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세이레아트센터 연극 ‘늙은 부부 이야기’

2003년 처음 등장한 연극 <늙은 부부 이야기>는 지금도 꾸준히 전국 여러 극단이 공연하는 스테디셀러 작품이다. 

일찌감치 배우자를 떠나보내고 자녀도 출가해 외롭게 살아온 80대 노년 박동만, 이점순은 우연한 기회에 한 집에서 산다. 능글능글하게 다가오는 박동만에 이점순은 손사래를 치지만, 이내 정이 쌓이면서 서로를 ‘임자’로 부르는 사이까지 발전한다. 두 사람의 행복한 두 번째 인생은 너무나 짧았다. 봄에 시작한 인연은 겨울이 되서 여자가 병(病)으로 먼저 세상을 떠나면서 눈물로 끝난다.

작품을 쓴 위성신 작가는 몇 년 전 언론 인터뷰에서 “노년의 이야기는 우리 어머니·아버지의 이야기이며, 내가 닥칠 문제들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감동적인 소재”라면서 <늙은 부부 이야기>를 비롯한 ‘실버 작품’에 대해 설명한 바 있다.

이순재, 양택조, 사미자, 성병숙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박동만, 이점순을 연기했고 각 지역의 베테랑 배우들 역시 무대를 거쳐 갔다. ‘늙은 부부 이야기 페스티벌’이란 이름으로 여러 배우들이 한 작품을 연기하는 축제가 만들어질 정도다. 그만큼 충분히 검증 받았고, 노년들이 깊은 공감대를 느꼈다고 봐도 무방하다.

제주 극단 세이레아트센터, 정확히 강상훈·정민자 배우에게도 <늙은 부부 이야기>는 분명 특별한 작품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2006년 제24회 전국연극제 제주예선대회에서 이 작품으로 지역 대표로 뽑혔고, 이점순 역할을 연기한 정민자는 개인 연기상을 받았다. 시간이 지나 2015년 여름 한 달 동안 장기 공연을 가지고 12월엔 보름 간 앙코르 추가 공연도 가졌다. 이듬해는 대전, 부산 원정까지 떠났다. 실제 부부 사이에서 우러나오는 끈끈한 연기가 큰 호응을 얻었으리라 짐작해본다.

그런 세이레아트센터가 3년 만에 <늙은 부부 이야기>를 다시 선택했다. 5월 2일부터 6월 2일까지(목~일요일) 다시 한 달 공연에 돌입했다.

5월 2일부터 6월 2일까지 연극 '늙은 부부 이야기'를 공연하는 정민자(왼쪽), 강상훈 배우. ⓒ제주의소리
5월 2일부터 6월 2일까지 연극 '늙은 부부 이야기'를 공연하는 정민자(왼쪽), 강상훈 배우. ⓒ제주의소리

2015년 <늙은 부부 이야기>는 강상훈·정민자의 연극 인생 35주년, 세이레 창립 25주년을 기념하면서 두 사람이 처음 함께 출연한 작품이었다. 2019년은 극 배경을 제주로 바꿔, 모든 대사를 제주어로 설정했다. 

연극뿐만 아니라 TV, 라디오 등 다양한 지역 매체에 출연하면서 제주어 연기를 선보인 두 사람의 ‘사투리’는 매끄럽게 손색없다. 비교하자면 설정 상 제주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이점순 역할의 제주어 연기가 더 비중이 큰데, 그에 걸맞게 정민자는 “몽케지 말앙”, “양!”처럼 일상 속 제주어 회화를 자연스럽게 구사한다. (사)제주어연구소, (사)제주어보전회는 제주어 연기에 도움을 줬다.

예전 이점순이 운영했던 신림동 국밥집은 모슬포 국수집으로 바뀌었고 친근한 제주도 지명도 추가됐다. 외곽지에서 흔히 보는 시골집 풍경도 최대한 재현하려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때로는 철딱서니 없어보여도 애정 표현을 아끼지 않는 박동만, 겉으로는 깐깐한 욕쟁이 할머니지만 속은 천상 소녀 이점순. 작품은 80분 동안 두 사람의 짧지만 행복했던 1년을 보여준다. 

병색이 완연해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이점순을 박동만이 업고서, 처음 만났을 때를 추억한다. 여자는 힘겨운 표정으로 “영감이 우리 집에 왔던 그 봄날”을 이야기하고, 남자는 금방이라도 오열할 듯 눈물 가득히 입술을 깨문다.

“자동차가 없으면 걸어가지요. 우리가 어디든 못 가겠어요.”  

늦었기에 주인공들의 사랑은 더 애달프다. 예고된 이별을 목전에 둔 상황에서 나누는 대화는 눈물샘을 세게 자극한다. 깨가 쏟아지는 초중반을 지나 피할 수 없는 병마에 죽음을 받아들이는 말미까지 지나며, 관객들은 가슴 아프게 이별했던 그 누군가를 떠올린다. 

이번 공연에서 두 사람의 나이는 80대 전후로 설정했다. 토끼띠인 이점순이 1939년생으로 추정되고, 박동만은 그보다 2살 가량 어리다. 황혼에 돌입한 노년, 부모님과의 각별한 추억을 간직한 중년이라면 더욱 감명 깊게 볼 수 있겠다.

세이레아트센터는 최근 극장 내부를 대대적으로 개선하면서 두 사람이 만만치 않은 작업을 도맡았다. 공연 직전까지 애쓴 영향일까. 2일 첫 공연에서는 극 말미 진행에 중요한 실수가 있었고 대사 역시 여러 차례 막히는 모습이 보였다. 2015년과 비교했을 때 소품부터 배우 분장까지 여러모로 빠진 점 역시 눈에 들어왔다. 사소할 수 있지만 흰 머리카락, 주름 하나도 관객 입장에서는 크게 느껴지기 마련이다. 일상 속 제주어 회화를 최대한 옮겨온 덕분에 친근함은 늘었지만, 그것이 무대 언어로서 얼마나 효과적인지는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

강상훈·정민자는 몇 년 사이 극단 운영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지금도 그 후유증이 남을 만큼 고난을 겪었다. 2일 공연을 보면서 극히 주관적인 인상이지만 두 사람의 연기가 힘겹다는 인상을 받았다. 극 중 이별 연기에서는 한층 몰입한 감정이 느껴졌다. 

1961년생 동갑내기로 조금씩 이점순, 박동만을 닮아가는 부부 배우의 애절한 연기가 여러 생각과 겹쳐 긴 여운을 남긴다.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70대, 80대 그 이상 나이를 먹어도 계속 '늙은 부부'를 연기하는 정민자, 강상훈을 보고싶다.

<늙은 부부 이야기>는 5월 2일부터 6월 2일까지(목요일부터 일요일) 공연한다. 평일 오후 8시, 주말 오후 6시다. 예매 시 관람료를 50% 할인해준다.

문의 : 1688-4878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