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청진기] (4) '나가서 배워라' 보다 '여기서 새로운 시도를 하라'는 안되는걸까? / 강나루

'제주 청진기'는 제주에 사는 청년 논객들의 글이다. 제주 청년들의 솔한 이야를 담았다. 청년이 함께 하면 세상이 바뀐다. 우리 주변의 소소한 이야기에서, 각종 사회문제에 대한 비판적 시선, 청년들의 삶, 기존 언론에서 다루지 않는 서브컬쳐(Subculture)에 이르기까지 '막힘 없는' 주제를 다룬다. 전제는 '청년 의제'를 '청년의 소리'로 내는 것이다. 청진기를 대듯 청년들의 이야기를 격주마다 속 시원히 들어 볼 것이다. [편집자] 

지금도 제주를 탈출할 계획을 야심차게 세우고 있는 미래세대에게 제주는 어떤 미래를 제시하고 있는가? 

제주에는 ‘여기만 나가면 그 곳엔 무언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에 육지로, 해외로 나갈 계획을 세우는 청년들이 있다. 대학 진학을 기점으로 제주를 나가면 성공에 좀더 가까워질 것이라는 긴장감을 갖고 기필코 나가려는 청소년도 있다. 제주탈출이 목표라고 하면 ‘너무 기특하다’고 응원해주시는 어른들의 반응에 생각해볼 새도 없이 제주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는 어릴 때부터 '성공적인 제주 탈출'을 꿈꾼다.

지난 5월 18일, 청소년들이 20~30대 청년 전문가 멘토와 주도적으로 진로탐색을 하는 새로운 진로교육 프로젝트 ‘패스파인더(PathFinder) 청소년 캠프’에는 100여명의 제주지역 고등학생들이 모였다. 지금 고등학생들은 제주라는 공간을 자신의 삶에서 어떻게 설정하고 있는지 궁금한 마음에 앞으로 제주에서 살아갈 생각인지 물었다. 

과연 우리의 고등학교 시절과 지금은 달라졌을까? 예상은 했지만 제주에서 나가고 싶어하는 학생의 수가 우세한 것은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제주를 떠나고 싶다고 한 학생들은 대부분 전문적인 트레이닝과 일자리의 이유를 들었고, 남아있겠다는 학생들은 '가족이랑 함께 지내고 싶어서', '굳이 서울에 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서' 그리고 '제주가 편해서' 등의 이유였다.

캠프에서 만난 일부의 학생들이었지만 '제주를 떠남'과 '안 떠남'의 이유는 전국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비슷하게 포착된다. 2018년, 전국청년정책네트워크는 ‘청년인구 이동 문제 진단을 위한 청년 현실에 기초한 지역격차 분석 연구’를 통해 “지역 간 이동의사가 있는 청년은 일자리 관련 요인이, 정주의사가 있는 청년은 사회적 관계망 및 심리적 안정감 요인이 주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밝혔다. 

또 하나 주목할 연구결과는 “교육이나 일자리 이행으로 인해 이동성이 높은 청년세대이지만 비자발적으로 이동을 해야 하거나, 이동을 원하더라도 선택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보장되지 않는 것은 청년의 삶과 지역사회의 활력을 저해하는 요소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제주지역에 살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떠나는 청년에 주목해서 그의 삶을 좀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임금수준이 높은 지역이 청년 유출이 적다는 점에서, 전국대비 임금수준이 낮은 제주는 청년들이 어쩔 수 없이 타 지역으로 떠나야 하는 곳으로 인식될 수 있다.

한국자치경제연구원에서 2017년도에 펴낸 ‘제주 청년 종합실태조사 및 청년정책 기본계획 보고서’에서도 ‘제주를 떠나고 싶다’는 응답비율 46%, 그 이유로는 더 나은 일자리를 위해(21.9%), 더 나은 교육/훈련기회를 위해(16.8%) 순으로 나타났다. 현재 제주가 함께 고민할 문제가 맞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두 가지 방향을 얘기하고자 한다.

첫째, 우리는 더 이상 문화와 시스템을 단순히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자원과 정서를 이해하면서 미래의 흐름에 대응할 기획자의 마인드로 전환돼야 한다. 나가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관심사를 갖고 모인 서로를 통해 여기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보는 시도가 쌓이면 우리는 미래를 유연한 생산력을 가진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

둘째, 일자리와 교육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겠지만, 언젠가부터 행복한 삶의 조건이 획일화 되어가는 제주 사회에 인식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위 연구에서 청년들은 행복한 삶의 조건으로 재산과 경제력을 최우선으로 뽑았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선호하는 추세라고 연구에서는 해석하고 있다. 사회 기저에 흐르는 인식에 영향을 받아 제주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는 것이 아닌, 설명하기 쉽고 행복할 것이라고 인정해주는 길로 성찰 없이 휩쓸려가는 것은 아닐까?

진로캠프에서 덤덤한 말투로 공기업에 가고 싶다는 학생을 만났다. 많은 이들이 가고 싶어하는 곳이다. 그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대화를 마치고 나오면서 진로설정이 명확해서 다행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자라나는 세대를 향한 우리 사회의 입김이 너무 강한 건 아닌지 왠지 찜찜한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제주의 다음세대가 지역에서 살아가려면 다양한 역할을 해나갈 텐데, 경제적으로 안정적이지 않아 보이는 방향으로 가려고 하면 선뜻 응원하기가 어려운 시대다. 나만의 기준을 갖고 시도하는 일이 굉장한 위험을 감수하는 일이 아니려면, 정책과 지지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뒷받침이 되어야 한다. 그런 시도를 통해서 기획력을 키운 제주의 다음세대가 더 나은 제주를 만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 믿는다. 이때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가 이런 과정을 믿고 그 결과를 충분히 기대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제주도의 ‘청년인재육성 및 발굴에 관한 종합계획'에 등장하는 인재상. 기존(현재)의 인재상과 새로운(변화) 인재상의 차이가 두드러진다. ⓒ 제주의소리
제주도의 ‘청년인재육성 및 발굴에 관한 종합계획'에 등장하는 인재상. 기존(현재)의 인재상과 새로운(변화) 인재상의 차이가 두드러진다. ⓒ 제주의소리

다행히 제주도에서는 미래 시대를 맞이할 새로운 인재상을 홍보하기 시작했다. 2019년 2월 제주도 청년정책담당관에서 공개한 ‘청년인재육성 및 발굴에 관한 종합계획’에서 “청년이 떠나는 제주”에서 “청년이 꿈을 키우고 이루는 제주”로 변화 실현하는 것을 비전으로 밝히며 단순 일자리 창출이 아니라 도전과 성장 기회를 통해 지역과 세계 발전에 기여할 문제해결역량을 갖춘 인재상을 강조하고 있다. 이 계획에서는 개인의 문제풀이 능력보다 앞으로는 공동체를 이해하는 리더십과 문제해결 능력이 요구되는 사회로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새로운 인재상에 걸맞은 청년 정책과 사회의 인식 전환이 이뤄지길 진심으로 바란다. 제주라는 작은 사회 안에서 직업에 대한 인식의 전환과 청년에게 기대하는 분위기가 없다면 직업에서 오는 제주 청년들의 좌절감 그리고 무기력함을 절대 개선할 수 없을 것이고, 청년들에게 도전이라는 말은 점점 더 멀어지는 말이 될 것이다.

이런 청년에 대한 분석은 우리가 함께 마주할 세계에 대한 분석이기도 하다. 미래에 대한 준비는 현재의 지형을 정확하게 들여다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작년 말 ‘제주청년사회경제실태조사’로 제주도가 통계청 사업에 선정됐다. 청년(만19~39세)의 삶을 조사하고 정책수립의 기초자료로 활용하게 된다니 무척이나 반가운 소식이다. 2017년도 실태조사 결과가 활용이 많이 되었던 만큼 이번 청년통계조사가 담아낼 제주사회의 모습이 어떨지 벌써 궁금해진다. 

제주도가 청년의 현실을 파악하기 위해 운영하고 있는 제주청년원탁회의라는 의견수렴기구는 벌써 3년째다. 하지만 청년의 아이디어가 실제 반영이 되는 정책의 수준으로 발전하기에 시간과 분야별 전문성이라는 한계에 부딪치는 것이 실상이다.

청년통계조사가 앞으로도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서 청년연구자와 청년정책전문가를 양성한다면 더욱 통찰력 있고 정교한 당사자의 키워드를 뽑아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회에 건강한 관심을 표하는 청년들의 목소리가 아이디어 수준에 머물지 않고 지역에서 커간다면 지역을 떠나지 않고 관계성을 유지하며 잘 살아갈 방법들을 꺼내놓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더 이상 제주탈출에 대한 막연한 돌림노래는 멈추고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이 있고 정서적 터전인 이곳에서 삶을 기꺼이 꾸려나갈 수 있겠다.

강나루는?

만 29세. 나의 삶과 일을 함께 추구하는 선택을 해왔다. 지역의 문제를 지역주민들이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그곳의 사람과 자연이 생기롭게 유지된다고 믿는다. 체코슬로바키어과와 유엔평화학과를 졸업했고, 제주에 돌아와서는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지원 업무를 했다. 직장을 떠난 뒤에는 기획과 연구를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 경험을 축적해나가는 것이 나의 중요한 ‘일’이다. 제주에서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 삶을 응원하는 데에 몰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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