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9월17일 오전 7시 제주시 탑동의 한 식당에 국가정보원과 경찰, 해군 관계자들이 줄줄이 들어섰다. 현장에는 제주도 고위직 간부들도 함께했다.

대화 주제는 제주해군기지 건설 반대활동에 엄격히 대응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걸림돌은 제거하고 가야한다는 사실상 공권력을 동원한 강제진압 대책이었다.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29일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사건에 대한 심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국정원 등 국가기관의 부당행위에 대한 진상규명을 정부에 촉구했다.

대책회의 당시 식당에는 국정원 제주지부 정보차장과 제주지방경찰청 정보과장, 해군제주기지사업단장이 함께했다. 유덕상 제주도 환경부지사와 김형수 서귀포시장도 동석했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 9월11일 한승수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가정책조정회의에서 제주해군기지에 대한 방향과 명칭, 장소 등을 확정했다.

이 시기를 전후해 국정원과 경찰, 해군, 제주도의 해군기지 담당자들 매주 한차례씩 정례회의를 열었다. 식당 모임은 정례회의 확대 회의 성격이 짙었다.

제주해군기지와 관련한 국정원 등 유관기관 회의록 파문이 불거지자 2009년 1월21일 유덕상 당시 제주도 환경부지사가 제주도청 기자실을 찾아 입장을 발표하는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제주해군기지와 관련한 국정원 등 유관기관 회의록 파문이 불거지자 2009년 1월21일 유덕상 당시 제주도 환경부지사가 제주도청 기자실을 찾아 입장을 발표하는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국정원 관계자는 이 자리에서 “제주지검 관계자에게 불법행위 떼쓰기에 대해 엄격한 법 집행을 요구하겠다. 외부 개입 세력에 대해서는 국정원과 경찰이 측면에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제주도에서 (해군기지 반대측을) 고소고발 해줘야 경찰도 조처가 가능하다. 인신구속 등이 있어야 반대수위가 낮아진다”며 국정원의 장단을 맞췄다.

해군 통제실장은 “찬성 측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예산 집행을 서둘러야 한다”며 제주도를 압박했다. 제주도는 환경영향평가 처리에 도의회가 장애가 될 것이라며 분위기에 동조했다.

국정원과 국군기무사령부는 경찰을 압박해 해군기지 반대 활동을 적극 제압하도록 했다. 국정원이 제주경찰을 청와대에 보고한다는 이야기가 알려져 대응은 강경기조로 흘렀다.

'모 서귀포경찰서장의 성격이 온화해 집회 시위에서 강하게 밀어 붙이지 못한다'는 보고서가 작성되자, 경찰청 본청과 제주지방경찰청을 거쳐 서귀포경찰서로 압박이 이어졌다.

2011년 8월5월 보수단체가 제주해군기지 공사 현장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당시 경찰은 찬반측 충돌을 우려해 기자회견을 장소를 도청으로 변경할 것을 주문했지만 국정원이 크게 항의해 예정대로 집회가 이뤄졌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2011년 8월5월 보수단체가 제주해군기지 공사장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당시 경찰은 찬반측 충돌을 우려해 기자회견을 장소를 도청으로 변경할 것을 주문했지만 국정원이 크게 항의해 예정대로 집회가 이뤄졌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경찰이 해군기지 찬반 단체의 충돌이 우려되자, 찬성측 집회 장소를 강정마을이 아닌 제주도청으로 옮기는 방안을 제시했지만 국정원이 크게 반발했다는 증언도 있었다.

여론 조작도 빠지지 않았다. 경찰은  2011년 11월17일 당시 조현오 경찰청장의 지시에 따라 제주해군기지 관련 집단 반발에 대해 인터넷과 SNS의 대응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3년 3월20일에는 ‘강정마을 상황 관련 온라인 소통계 동원명령서’ 등을 통해 제주지방경찰청 홍보라인을 통해 온라인 대응도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사이버사령부는 2012년 3월10일 ‘사이버사령부 관련 BH 협조 회의 결과’ 보고서를 통해 제주해군기지 등 주요 이슈에 대해 심리전 대응 전략을 짜기도 했다.

진상조사위는 해군기지 유치와 건설 과정에서 경찰 이외에 국정원과 기무사, 해군, 해경 등 국가기관의 부당 개입에 대한 진상규명을 정부에 요구했다.

향후 군사기지와 공항 항만 등 공공사업 추진시 갈등을 조정하고 중재하는 법적·제도적 장치 마련도 함께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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