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섬의 산물] 121. 고산리 녹고눈물 산물

성산일출봉에서 뜬 해가 한경 수월봉 너머로 기울면 제주의 하루는 문을 닫는다는 고산리. 돌아가는 것을 막았다고 하여 차귀(遮歸)라 했다. 

고려 때부터 차귀진이 설치된 군기고(軍器庫)까지 있었던 군사적으로 중요한 요새지로 마을 이름을 신두모리라 했다. 그 후 주민의 자주성과 주체성 확립을 위해 당산봉이 있다 해서 당산리라 부르다가 고산리로 바뀌었다.

이 지역은 중등 국사교과서에 수록된 국가지정문화재(제412호)로 지정된 선사유적지다. 한라산의 지형적 영향으로 가뭄을 겪는 등 기후적 영향이 심한 지역이여서 가뭄일 때에는 고산리 수월봉에서 기우제를 지낼 정도로 물과 많은 인연을 가진다. 

제주 땅 맨 서쪽에 자리한 수월봉은 우리말로 ‘녹고물오름’이다. 일명 ‘물노리오름’, ‘물나리오름’으로 물이 내리는 오름이다. 이렇게 부르는 이유는 넓은개 바닷가 단애인 벼랑의 바위틈에서 엉알물이라는 녹고물(노꼬물, 용운천, 엉알물)이 흘러나와서 바다로 물이 떨어져 내리는 오름이기 때문이다.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녹고물(용운천).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수월봉은 높이가 78m로 비교적 낮은 해안가 오름이지만 환상의 원형분화구는 차귀도 앞 바다 한가운데에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을 정도로 지질적으로 매우 독특한 오름이다.

이 오름의 특징은 깎아지른 해안단애와 잘 발달된 응회환(tuff ring)이란 퇴적층이다. 단애의 밑 부분에 해식동으로 보이는 굴이 존재하고, 퇴적층과의 부정합면인 화산회층이 노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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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월봉의 지질과 지하수 생성.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수월봉을 대표하는 산물인 녹고물에는 수월이와 녹고의 효심이 전설로 전해진다. 전설에 의하면 병든 홀어머니를 위해 약초를 구하러 나선 오누이인 수월이와 녹고는 수월봉 벼랑에서 오갈피란 약초를 발견한다. 오빠인 녹고의 손을 잡고 벼랑 끝의 약초를 캐던 누이동생인 수월이, 하지만 오빠의 손을 놓치고 벼랑으로 떨어진다.

동생을 떠나보낸 녹고는 슬픈 나머지 7일간 울다가 지쳐 그 자리에서 바위로 변해버리고 누이를 부르며 눈물을 쏟았는데 바로 이 눈물이 바위틈으로 흘러내리는 녹고물이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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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운천 산물 물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이 산물은 긴 세월이 흐른 지금도 누이를 향한 녹고의 슬픔이 가시지 않은 듯, 수월봉 북쪽 단애 곳곳에서 용의 입을 통해 흘러내린다.

실제 녹고의 눈물이라는 산물들은 해안절벽의 화산재 지층을 통과한 빗물이 지층 아래 있는 진흙으로 된 미고결 불투수성 지층인 고산층에 막혀 지표면으로 흘러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엉(낭떠러지 비슷이 된 암석을 의미)과 알(아래下)을 합성하여 엉알물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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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입을 통해 내리는 녹고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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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입을 통해 내리는 녹고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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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입을 통해 내리는 녹고물.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수월봉 벼랑에서 떨어지는 산물은 일명 물 맞는 물이라 해서 백중, 처서 때 많은 사람들이 병을 치료하기 위해 찾았던 물로도 유명하다.

또한 차귀십경의 하나인 ‘용암폭포’로 용암과 엉알 아래 해안절벽 단층들이 굴곡을 이루면서 마치 용이 꿈틀거리다고 하여 용운천이라 했다. 절벽 위에서 조그마한 물줄기가 뚝뚝 떨어져 마치 폭포와 같다며 용암폭포로 명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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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귀십경(용암폭포)의 모습.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국가지정문화재(천연기념물 제513호)이자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세계지질공원으로서 수월봉 바닷가에 만들어진 해안산책로에서는 1967년에 세운 표지석 ‘용운천(龍雲泉)’이 있다. 용운천은 용이 구름을 타듯 물이 내린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러나 섬에서 위대한 사람이 나오는 것이 두려워 제주 섬의 여러 곳에 혈맥(지맥)을 끊고 물혈(수맥)을 끊은 중국 송나라 호종단이 중국으로 돌아가려고 배를 타고 차귀도 근처에 이르자 노한 한라산신이 용으로 변하여 배를 침몰시켰다는 전설과 연관된 섬의 생명수인 물을 지켰다는 의지가 담겨있는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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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귀의 용(龍), 응회환(tuff ring) 퇴적층리.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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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미(龍尾).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고산드르를 차귀평(遮歸坪)이라 부르듯, 차귀란 지명은 호종단이 중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막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지금도 수월봉 입구에는 용이 서있고 바다에는 용이 꼬리가 꿈틀거리고 있으며 용의 화신인 차귀섬이 수문장처럼 제주섬을 지키고 있다.

용미(龍尾).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차귀도와 용미(龍尾) 빌레. 제공=고병련. ⓒ제주의소리

#고병련

제주시에서 태어나 제주제일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대학원 토목공학과에서 수자원환경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제주국제대학교 공학부 토목공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제주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공동대표, 사단법인 동려 이사장, 제주도교육위원회 위원(부의장)을 역임했다. 현재 사회복지법인 고연(노인요양시설 연화원) 이사장을 맡고있다. 또한 환경부 중앙환경보전위원과 행정자치부 재해분석조사위원, 제주도 도시계획심의, 통합영향평가심의, 교통영향평가심의, 건축심의, 지하수심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지금은 건설기술심의와 사전재해심의 위원이다.

제주 섬의 생명수인 물을 보전하고 지키기 위해 비영리시민단체인 ‘제주생명의물지키기운동본부’ 결성과 함께 상임공동대표를 맡아 제주 용천수 보호를 위한 연구와 조사 뿐만 아니라, 시민 교육을 통해 지킴이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섬의 생명수, 제주산물> 등의 저서와  <해수침입으로 인한 해안지하수의 염분화 특성> 등 100여편의 학술연구물(논문, 학술발표, 보고서)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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