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청진기] (2) 제주경제, 덩치는 커졌지만... / 김명지

'제주 청진기'는 제주에 사는 청년 논객들의 글이다. 제주 청년들의 솔한 이야다. 청년이 함께 하면 세상이 바뀐다. 우리 주변의 소소한 이야기에서, 각종 사회문제에 대한 비판적 시선, 청년들의 삶, 기존 언론에서 다루지 않는 서브컬쳐(Subculture)에 이르기까지 '막힘 없는' 주제를 다룬다. 전제는 '청년 의제'를 '청년의 소리'로 내는 것이다. 청진기를 대듯 청년들의 이야기를 격주마다 속 시원히 들어 볼 것이다. [편집자] 

어린 시절 초등학교 등굣길 풍경이 머릿속에 선하게 남아있다. 굽이친 마을길을 따라 감귤 과수원이 있었다. 어린 꼬마가 고개를 하늘로 올려보아도 담기지 않을 아름드리 삼나무가 밭담을 따라 줄지어 서 있었다. 골목길 사이사이 양옥집 사이로 흙으로 쌓아 올린 초가집도 있었다. 

특히 봄이면 밭담 너머로 노오랗게 핀 유채꽃이 코 끝을 간질였다. 아이의 어머니는 유채꽃밭을 배경으로 아이를 세웠고 짧게 깎은 머리를 한 아이는 환하게 웃었다. 그 아이와 유채꽃밭 풍경은 사진으로 남아있다.

등굣길 고개를 잠시 돌리면 한라산이 보였다. 평생 제주시 내에서만 자랐던 꼬마는 한라산과 그 바로 아래 동네에는 어떤 풍경일지 머릿속으로 영화 속 ‘미지의 세계’를 떠올렸다.

언제부턴가 조금씩 한라산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동네에 아파트, 빌라와 같은 높은 건물이 들어서면서 시야를 가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삼나무 감귤 과수원길, 유채꽃밭 등 평화로운 풍경은 이제는 어머니가 찍어준 사진과 추억으로만 남아있다. 

구제주와 신제주 사이에서 ‘애매한’ 우리 동네는 아파트, 빌라가 즐비한 주거단지가 되어가고 있다. 동네에 있는 오름에 오르면 저 멀리 중산간 마을 푸르른 나무들이 있었던 자리에는 알 수 없는 건물들이 계속 지어지고 있다. 조만간 이 광경마저도 추억하게 될지도 모른다.

언제부턴가 우리 동네는 ‘핫’해졌다. 그리고 앞으로 더욱 그럴 예정이다. 바로 우리 동네에 들어설지도 모를 ‘오라관광단지’ 때문이다. 10여년간 추진됐던 개발사업이 표류하고 있다며 일부 지역주민들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들은 “개발 사업 주체인 (주)JCC에 대한 행정당국의 자본검증 절차가 위법하다”고 제기하고 나섰다. 이들의 목소리에 발맞춰 몇몇 지역 언론들은 ‘개발사업 방치’, ‘저주’ 등의 표현을 사용해가며 개발사업을 옹호하고 있다. 

개발 찬성론자들은 영리병원 개원 갈등에서 사용했던 ‘제주의 국제적 신용도 하락’ 프레임을 꺼내들어 난개발을 부추기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정작 이곳에 사는 주민들 삶의 권리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오라관광단지 조성, 제2공항 완공 등 이뤄지면 그것으로 끝일까? 그 시설의 수익성 제고를 위해 더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기 위한 또 다른 난개발이 이뤄질 것이 뻔하다. 그러면 쓰레기 처리대란, 하수역류 대란 등은 계속될 것이다. 

현재 제주도청 앞 제2공항 반대천막촌의 시위는 바르셀로나, 베니스 등의 오버투어리즘 반대집회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해외 오버투어리즘 반대시위와 다른 점이라고 한다면 제2공항 개발 반대운동은 환경수용력을 고려하지 않은 관광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도정을 분노의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관광객 급증 등의 영향으로 2016년 기준 제주의 하루 쓰레기 배출량이 1161톤에 이르렀다. 2010년 639톤, 2013년 984톤에 비해 많이 늘어났다. 1인당 배출량도 1.8kg으로 전국 평균을 크게 웃돌고 있다. 대규모 개발사업 등으로 발생한 건축폐기물까지 늘어나면서 쓰레기난을 가중시키고 있다.

각종 오폐수를 정화해 바다로 내보내야 할 하수처리장은 용량을 초과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제대로 정화하지 못한 오폐수는 바다로 흘러 들어가 바다 생태계 동식물들이 죽어가고 있다. 

물부족도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2017년 6월 제주도 전역에 설치된 지하수 기준수위 관측정 20곳을 분석한 결과 2007년 이래 가장 낮은 수위를 보인다. 

환경 파괴만이 아니다. 관광산업이 제주 주민들의 삶을 파괴하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특히 관광객이 늘었지만, 주민 개인들의 경제생활은 나아지지 않았다. 

표준지공시지가 등 부동산 경기는 활황을 거듭하는 등 제주의 경제는 외연적으로 분명 성장했지만 평범한 주민들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온 돈은 많지 않다고 느낀다.

한국은행 제주본부가 2017년 10월 펴낸 ‘제주 투어리스티피케이션 현상이 지역주민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제주지역 1인당 GRDP(실질 기준)는 상승세를 이어갔으나 도민들이 느끼는 주관적 소득 수준은 대체로 낮은 편인 것으로 나타났다. 1인당 GRDP는 2015년 2343만원으로 5년 전(1989만원) 보다 28.9%나 늘어났으나, 2015년 중 소득이 여유있다고 답한 도민의 비중은 2011년 대비 11.0%p 감소했다. 오히려 소득이 모자라다고 답한 도민은 12.8%p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7년 기준 제주관광 조수입은 5조6000억 원에 이른다. 이중 내국인이 4조원, 외국인이 1조 6000억원을 제주에서 소비했다. 하지만 제주 소매업 매출은 2조3552억원으로 대부분의 관광수입은 대규모 위락시설, 면세점 등을 운영하는 외부자본이 벌어서 가져가고 있다. 관광산업의 양적성장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는 헛구호가 된 지 오래다.

제주관광 조수입은 점점 늘고 있지만 대규모 관광사업체들만 과실을 얻고 다른 주민들은 관광으로 삶의 질을 위협받고 있다. 관광으로 인한 누출, 지역사회의 비용은 제대로 계산이 되지 않은 채 눈앞에 보이는 이익만 좇고 있는 형국이다.

앞으로 제주 관광산업을 제대로 심층적으로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대규모 면세점 등 외부자본이 제주 밖으로 회수해가는 ‘관광누출(leakages)’는 얼마나 되는지 고찰해보고 이 규모를 줄이면서 지역경제 활성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시정철학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 도시에 살아갈 주민들의 삶의 권리는 어떤 이익과도 대체될 수 없다” 

하루 평균 30만 명이 방문하는 유럽 최대 재래시장인 보케리아 시장에는 지역주민들이 장을 보는 금요일과 토요일 오전 8시부터 오후 3시까지는 15명 이상의 단체 관광객이 출입할 수 없도록 했다. 바르셀로나 시민들은 관광객들이 자신의 삶을 침범(invasion)하고 있다고 느낄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과도한 관광객들이 찾아오면서 발생한 사회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바르셀로나 시는 관광정책을 과감히 수정했다. 더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는 대신 감당가능한 관광객들만을 받아들이는 관리정책으로 선회했다. 오버투어리즘, 수용력을 초과한 관광객들의 방문이 지역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고 진단한 것이다. 

이대로는 제주 관광도, 제주사회도 지속가능하지 않다. 관광산업은 분명 제주 사회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도구이다. 유엔세계관광기구(UNWTO)는 “여행은 세계의 빈곤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주고 나라간 이해를 높이고 평화를 가져오는데 기여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제주의 환경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관광산업의 과실이 평범한 지역주민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생태관광, 공정관광 등 다양한 대안적인 형태의 관광이 제주에서 시작되고 있다. 대안관광이 제주에 자리 잡아 보다 건강한 관광문화로 정착할 수 있도록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

물론 나와 같은 많은 청년들은 분명 일자리가 필요하다. 그리고 더 많은 자산을 쌓기를 원한다. 그러나, 청년들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미래세대가 누릴 자원과 혜택을 파괴한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 

어린 시절 내가 보았던 제주의 자연과 경관을 보고 나의 어린 시절 추억을 훗날 나의 아들, 딸과 나누며 행복하게 미소지을 그 날이 오길 소망한다.

 

김명지(27)는?

제주에서 나고 자란 청년이다.

제주의 바다와 오름을 사진으로 남기며 제주의 자연과 문화가 지켜지길 소망한다.

기록과 콘텐츠의 힘으로 제주의 역사와 자연을 지켜가고 싶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