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끼 철엔 사농 안 헌다
새끼 철엔 사농 안 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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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의 借古述今] 118. 새끼 때는 사냥 안한다

* 사농 : 사냥
* 안 헌다 : 아니한다

사자나 호랑이가 정글의 제왕인 건 맞는 말이지만, 그들 위에 군림하는 게 인간이다. 사람에게는 그들을 제압할 수 있는 지능이 있고 공작과 기예의 손이 있다. 무기를 만들어 활이나 총 한 방이면 쓰러뜨린다. 마음만 먹으면 맹수에서 순한 동물들, 하늘을 나는 날짐승이며, 바다의 물고기까지 마음대로 포획할 수 있다.
 
하지만 산 짐승을 아무 때가 함부로 잡지 않는다. 마구잡이로 닥치는 대로 포획하다 보면 멸종될 위기를 맞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히 어류의 짐승의 산란기, 새끼를 치는 시기엔 사냥을 엄격하게 금한다. 법으로 막고 있다. 번식하도록 조치하는 것이다. 그래서 일정 기간 사냥을 금하도록 설정해 놓는 게 금렵기(禁獵期)다. 선인들이 지혜가 돋보이는 대목이다.

‘대게’로 유명한 영덕 사람들에게서 작지 않은 감명을 받는다. 그곳 사람들은 한때만을 바라 대게를 잡지 않는 오랜 관습이 내려온다고 한다. 자자손손을 위해 지혜롭게 대처한다는 것이다.
 
직접 대게를 잡는 어부에서부터 판매하는 상인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암컷’은 바다로 돌려보낸다는 얘기는 감동적이다. 단시 잡힌 대게를 바다로 되돌려 보내는 게 그치지 않는단다. ‘대게보존회’가 결성돼 있어, 보존회가 인증하는 반지를 집게발에 일일이 끼우는 귀찮고 번거로운 작업도 마다하지 않는다지 않는가.

그렇게 해서 품질이 보증되는 대게는 사시사철 어느 때 먹어도 속살이 꽉 차 그 맛이 그야말로 일품(逸品)이라는 것.

바다가 한없이 고마운 영덕은 자손만대를 두고 잡고 먹고 살아가기 위해 암컷을 무조건 바다고 돌려보내는 규칙을 엄격히 지킨다. 눈앞의 이익을 탐하는 근시안적인 유혹을 뿌리치고 몇 년 뒤를 내다보는 것이다. 만약 규칙을 어겨 암컷을 잡으면 1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이 주어진다니 잡아 봤자 손해다.

법보다 관습인가. 그곳 주민들은 남에게 부끄러워서도 암컷은 잡지 않는다고 한다. 오십천 하구에 자리 잡은 영덕군 강구면 강구리는 그야말로 게판(?)이라고 한다. 해마다 굿판을 벌여 용왕제를 올리면서 풍어와 어민들의 무사안녕을 기원한단 것.

매일같이 잡히는 대게다. 전답의 곡식처럼 밭 갈고 김매고 거름 주어 가꾸고 거둬들이고…. 그런 수고로움이 없으면서 유일한 생계유지 수단이 되니 얼마나 좋은가. 하늘이 내린 복이 아닐 수 없다.

출처=오마이뉴스.
바다가 한없이 고마운 영덕은 자손만대를 두고 잡고 먹고 살아가기 위해 암컷을 무조건 바다고 돌려보내는 규칙을 엄격히 지킨다. 출처=오마이뉴스.

우리 제주에서도 어촌에서는 금어기에 그물질을 자제하고 산란기에는 낚시를 금하는 것으로 돼 있다. 비단 물고기에 국한하지 않아, 톳‧미역‧우뭇가사리 채취를 금한다. 마을마다 어촌계별로 아주 엄격히 단속해 오고 있는 것은 영덕 대게의 경우와 같은 맥락이다.

낭마파 시인 청마 유치환이 대구에서 교편을 잡던 시절에 썼다는 수필 한 대목을 떠올리게 된다.

“일본은 금렵기에 산천어를 낚시하려면 그곳 현장에서 허가장을 받고 수량은 3마리, 기한을 2월 중 단 하루.”

바닷가에 그 흔하던 파래가 나지 않는다면, 일단 생태계의 변화에 민감해질 필요가 있다. 문제는 알면서, 위기를 느끼면서도 실천이 따르지 않는 데 있으니 늘 아쉽다.

요즘 제주 산야에 꿩은 이전같이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하다. 산란기가 4월 하순에서 6월까지다. 이때를 피해 사냥을 해야 하는데 마구 잡고 있지는 않은지. 꿩사냥을 금하는 시기란 말을 들은 지 하도 오래라 하는 얘기다.

예로부터 꿩 사냥은 전국 어디서나 성했다. 어느 고서에 “우리 민족의 생활의 일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꿩 잡는 사람은 늦은 봄을 기다려 풀이 무성할 때, 총이나 활을 갖고 나무숲이나 풀숲에 숨어서 뼈나 뿔로 만든 피리로 울음소리를 내면 장끼가 듣고 가까이 날아오는데, 그때 쏘면 백발백중”이라 했다.

제주에도 꿩코란 걸 숲속에 놓아 잡거나 엽총을 이용해 꿩 사냥을 즐긴다. 관광객에게 사냥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어 인기가 아닌가 한다.

어릴 때 ‘꿩꿩 장 서방’이라며 장 씨 성을 가진 아이를 놀려댔던 일이 떠오른다. ‘장 서방’의 ‘장’은 수꿩인 장끼에서 따올 것이다.

불교에서 사찰에 따라 해마다 물고기를 방생(放生)하는 의식을 행한다. 방생은 ‘살생(殺生)’의 반대다. 선행이기도 하지만, 어린 생명을 살려 후일을 도보하려는 지혜이기도 하다.

눈앞에 있는 걸 놓칠 수 있나보다, 어린 것을 살려 키우면 훨씬 더 이익을 얻는다. 그래서 우리 선인들은 ‘새끼 철엔 사농을 안 헌다’고 했다. 그야말로 선견지명이 아닐 수 없다. /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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