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적 인간] 24. 악질경찰(2019, 이정범), 걸캅스(2019, 정다원),

'영화적 인간'은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라고 말한 질 들뢰즈의 말처럼 결국 영화가 될(이미 영화가 된)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들에 대한 글이다. 가급적 스포일러 없는 영화평을 쓰려고 하며, 영화를 통해 생각할 수 있는 삶의 이야기들이다. [편집자 주]

내가 사는 도시는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관광도시다. 범죄야 어느 곳에서나 발생하는 것이지만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는 걸 수긍하지 못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남국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이 작은 도시에서도 범죄가 끊이지 않는다. 영화 <살인의 추억>(봉준호, 2003)과 영화 <조디악>(데이비드 핀처, 2007) 둘 다 연쇄살인범을 다룬 영화인데 두 영화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공장의 외형을 보여준다. 그 장면은 마치 정지된 화면처럼 멍하니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래도 여전히 모르겠니?”

영화는 우리에게 말한다. 왜 세월호와 연결하느냐는 비판, 클럽에 간 것부터가 잘못이라는 비판. 두 비판 속에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거대한 공장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하필이면 경기도 안산 경찰서여야 하는지, 왜 클럽에서 미니스커트 입고 춤추는지 영화는 배경만으로 우리에게 말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한 연관을 극장에까지 와서 확인하고 싶어 하진 않으니까.

영화 <극한직업>(이병헌, 2019)의 마약단속반처럼 재미있거나 영화 <미녀 삼총사>(맥지, 2000)처럼 유쾌하게 일망타진하기를 바라는 게 관객의 일반적인 본전생각이다. 아니면 차라리 영화 <킬 빌>(쿠엔틴 타란티노, 2003)처럼 피가 낭자하든가.

영화 '악질경찰'의 한 장면(왼쪽), 영화 <걸캅스>의 한 장면. 출처=네이버 영화.

내가 사는 도시에서 몇 년 전에 한 여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아는 사람의 먼 친척이라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갓 스무 살을 넘긴 나이였다고 한다. 그녀의 어머니는 술집에서 일했는데 그녀가 중학생일 때 술 취한 손님으로부터 칼부림을 당해 목숨을 잃었다. 고아가 된 그녀는 어머니와 같은 삶을 살지 않을 거라 다짐했지만 결국 술집에서 일하다 생을 마감했다.

영화는 끝나지만 삶은 지속된다. 영화 <악질경찰>에서는 여고생이, 영화 <걸캅스>에서는 스무 살 여대생이 자살을 한다. 내가 사는 도시에는 미제(未濟) 살인사건이 파일함에 가득하고, 영화의 한 장면처럼 종려나무 가로수 아래 본인도 모른 채 살인범이 서 있다.

현택훈
시인. 시집 《지구 레코드》, 《남방큰돌고래》, 《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 산문집 《기억에서 들리는 소리는 녹슬지 않는다》 발간. 영화 잡지 <키노>를 애독했으며, 영화 <스쿨 오브 락>의 잭 블랙처럼 뚱뚱하고, 영화 <해피 투게더>의 장국영처럼 이기적인 사랑을 주로 한다.
traceage@hanmail.net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