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청진기] (3) 기다림이 필요한 이유 / 현우식

'제주 청진기'는 제주에 사는 청년 논객들의 글이다. 제주 청년들의 솔한 이야를 담았다. 청년이 함께 하면 세상이 바뀐다. 우리 주변의 소소한 이야기에서, 각종 사회문제에 대한 비판적 시선, 청년들의 삶, 기존 언론에서 다루지 않는 서브컬쳐(Subculture)에 이르기까지 '막힘 없는' 주제를 다룬다. 전제는 '청년 의제'를 '청년의 소리'로 내는 것이다. 청진기를 대듯 청년들의 이야기를 격주마다 속 시원히 들어 볼 것이다. [편집자] 

“이제 너도 곧 서른인데, 안정된 직장을 가져야 하지 않겠니”

여기저기서 심심찮게 듣는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안정적 직장이란 해고될 걱정 없이 안정된 수익을 벌 수 있는 직장을 말한다. 보통 공무원, 공기업 사원으로 불리는 이 직장은 안정적 결혼과 안정적 노후로 상징되는 안정적 삶의 조건으로 이야기되곤 한다. 

그래서 많은 청년들의 꿈은 공무원, 공기업 사원이 되어서 안정적인 삶을 사는 것이 되었다. 너도나도 안정적 직장을 꿈꾸는 바람에 기성세대는 때론 꿈도 패기도 없이 무난하게 살려고만 하는 ‘요즘 것들’을 비판하기도 한다. 혁신을 통해 미래 사회를 만들어나갈 청년들이 죄다 공무원만 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 역시 자식들은 안정된 직장을 갖고 안정된 삶을 꾸리기를 원한다. 

그렇다면 고생 끝에 안정된 직장을 얻은 사람들은 정말 안정된 삶을 살게 될까? 주변에 안정된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붙잡고 한번 물어보자. 우스운 질문이 될 것이다. 안정된 직장은 안정된 삶을 구성하는 수많은 요소 중 하나일 뿐이다. 여전히 안정된 관계, 안정된 마음, 안정된 미래는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을 것이며 삶은 여전히 불안의 연속일 것이다. 

청년 일자리 문제를 이야기할 때도 비슷한 고민이 든다. 일자리가 많아져서 청년 실업자가 줄어들면 청년들은 비로소 행복해질까? 나아가, 안정된 직장이 많아져서 실업이 줄어들면 청년들은 비로소 안정된 삶을 찾을 수 있을까. 적어도 지금보다는 나아지리라 기대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비슷한 이유로 삶은 여전히 불안의 연속일 것이다. 왜냐하면 안정된 직장을 원하는 청년들의 선택은 대부분 사회로부터 강요된 것이기 때문이다. 

사회는 안정을 강요하면서 청년들의 불안할 자유를, 구체적으로는 불안할 공간과 시간을 빼앗아왔다. 학생운동이나 학생자치활동이 쓸모없는 것으로 취급되고 청년 공동체가 사라지면서 청년들은 함께 불안해할 공간을 잃었다. 대학에서는 이제 22살만 되도 화석 소리를 들어야 하고, 고학번이 되면 대학생이 아닌 취업준비생과 고시생으로 빠르게 탈바꿈할 것을 요구받게 되면서 청년들은 함께 불안해할 시간을 잃었다. 

안정된 삶은 강요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불안과 고민 끝에 각자의 모습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일정 조건을 통해 달성되는 결과라기보다는 하나의 실천적인 과정이다.

따라서 사회가 해야 할 일은 청년들이 빼앗긴 불안할 시간과 공간을 돌려주고, 이들에게 불안할 자유를 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들의 삶을 주체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도록 조금은 기다려주는 것이다. 이른바 청년정책은 이 시간과 공간을 확보해주는 일이 되어야 한다. 문제는 ‘안정된 직장’이 아닌 ‘불안할 자유’다.

현우식(29)

바라는 것은 깃털처럼 가벼운 삶이나 다이어트는 매번 실패중.

별로 정의롭진 않으나 주변에 정의로운 사람이 많음.

극단을 싫어하고 절충과 타협을 좋아함.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