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제주형 도시재생, 길을 묻다] (26) 김영수도서관
마을도서관으로 재탄생...중간지원조직-행정-학교-주민 협업 빛나

제주북초 안쪽에서 바라본 김영수도서관의 입구. 도서관 건물과 과거 관사로 쓰이던 창고건물을 연결해 만들었다. 과거의 모습과 느낌을 그대로 살리는 게 외부 리모델링의 목표 중 하나였다. ⓒ제주의소리
제주북초 안쪽에서 바라본 김영수도서관의 입구. 도서관 건물과 과거 관사로 쓰이던 창고건물을 연결해 만들었다. 과거의 모습과 느낌을 그대로 살리는 게 외부 리모델링의 목표 중 하나였다. ⓒ제주의소리

110여년의 역사를 지닌 제주북초등학교 안에 자리잡은 김영수도서관은 1968년 처음 세워졌다. 이 학교 20회 동문인 故 김영수 씨는 일본 오사카로 건너가 기업인으로 성공한 뒤 후배들을 위해 이 도서관을 기증했다.

이 곳이 새롭게 단장한 것은 작년 12월. 사용되지 않던 옆 창고와 관사까지 연결해 확장 리모델링됐다.

오는 31일, 이 곳은 마을도서관으로 다시 태어난다. 학교를 넘어 인근 원도심에 사는 가족들이 함께하는 도서관, 마을교육 공동체의 중심이 되겠다는 취지다.

마을에 사는 가족들이 손을 잡고 편하게 찾는 공간, 아이들이 뒹굴뒹글 책을 읽으며 노는 곳, 아이와 부모를 위한 다양한 인문학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새로운 교육의 장을 꿈꾸고 있다.

제주북초등학교 20회 동문인 故 김영수 씨는 1930년대 일본 오사카로 건너간 뒤 기업인으로 성공한다. 그는 학교와 고향에 대한 애정을 강조하며 도서관을 기증했다. ⓒ 제주의소리
제주북초등학교 20회 동문인 故 김영수 씨는 1930년대 일본 오사카로 건너간 뒤 기업인으로 성공한다. 그는 학교와 고향에 대한 애정을 강조하며 도서관을 기증했다. ⓒ 제주의소리

학교도서관을 마을도서관으로 전환하는 일은 설립자인 故 김영수 씨의 철학과 일맥상통한다.

도서관 1층과 2층을 연결하는 계단 서가에는 “모교를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고향을 사랑할 줄 모르고, 고향을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모른다”는 문구가 걸려있다. 지역에 대한 사랑을 강조한 기증자의 정신을 현실화한다는 과정이다.

사실, 아이들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문화공간이 없었기에 마을도서관은 원도심 지역주민들의 숙원사업이었다.

원도심이 쇠퇴하면서 지역학교의 학생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고, 아이들이 방과후 갈 곳이 없다는 학부모들의 아쉬움이 컸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들락거릴 수 있는 마을도서관이 간절했던 이유다.

작년 초 제주시 원도심 도시재생사업이 시작되면서 본격화된 움직임에는 제주도시재생지원센터와 제주북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지역사회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함께했다.

제주도, 제주도교육청 등 행정은 예산 연계 등 뒷받침 전략을 모색했다. 도서관 운동 경험이 있는 전문가들도 합류했다. 조성계획 수립,  학부모총회에서의 사업설명회, 마을교육공동체 조성을 위한 워크숍 등이 이어졌다.

학교 시설을 외부에 공개하는 것은 안전문제라는 측면에서 깊은 고민이 필요했다. 학부모들과의 지속적인 논의에서 현실가능한 대안들을 찾기 시작했다. 장기간 논의를 걸쳐 오후 5시까지는 학교도서관 기능을 하고 이후 시간대에 마을에 개방하기로 했다. 저녁에는 도서관 활동가들이 이 곳을 지킨다.

‘무근성 문화학교’라는 방향성이 정해지고, 리모델링을 맡은 권정우 탐라지예 건축사무소장은 50여년 전 자료들을 뒤져가며 최대한 추억과 흔적을 되살리기 위해 애썼다. 2018년 12월 7일 준공식에는 이런 정성들이 그대로 나타났다.

커뮤니티 공간으로 활용될 1층은 장짓문 뒤로 오븟한 방이 꾸려졌다. 2층 열람실에는 큰 창을 내 목관아가 한 눈에 들어온다. 과거의 멋을 살리면서도 아이들이 놀면서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 구성을 특징이다.

작년 12월 리모델링 완공식 때 도서관을 둘러보는 학생들의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작년 12월 리모델링 완공식 때 도서관을 둘러보는 학생들의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열람실. 안쪽 투명창에는 책장에 가득찬 책들이,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커다란 창에는 목관아의 모습이 정면에 들어온다. ⓒ제주의소리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열람실. 안쪽 투명창에는 책장에 가득찬 책들이, 밖을 내다볼 수 있는 커다란 창에는 목관아의 모습이 정면에 들어온다. ⓒ제주의소리
김영수도서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제주북초의 역사가 벽면에 새겨져 있다. 과거 사용하던 계단 하나하나를 그대로 살렸다. ⓒ제주의소리
김영수도서관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제주북초의 역사가 벽면에 새겨져 있다. 과거 사용하던 계단 하나하나를 그대로 살렸다. ⓒ제주의소리

제주도는 이 곳을 제주시 원도심 도시재생사업의 핵심으로 보고 국비 등 총 9억원을 투입했다. 공공발주로 진행된 관급공사이면서도 공간의 효용과 가치를 최대로 높이기 위해 담당공무원들은 현실적인 대안 마련에 분주했다는 후문도 나온다.

주민들의 고민을 듣고 처음 마을도서관 조성을 고민하던 제주도시재생지원센터는 제주북초등학교를 비롯해 다양한 구성원들 간 연결을 위해 뛰면서 중간지원조직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했다. 도서관을 함께 가꿔갈 활동가 양성을 위한 교육도 진행했다.

소식을 들은 동문들은 책 구입에 보태달라며 조금씩 정성을 보탰다. 박희순 제주북초 교장의 결단, 적극적으로 논의에 참여한 학부모들, 마을인프라 협조를 약속한 마을회 등 다양한 주체들이 협력해 만들어낸 과정은 김영수도서관을 주목하게 하는 이유다.

결과적으로 제주형 협치 모델을 통해 원도심 주민이었던 고 김영수 씨가 학교에 준 사랑을, 다시 학교가 주민과 나누게 된 셈이다.

전 순천 기적의도서관 관장인 허순영 제주도서관친구들 회장은 “아이들을 위해 어른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정성을 들여 힘을 합쳤다는 과정이 의미가 크다”며 “이 곳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채워주는 역할을 김영수도서관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허 회장은 “도서관이야 말로 적은 비용으로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하는, 중요한 사회안전망의 기초”라며 “이 도서관을 사랑하고 함께 잘 가꿔나가는 이용자들이 있다면 오랜 기간 잘 운영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학교 외부에서 바라본 김영수도서관 전경.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학교 외부에서 바라본 김영수도서관 전경.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과거의 모습을 최대한 살린 김영수도서관의 내부. ⓒ제주의소리
과거의 모습을 최대한 살린 김영수도서관의 내부. ⓒ제주의소리
한옥 양식으로 지어진 김영수도서관 1층 천장에는 제주북초 학생들이 소망과 바람을 적어넣은 들보가 자리잡고 있다. ⓒ제주의소리
한옥 양식으로 지어진 김영수도서관 1층 천장에는 제주북초 학생들이 소망과 바람을 적어넣은 들보가 자리잡고 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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