 이하 전 세계의 청년작가를 대상으로 한 공모전이다. 20명을 선정한 후 각각 제작비용을 주고 새 작품을 제작하게 하여 최종 수상자를 선정한다. 대상은 1십만 달러(6만 달러 현금과 4만 달러 작품 구입)를 지원하고 특별상 5인에게는 총 2만 달러의 상금을 주어 작품제작에 쓰도록 하고 있다. 또한 수상자들은 베니스 비엔날레 기간 동안 주최 측이 준비한 베니스의 전시장에서 전시를 열 기회를 얻는다. 

위에서 언급한 상들은 상금의 규모도 놀랍지만 모두 민간이 주도한 상이라는 점이다. 주로 사업에 성공한 인물들이 재단의 형식을 빌려 인류에 창의적 공헌을 했거나 할 만한 재능이 있는 사람을 뽑아 상을 주고 있다. 국내에도 유사한 상이 없는 것은 아니다. 2016년 시작된 한국작가상은 금보성아트센터의 주최로 60세 이상의 작가 중에서 ‘대한민국의 문화부활을 알리는 타종의 의미와 우리다움의 정신적 곰삭음을 현대미술로 변환해 낸 작가’ 1인에게 1억 원을 주고 있다. 양현미술상(2008-2017)도 추천을 받아 선정한 글로벌 작가에게 1억 원을 주고 수상 후 3년 이내에 국제적인 유명 미술관에서 전시를 개최할 기회를 제공한 바 있다. 아쉽게도 후원을 하던 한진해운이 위기에 처하면서 이 상도 중단됐다.

소수의 엘리트에게 투자하는 수상제도는 장단점이 있다. 상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소외감을 주고, 널리 많은 예술가를 지원할 기회를 지나치게 소수에게 집중시킨다는 점은 단점이다. 그러나 20세기를 거치며 강요된 근대화를 겪고 인권을 희생하면서 경제적 성장을 성취했던 우리의 과거를 보면 과학과 기술, 사회제도가 발전한 나라와 보폭을 맞추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과거에도 미래에도 우리의 삶은 경쟁을 거친 우수한 인재에게 관대하고 그들에게 폐쇄적인 환경을 개방할 때 지속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다. 

제주청년작가전  발전방안 모색 토론회, 2019년 4월 23일, 문예회관 소극장
제주청년작가전 발전방안 모색 토론회, 2019년 4월 23일, 문예회관 소극장

제주는 재능있는 청년들에게 얼마나 지원하고 있는가? 예술의 창작환경을 어떻게 장려하고 있는가? 재능 있는 예술가를 어떻게 대접하고 있는가? 최근 25회까지 열렸던 제주청년작가전이 예산 미확보로 올해 열리지 못하고 내년 새로운 모습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그동안 전시에 참여한 작가 중에서 우수 청년작가를 뽑아 그 이듬해 전시기회를 주고 5백만 원 정도의 지원을 했다고 한다. 새로운 제주청년작가전은 청년작가의 창작 의욕을 고취시킬 만한 지원과 기회를 제공했으면 좋겠다. ‘초식남’부터 ‘N포 세대’까지 거론되는 청년들의 상황은 미술대전의 치열한 경쟁을 감당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창작 인력을 사회적 잉여로 취급하는 환경과 예술가라는 명칭에 대한 자부심을 갖지 못하는 현실도 제주청년작가전의 위상을 떨어뜨리고 있다. 

2018 제주미술제에서 작가가 전문가로부터 포트폴리오 리뷰를 받는 모습
2018 제주미술제에서 작가가 전문가로부터 포트폴리오 리뷰를 받는 모습

그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보려면 예술계를 보면 된다고 한다. 예술가가 세대를 이어 생존할 수 없고,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고 주눅 들어 있는 개인들로 구성된 사회는 타 문화권과의 경쟁에서 뒤쳐질 수밖에 없다. 당당하게 자신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 그 물코(물꼬)는 예술가가 틀어야 한다. 이 위기를 돌파하려면 청년작가에 대한 섬세한 지원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제주청년작가전을 시대에 맞게 규모 및 예산의 업그레이드, 청년작가의 생태계 연구, 기존 발표의 장과의 연대, 외지의 창작 레지던시 참가 기회 제공, 평론가 등 전문가와의 접촉 지원과 홍보 기회 확대, 기업의 예술가 후원, 신뢰할 수 있는 수상제도 등 정밀한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 이 글은 4월23일 개최된 ‘제주청년작가전 발전방안 모색 토론회’에서 발표한 글을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필자 양은희는...

양은희는 제주에서 나고 자라 대학을 졸업한 후 미학, 미술사, 박물관학을 공부했으며, 뉴욕시립대(CUNY)에서 미술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9 인천여성미술비엔날레>, <조우: 제주도립미술관 개관 1주년 기념전>, <연접지점: 아시아가 만나다> 등의 전시를 기획했으며, 여러 미술잡지에 글을 써왔다. 뉴욕을 현대미술의 눈으로 살펴 본 『뉴욕, 아트 앤 더 시티』 (2007, 2010), 『22개 키워드로 보는 현대미술』(공저, 2017)의 저자이자 『기호학과 시각예술』(공역, 1995),『아방가르드』(1997),『개념 미술』(2007)의 번역자이기도 하다. 전 건국대학교 글로컬문화전략연구소 연구교수. 현 스페이스 D 디렉터 겸 숙명여자대학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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