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시선] 19년 전 ‘사이버 여론조작’ 오싹...생태길 ‘제주올레’ 충고 새겨야

난 이곳을 오를 때마다 일종의 부채의식을 느낀다. 어느덧 근 20년이나 흘렀다. 당시 기자로서 왜 더 치열하지 못했었나 하는 자책감 때문이다. 그래선지 가끔씩은 뭔가에 홀린 듯 이곳으로 이끌리게 된다. 몸이 먼저 반응한다고나 할까. 

제주에 몇 안되는 산(山), 송악산 얘기다. 이곳에선 두 가지 감상에 젖곤 한다. 황홀경과 아찔함이다. 전자는 부시도록 아름다운 풍광, 후자는 “그 때 파헤쳐졌다면...” 하는 몸서리 때문이다.   

당시 나는 사이비 기자였다. 아니 그렇게 매도당했다. 펜으로 개발의 부당성을 알린 게 죄라면 죄였다. 상상이나 했겠나. 행위자가 도청 간부일줄.   

대업(?) 앞의 눈엣가시였는지 그는 일부 언론인과 환경단체를 물어뜯었다. 황송하게도 ‘이 정도 밖에 못하냐’고 늘 자책하던 나까지 공격 대상으로 삼았다. 도청 인터넷 게시판에 익명으로 비방성 글을 수십차례 올렸다. 수사 의뢰로 드러난 사이버 여론조작의 진원지는 제주도청. 20년 가까이 지난 시절이었으니, 지금으로 치면 ‘킹크랩’도 울고 갈 일이었다. 결국 그는 형사처벌을 피하지 못했다.  

우근민 도정 때였다. 

송악산을 보전해야 하는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장관(壯觀)이야 말해 무엇하랴. 태평양전쟁, 4.3학살, 한국전쟁의 상흔을 간직한 다크 투어의 명소 때문 만도 아니다.   

“송악산은 생태적·지질학적 가치가 높은 만큼 허가를 내줘선 안된다”

지난해 도지사선거 때 원희룡 후보 조차 반대할 정도로 송악산의 가치는 엄청나다. 그런데도 과거 우 도정은 그 가치를 깎아내리지 못해 안달했다. 이중(二重)분화구 논란이 대표적이다. 지질학자들이 ‘분화구 안에 분화구’는 세계적으로 드문 경우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데도 우 도정은 그게 아니라고 우겨댔다. 

과하다 싶을 만큼 가치를 부여하는 요즘의 세태와는 정반대였다. 

당국은 철저히 사업자 편에 섰지만, 송악산 개발은 예기치 않은 일로 무산됐다. 사업자가 외환관리법 위반, 사기 및 외화도피 혐의로 검찰에 의해 전격 구속된 것이었다. 이태리 등 유럽자본을 들먹이며 대대적인 기공식까지 열었지만 결과적으로 쇼였다. 특히 제주도와 당시 남제주군은 업자의 사기 행각에 놀아난 꼴이 됐다.   

자칫하면 핵심부인 분화구 지대까지 허물어질 뻔 했으니 한편으로는 다행이었다.    

제주도종합개발계획에 따라 송악산이 관광지구로 지정된 것은 1994년 6월. 사업승인은 1999년 12월말에 났다. 지구 지정이 해제된 것은 2003년 6월이었다. 

만 9년만에 송악산이 개발의 광풍에서 벗어나는가 싶더니, 그 후 10년만에 다시 대규모 개발이 시도됐다. 2013년 제주도에 인가 신청이 들어왔다. 공교롭게도 이 때도 우근민 도정이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군사기지까지 모진 시련을 겪은 송악산이 또 한번 얄궂은 운명과 마주하게 됐다.  

이번에는 중국자본이다. 

‘뉴오션타운’을 들고 나타난 사업자는 송악산 심장부를 살짝 비켜가는 카드를 내밀었다.

원 지사의 의중(?) 탓인지 환경영향평가 심의에서 번번이 제동이 걸렸으나 올 1월25일 4전5기 끝에 조건부 동의를 얻었다. 호텔 층수를 낮추는 등 미미한 수정만 했는데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사실 원 지사는 2015년 예래단지 개발사업에 대한 대법원의 무효 판결 이후 뉴오션타운 사업계획의 타당성 여부에 대한 전면 재검토를 시사하기도 했다. 송악산 개발 반대를 공언한지 1년도 안돼 환경영향평가 심의를 통해 면죄부를 준 셈이어서 원 지사가 진정성을 의심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여러차례 ‘송악산의 위기’를 경험한 시민사회와 주민들은 발끈했다.  

사업 철회를 요구하는 서명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다. 참여 인원이 5월8일 현재 1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이들은 사업 중단과 함께 도의회의 현명한 선택을 촉구했다. 사업을 추진하려면 환경영향평가에 대한 도의회의 동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방관자적 태도를 취해온 원 도정에도 분명한 스탠스를 취할 것을 주문했다. 물론 사업을 찬성하는 주민들도 있다. 송악산 개발을 통해 침체된 지역에 돌파구를 마련해보자는 취지다. 

송악산은 지반이 매우 취약한 편이다. 사면을 타고 토사가 흘러내리는 모습을 어렵지않게 볼 수 있었다. 오죽하면 정상부 출입을 금지했겠는가. 

그럴 때면 조마조마해진다. 여기에 중장비까지 들이댄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제주는 대규모 개발사업이 아니라 원형 그대로의 자연과 문화 자원만 잘 활용하고 보존해도 지역 경제가 활성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12년 동안 제주 곳곳에 생태 길을 내온 제주올레가 지난달 성명을 통해 밝힌 내용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제주관광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주도한 단체의 체험에서 나온 충고. 그래도 모자란가? <논설주간/상임이사>

* 소리시선(視線) /  ‘소리시선’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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