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영의 뉴욕통신] 버지니아 텍 사건을 보는 한 이민자의 시각

지난 월요일(16일) 오전(미국 동부시각) 버지니아 텍 캠퍼스에서 한국인 이민자 조승희 학생에 의해서 벌어진 연쇄 살인사건으로 전세계 특히 미국과 한국이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특히 한국인 이민 1.5세가 일으킨 사건이란 점에서 마치 한국인 전체가 관련된 것처럼 언론매체들이 호들갑을 떨고 있다. 심지어는 미국인들이 미국내 거주하는 한국인들을 보복 공격하지 않을까 지나치게 우려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 사건은 한국인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고 그의 부모의 탓도 아니다. 조승희 한 개인의 정신건강 및 사회적응 문제인 것이다.

미국내 여러 언론 매체를 통해서 공개되고 있는 그에 대한 '과거사'들을 살펴 보면 그는 극심한 '편집증'(Paranoia)에 시달려 온 것으로 추정된다. 일종의 '과대망상'에 의하여 소위 '현실과 망상(=공상)'을 혼돈 한데서 사건이 발생하였다고 볼 수 있다.

편집증(파라노이아)은 '내 주변에 적들이 너무 많다, 내가 적을 처치하지 않으면 적들이 나를 공격하게 될 것이다, 공격은 최선의 방어다'란 사고를 논리적(?)으로 정당화하게 된다. 특히 세계의 악명 높은 독재자들이 대부분 이런 편집증에 시달려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고 그 편집증의 결과 얼마나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의 제물로 사라져 갔는지는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미국내에 거주하는 한국인 이민자들 중 나의 주변 친지들도 이 사건에 대해서 상당히 많은 잘 못된 인식을 하고 스스로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문제는 한국인들이 나고 자라면서 받아 온 '교육'에 커다란 맹점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소위 '전체주의적 발상'이라고 이름 부쳐야 할 것 같다. 한국인은 거의 모두가 '나'라는 단어를 잘 쓰지 않는다. 대신에 '우리'라는 단어를 주로 쓴다. '내 아내(My wife)'가 정확한 표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아내/우리집 사람(Our wife)'란 말을 쓴다. 미국인들은 결코 '우리 아내'란 말을 쓰지 않는다.

군대에 가면 소대 한 병사가 잘 못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소대원 전체가 잘 못을 저지른 것처럼 '연대책임'을 물어서 소위 '단체기압'을 받게 한다. 이런 잘 못된 '군사문화'가 사회에도 깊숙이 침투되어 있어서 곤란한 일을 수없이 당하게 된다.

버지니아 주 공무원을 하고 있는 나의 친구와 어제 저녁 통화 첫 마디가 "오늘 사무실에서 고개를 들 수 없어서 혼이 났네, 자네가 낮에 전화를 걸어 왔는데도 한국말로 답을 할 수 없어서 바로 끊었네...이제야 집에 와서 전화하니 그리 이해하게"라는 것이었다. 왜 그가 사무실에서 부하직원들 앞에서도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단 말인가? 그가 조승희와 무슨 인척관계라도 있거나 그 부모와 안면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또 한 여성은 벌티모어 근교 한 신학교에 다니는데, "도서관엘 갔는데 사람들이 나를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 보는 것 같아서 애를 먹었다"고 하였다.

나의 아들도 중학교 2학년 때 학교에 가면서 책가방 속에 BB Gun(공기권총)을 몰래 넣고 가서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다.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한 백인 학생이 늘 그를 괴롭혔다고 한다. 그래서 혼줄을 내줄 양으로 거리에서 총을 한 자루 구입했다. [뉴욕 시내에서는 손바닥 안에 잡히는 권총들도 쉽게 돈(1백불 정도)만 주면 구할 수 있다. 특히 마약관련 업자들이 총기를 '야매'(underground)로 사고 판다.]

어느,날 내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 백인 아이가 따라 오면서 '치노'(중국인을 얕잡아 부르는 말)라며 골리고 돈을 뜯으려고 했다. 그래서 내 아들은 "너자꾸 나를 괴롭히면 너 머리통에 바람구멍을 내 줄 것이다"라고 경고를 했다고 한다. 그래도 계속 경고를 무시하고 괴롭히니까, 진짜로 가방에서 권총을 꺼내어 살짝 보여주고 다시 넣었다고 한다. 그 아이는 혼비백산해서 도망쳤고, 다음 날 학교에 가서 교장에게 일러바쳤다.

내 아들은 교장실에 불려가서 몸 수색과 가방수색을 당했는데, 그 때는 총을 집에 숨겨두고 간 후여서 물증을 잡지 못하였다.

내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왔는데, 나는 그때 마침 일찍 퇴근해서 집에서 혼자 있었다. 아들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풀이 죽어서 인사조차 못했다.

"왜? 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었어?"

"응, 아빠, 내일 아빠가 교장실로 와야 한데..."

....

" 그 총을 가져와 봐!"

그 총은 고장 난 것이었고 실탄도 없었다. 그러나 학교장에게 가서 통사정을 해야 할 것을 생각하면서 이 궁리 저 궁리를 했다.

뒷날 아침 일찍 아들과 함께 교장실에 찾아갔다. 교장은 별로 놀라는 표정이 아니었다. 그냥 담담하게 경고만 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라는 정도로 끝났다.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다행이었다. 그 문제가 유야무야 된 것은 바로 전날 그 학교에서 한 여학생이 수업시간에 권총과 실탄을 가지고 왔다가 실탄이 교실바닥에 떨어져 굴러서 선생 앞으로 가는 사건이 발생하고 경찰이 출동하고 난리를 쳤었다. 뉴욕시내 유명 TV 방송사에서 보도되고...내 아들까지 문제 삼으면 학교장은 문책감이 되어서 인지 무사하게 넘어갔다.

그 후 나는 아들을 뉴욕시내에서 교육시킬 수 없다고 판단하고 멀리 미시간으로 데리고 가서 전학시켰다. 성인이 된 후에 다시 뉴욕으로 돌아와서 한 은행에서 직원으로 착실하게 근무하고 있다.

200여 인종이 모여서 소위 '셀라드 팟(salad pot)'을 이루고 있는 미국사회에서는 이 번 사건은 최악의 사건임에도 차분하게 대처해 나간다.

그렇다고 '권총소지 제한'을 법제화할 공산도 크지 않다. 법적으로 권총소지를 제한하면 소위 불법으로 권총을 소지한 사람들을 방어할 힘을 제한하게 된다는 논리다. 권총은 '공격용'이라기 보다는 '방어용'이란 논리가 더 설득력을 가지는가 보다.

나는 "자녀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이냐?"의 질문에 이렇게 간단하게 대답하곤 한다. "Walk a mile a day with your kid." (하루에 한 마일씩 당신의 자녀와 함께 걸어라).

   
 
 
바쁜 이민생활에서 '우리'는 우리들의 자녀와 한 마일 함께 걸을 여유조차 갖지도 찾지도 못한다.이 번 사건은 어찌 보면 미국에 이민 와서 고달프게 살아가고 있는 이민자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연대책임'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자식농사' 참으로 어려운 숙제다.

무고하게 희생되어간 학생들 그리고 교수, 그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애도를 표하며, 또 아들의 잘 못으로 절망과 비통에 잠긴 조씨 유가족에게도 희망의 빛과 무한한 위로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