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제주 연극인들의 군더더기 없는 제주 인형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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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두근두근시어터 인형극 '할머니의 이야기치마'

‘두근두근시어터’는 제주에서 유일하게 인형극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극단이다. 동시에 제주시 삼도2동에 있는 실내 놀이공원 ‘재밋섬’ 안에 소극장을 운영한다. 제주 이전 기업으로 CT분야에 종사하는 (주)피엔아이컴퍼니(대표 신재중)에 속해있다.

(비단 제주만의 사정은 아니겠지만) 제주에서 연극은 음악, 미술 등 다른 예술과 비교할 때 위상이나 관객 호응에서 차이를 보인다. 당장 제주문예회관, 서귀포예술의전당, 제주아트센터 같은 공립 예술시설에서 열리는 공연 명단을 가볍게 훑어봐도 짐작 가능하다. 그런 연극 안에서 인형극은 두근두근시어터 단원들의 표현대로 “마이너(minor)한 장르”로 봐도 무방하다. 그럼에도 2017년 2월부터 본격 운영을 시작한 두근두근시어터는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면서 자신만의 입지를 다져가고 있다. 

5월 7일부터 19일까지 공연하는 두근두근시어터의 창작가족 인형극 <할머니의 이야기치마>(장정인 작, 성민철 연출)는 결론부터 말하면, 인형극의 매력과 극단의 저력을 한껏 느낀 '멋진 작품'이다. 내용이나 등장 인물을 고려할 때 사실상 어린이가 주 대상인 인형극이다. 그러나 메시지를 전달하는 연출이나 구성은 어른도 매료될 만 큼 완성도가 높다.

두근두근 시어터의 인형극 '할머니의 이야기치마' 배우들. ⓒ제주의소리
두근두근시어터의 인형극 '할머니의 이야기치마' 배우들. 왼쪽부터 성민철, 장정인, 박보배. ⓒ제주의소리

<할머니의 이야기치마>는 활기 넘치는 강아지 돌돌이의 부탁으로 할머니(배우 장정인)가 이야기보따리를 꺼내면서 시작한다. 작은 화산송이, 현무암 캐릭터 송송(성민철)과 꼬망(박보배)은 할머니 이야기 속 주인공이다. 뛰어놀기 좋아하는 송송과 꼬망의 발걸음을 따라가면서, 관객은 제주 섬의 탄생 과정과 푸른 바다, 한라산, 오름, 골짜기를 만난다.

작품은 제주 창조 설화인 ‘설문대할망’을 작품의 큰 줄기로 삼았다. 극 중 할머니는 커다란 치마를 활용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어깨로 매고, 좌우로 펼치면서 할머니의 치마는 분화를 막 끝낸 화산섬부터 송송과 꼬망이 뛰어노는 산자락, 산호와 따개비가 자라는 바다 생태계로 변모한다. 할머니의 몸이 곧 무대이자 자연이 되는 아이디어는 제주섬을 만든 설문대할망을 떠올리게 한다. 

넘치는 쓰레기와 환경 파괴로 신음하는 제주도를 치유하는 클라이맥스 장면에서는 설문대할망이 직접 등장한다. 커다란 설문대할망 인형은 자비로운 표정과 인자한 손으로 쓰레기가 쌓이고 나무가 잘려나간 한라산 자락을 어루만진다. 이것은 척박한 생활과 비극적인 역사를 버텨낸 제주 고유의 공동체 정신을 되살리는 동시에, 물질만능주의와 편의주의, 이기주의에 눈 먼 현대인을 일깨우는 ‘할머니의 가르침’이다. 

무엇보다 대사 없이 고요한 음악만이 흐르는 정적 속에 설문대할망 인형을 연기하면서 객석이 느끼는 감정은 몇 배나 커진다. 내내 쾌활한 분위기를 이어온 점을 고려할 때, 연출가의 완급 조절은 깊은 인상을 남긴다. 극 말미에 등장하는 그림자극은 짧지만 ‘개발보다는 보존’이란 메시지를 분명하게 각인시킨다.

옛 이야기(설문대할망)와 오늘 날의 사회 문제를 결합시킨 줄거리, 곳곳에서 터지는 웃음 포인트, 강약 조절이 분명한 메시지 전달이 절묘하게 결합하면서 <할머니의 이야기치마>는 훌륭한 환경교육 인형극으로 손색이 없다.

어린이들의 집중력을 고려했는지, 전반적으로 막힘없는 진행 속도 역시 인상적이다. 공들여 제작한 소품·장치가 핵심이다. 변신을 거듭하는 다목적 치마뿐만 아니라 깜짝 변신하는 복어, 독특한 질감·색감으로 재현한 제주도 중산간 풍경, 짧지만 시선을 사로잡는 그림자극 등은 마치 ‘인형극의 매력은 이렇게 다양하다’라고 보여주는 것 같다. 

배우들의 연기도 빼놓을 수 없다. 연출 겸 배우인 성민철(송송·돌돌이 역)과 박보배(꼬망 역)는 장난기 가득한 주인공의 목소리 연기를 소화했다. 극본을 쓴 장정인은 인자한 할머니 역할로 중심을 잡았다. 이 가운데 성민철은 강아지 돌돌이를 맡아 뛰어가는 동작부터 혀를 내밀고 헐떡이는 모습까지 혼신을 다해 집중한다. 돌돌이 연기는 극 초반 무대 위 ‘인형과 배우’가 공존하는 낯선 이질감을 빠르게 희석시킨다.

작품 전체를 봐도 할머니 몸에 붙인 소품을 다소 늦게 떼거나 떨어뜨리고, 아리송한 암전 타이밍 같은 점을 제외하면 큰 실수가 보이지 않았다. 이런 짜임새 있는 작품의 비결은 꾸준히 무대에 올리며 개선을 거듭한 덕분이다. 두근두근시어터는 <할머니의 이야기치마>를 2017년부터 네 번에 걸쳐 윤색하면서 완성도를 높였다. 영화, 드라마 같은 장르와 달리 연극은 계속 이어갈수록 더 좋은 작품으로 발전할 수 있다. 

5월 8일 공연은 제주 모 여자고등학교 학생들이 단체로 관람했는데, 지루함을 참지 못하는 깐깐한 10대들도 50분 공연 내내 감탄과 웃음을 번갈아가며 집중해서 관람했다. 인형극이 무척 낯선 기자도 웃으면서 때로는 가슴 뭉클하게 작품을 지켜봤다. 

공연이 끝나고 고등학생들 앞에서 배우들은 “세트나 무대 장치는 전문 업체에게 외주로 맡기는 경우도 많은데 두근두근시어터는 모두 자체 제작한다. 배우들 모두 정극 경험 없이 어린이 인형극만 매진해왔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연극은 놀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인형극은 무리하게 가르치지 않고, 편안하게 노는 분위기 속에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장르”라고 자신들의 예술관을 피력했다.

<할머니의 이야기치마>는 멋지게 갈고 닦아 반짝이는 작품이다. 인형극 하나에 몰두해온 젊은 제주 예술인들이 제주다운 소재로 제주 이야기를 전하기에 더욱 반갑다. 다른 작품도 기다려진다.

<할머니의 이야기치마>는 5월 7일부터 19일까지 공연한다. 월요일은 쉬는 날이며,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10시 30분(사전 예약 필수), 토요일은 오후 2시와 4시, 일요일은 오후 2시에 공연한다. 전석 1만2000원에 20인 이상 단체는 6000원, 3인 이상 가족은 1만원, 36개월 미만은 무료다. 

예약 및 문의 : 070-8610-7857, 010-6691-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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