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의 노동세상] 4. 사소해보이지만 분명 의미있는 우리의 '휴게시간'

시험기간이 되면 그동안 멀리했던 소설책이 재밌게 잘 읽힌다. 일을 할 때는 그렇게 안 가던 시간이 휴일에는 쏜살같이 지나간다. 점심시간도 시작과 동시에 끝나는 것 같은 기분이다. 상대적으로 즐거운 일을 할 때 시간은 좀 더 빠르게 흘러가는 듯하다.

그런데 만약 점심시간이 조금 더 길어진다면 노동자에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상대적으로 즐거운 시간이 길어지니깐 더 좋아질까?

노동자에게도, 사용자에게도 꼭 필요한 휴게시간

근로기준법은 노동시간의 기준을 정하면서 사용자는 노동자에게 ‘휴게시간’을 부여할 의무를 두었다. 왜냐하면 노동자는 기계가 아닌 인간이기에 중간 중간 휴식을 통해서 정신적․육체적 피로를 풀어야하고, 배고프면 밥을 먹는 시간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용자의 입장에서도 휴게시간을 통해 노동자의 능률을 높일 수 있으며 이것은 결국 서비스의 질이나 생산성의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일반적으로 휴게시간은 근무시간 중간에 점심시간 1시간으로 지정되어 있다. 근로기준법에서는 4시간 이상 일하는 경우 30분, 8시간 이상 일하는 경우 1시간 이상의 휴게시간을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끔 식사를 건너뛰는 것을 제외하고는 노동자가 사업장에서 8시간을 일하기 위해서 최소 1끼는 사업장에서 먹어야 한다. 어떻게 보면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휴게시간은 노동자가 사업장에서 1일 8시간의 일을 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시간이다. 

휴게시간은 유급인가?

이렇게나 필수적인 휴게시간에 대하여 근로기준법은 유급 혹은 무급의 기준을 부여하고 있지 않다. 결과적으로 대부분의 사업장에서는 무급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일터에 있는 시간은 총 9시간이며 그중에 8시간이 노동시간으로 처리되는 식이다. 

휴게시간은 사용자의 지휘․감독 하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점심시간에 개인 업무를 보기위해 사업장을 이탈할 때 관리자의 승인을 받도록 하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이러한 제재는 원칙적으로 불가하다. 사용자의 지휘 감독을 완전히 벗어나야 하기 때문에 10분씩 쪼개어 휴게시간을 부여하는 것도 불가하다. 편의점이나 식당에서 손님이 없는 시간에 잠깐 핸드폰을 본다거나 앉아있는 것은 휴게시간이 아니다. 언제라도 손님이 오면 응대해야 하는 대기 시간이기 때문이다. 휴게시간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았다면 그에 따른 임금이 지급되어야 한다.  

아주 예외적인 경우로 8시간 교대사업장이나 노동조합을 통해 단체협약으로 정해둔 사업장의 경우 식사 시간이 유급인 경우도 있다. 이를테면 점심시간 1시간을 포함하여 9시간을 근무한 경우라면 8시간+1시간의 수당이 지급되는 식이다.

점심 식사 중인 청소노동자들. 출처=오마이뉴스.
점심 식사 중인 청소노동자들. 출처=오마이뉴스.

휴게시간의 권리를 찾자!

제주공항에 들어오는 비행기의 기내 청소를 하는 노동자가 있었다. 비행기 운항시간표가 있더라도 공항 사정에 따라 비행기가 들고 나는 시간은 예측하지 못하게 바뀌곤 했다. 기내 청소 노동자의 업무는 비행기가 도착하기 전 활주로에 대기하고 있다가 비행기가 들어오자마자 청소를 시작하여 30분 내로 마무리해야하는 것이다. 예측 불가능한 운항 상황은 근로계약서상 1시간으로 명시된 휴게시간이 실제로는 10~15분 내외로 허겁지겁 밥을 먹는 것으로 대체되도록 했다. 이들의 경우 노동조합을 만들고 사용자와 단체협약을 체결하면서 미사용 휴게시간을 보상하는 취지로 매일 30분의 연장수당을 갈음하는 보전수당을 신설하였다. 업무의 특성상 휴게시간 확보가 어려운 경우에 대한 보전책이었다.

반면, 휴게시간이 너무 길어서 문제인 경우도 있다. 식당이나 패스트 푸드점, 커피숍 등에서 손님이 없는 시간에 2~3시간의 휴게시간을 부여하는 경우이다. 이러한 경우 사전에 약정하지 않고, 손님의 많고 적음에 따라 사장이 그때마다 휴게시간을 부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만약 약정된 휴게시간이 늘어나 임금을 저하시키게 된다면 노동 조건의 불이익 변경이기 때문에 반드시 노동자의 동의 절차가 필요하다.

휴게시간에 대한 상상

업무의 연장에서 식사도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휴게시간은 유급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한편 무급인 상황에서 휴게시간을 줄이고 차라리 일을 더해서 임금으로 받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휴게시간이 노동자가 하루를 사업장에서 보내기에 필수불가결한 시간이라면 최소한 밥 먹는 1시간만이라도 유급이 된다면 어떨까? 그러면 노동자 입장에서도 충분한 휴식을 취하고, 기분 좋게 다시 업무를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은 결국 사업장의 이익으로 연결되진 않을까?

근로기준법 [시행 2019. 1. 15.] [법률 제16270호, 2019. 1. 15, 일부개정]
제54조(휴게) ① 사용자는 근로시간이 4시간인 경우에는 30분 이상, 8시간인 경우에는 1시간 이상의 휴게시간을 근로시간 도중에 주어야 한다.
② 휴게시간은 근로자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 김경희는?

‘평화의 섬 제주’는 일하는 노동자가 평화로울 때 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노동자의 인권과 권리보장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공인노무사이며 민주노총제주본부 법규국장으로 도민 대상 노동 상담을 하며 법률교육 및 청소년노동인권교육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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