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시선] ‘평양 국제전기차엑스포’ 추진 의결을 보며 

오늘 아침 다소 허황한 꿈을 꿔 봤다. 제주가 통일의 오작교를 놓는 꿈이다. 

제6회 국제전기차엑스포 개막을 하루 앞둔 7일 세계전기차협의회가 평양 국제전기차엑스포(평양 엑스포) 추진을 의결했다. 이번 엑스포에선 남북 전기차 정책포럼도 열린다. 물론 남북관계가 교착상태여선지 북측 인사의 참석은 성사되지 못했다.

평양 엑스포는 현실화 가능성이 없지 않다. 북측의 반응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지난해말 세계전기차협의회 회장이 북한을 방문, 평양 개최를 제안하자 "직접 만나 의논하자"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한다. 그리고 양측이 조만간 중국에서 만날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 교류 측면에서 평양 엑스포가 성사만 된다면야 더 말해 무엇하랴. 민간 차원의 또 다른 물꼬가 트이게 된다. 그것도 ‘세계평화의 섬 제주’가 징검다리가 되는 셈이니, 도민으로선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설사 엑스포 개최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만남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 지금의 남북관계는 어떤 형태가 됐든 돌파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통일부가 올해 처음으로 '제주 엑스포' 후원기관으로 나선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지난해 10월 10일 열린 글로벌EV협의회와 사단법인 국제전기자동차엑스포, 동북아교육문화협력재단 3자간 업무협약식. 이 자리에서 평양엑스포 추진에 공동 노력하기로 한 바 있다. 왼쪽부터 김대환 글로벌EV협의회장, 전유택 평양과학기술대 총장, 이개명 제주국제전기차엑스포 이사.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지난해 10월 10일 열린 글로벌EV협의회와 사단법인 국제전기자동차엑스포, 동북아교육문화협력재단 3자간 업무협약식. 이 자리에서 평양엑스포 추진에 공동 노력하기로 한 바 있다. 왼쪽부터 김대환 글로벌EV협의회장, 전유택 평양과학기술대 총장, 이개명 제주국제전기차엑스포 이사.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알려진 바와 같이 제주는 민간 차원의 남북 교류에 있어서 어느 곳 보다 경험이 풍부하다. ‘비타민C 외교’가 대표적이다. 1999년부터 2010년까지 해마다 북한에 감귤을 보냈다. 또 다른 특산품인 당근도 전달했다. 

자치단체 남북교류협력 가운데 단일 사업으로는 거의 유일하게 10년 이상 지속됐다. 

특히 북한에 감귤 보내기는 자치단체와 도민이 한마음이 돼 추진한 첫 사례로, 국민적 공감대라는 대북 지원의 원칙을 구체화한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비타민C 외교는 2001년 김대중 정부 시절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을 잉태했다. 급기야 2005년 노무현 정부는 제주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선포했다. 

북한은 제주도민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2002년부터 2007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제주도민 835명을 평양·개성·묘향산으로 초청하기도 했다.  

2003년 10월 제주에서 열린 민족통일 평화체육문화축전도 따지고 보면 비타민C 외교가 자양분이 되었을 것이다. 당시 북한 예술·체육 참가단 190명이 남측 인사들과 어우러졌다. 남북씨름대회는 프로그램의 하나였다. 

2010년 5.24조치와 UN 및 미국의 대북 제재로 비타민C 외교의 맥이 끊긴게 아쉬울 따름이다. 

지난해 남북 정상이 세차례 만난 이후 제주는 또 다시 남북 교류, 나아가 평화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사상 최초의 북미 정상회담까지 열린 터라 이번에는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글로벌EV협의회와 사단법인 국제전기자동차엑스포, 동북아교육문화협력재단 3개 기관 관계자들이 지난해 말 평양과학기술대학을 방문해 '평양전기자동차엑스포' 등의 추진을 논의했다. 당시 방문 기념사진 ⓒ제주의소리
글로벌EV협의회와 사단법인 국제전기자동차엑스포, 동북아교육문화협력재단 3개 기관 관계자들이 지난해 말 평양과학기술대학을 방문해 '평양전기자동차엑스포' 등의 추진을 논의했다. 당시 방문 기념사진 ⓒ제주의소리

지난해 9월 3차 회담 직후 두 정상이 부부 동반으로 백두산 정상을 밟으면서 제주가 입에 오르기 시작했다. 천지에서 한라산을 주제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문재인 대통령 부부는 미리 준비해간 제주의 삼다수와 백두산 천지의 물을 합수(合水)하며 ‘한라에서 백두까지’ 평화통일을 염원했다. 

수행했던 김영춘 해양수산부 장관은 “(김 위원장이)서울 답방 오시면 한라산(백록담)으로 모셔야 되겠다”고 했다. 

김정은 위원장의 부인 리설주 여사는 “우리 옛말에 ‘백두에서 해맞이를 하고, 한라에서 통일을 맞이한다’는 말이 있다”고 화답했다.   

이 때만 해도 김 위원장의 서울 답방과 제주(한라산) 방문은 기정사실처럼 보였다. 

문 대통령은 11월 제주산 감귤 200톤을 북한 주민들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감귤 보내기는 9년만의 일이었다. 평양에서 열린 3차 정상회담 때 김 위원장이 송이버섯 2톤을 선물한데 대한 답례였다. 그 직전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이 원할 경우 한라산 구경을 시켜줄 수도 있다며 한껏 분위기를 띄웠다. 

제주는 한마디로 부산해졌다.   
  
도정은 김 위원장의 한라산 방문에 대비한 준비에 착수했고, 도의회에선 김 위원장의 제주·한라산 방문 요청 결의안 채택을 추진했다. 서울 남북정상회담·한라산 방문 제주환영위원회도 출범했다. 일각에선 남북평화씨름대회 제주 개최가 추진됐다. 또 레드향과 당근 음료가 실제로 북한에 보내졌다.  

그랬던게 올해 2월28일 북미정상이 마주한 하노이 회담 이후 분위기가 싹 달라졌다. 5월4일 북한이 쏘아올린 발사체는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발사체의 성격을 놓고 때아닌 ‘홍길동 논란’이 일기도 했으나, 간밤 한미 정상의 통화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아직도 대화의 여지는 충분해 보인다.    

이럴 때 정치색이 옅은 '평양 국제전기차엑스포'라는 민간 차원의 교류는 모멘텀이 될 수 있다. 국면 전환까지는 아니어도 서로 아예 등을 돌리지 않도록 붙들어놓는 계기 말이다. 

시대와 상황은 판이하지만, 냉전 시기 미국과 중국 관계 개선의 디딤돌이 된 1971년 ‘핑퐁 외교’를 떠올려본다. 핑퐁 외교는 1979년 정식 수교로 꽃을 피웠다.  

오늘 꾼 꿈이 그저 헛된 꿈이 아니길 기대해본다.  <논설주간/상임이사>  

* 소리시선(視線) /  ‘소리시선’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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