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시선] 격세지감-만시지탄 교차...갈등해결 이제 시작

“제주해군기지 건설지역을 강정마을 해안으로 결정하는 과정에서 주민 의견이 배제되고 절차 위반이 있었다.”

“해군기지 반대 측 주민과 활동가에 대한 인권침해가 있었다.”

“극심한 찬반 양론으로 인하여 유구하게 지켜왔던 강정마을 공동체는 회복할 수 없는 지경으로 양분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진상조사위)가 ‘제주 강정 해군기지 건설 사건 심사결과’보고서를 토대로 내린 결정은 격세지감(隔世之感)과 만시지탄(晩時之歎)을 동시에 들게 한다.  

세상이 바뀌긴 바뀌었나 보다. 이른바 권력기관이 총 동원돼 지방정부와 함께 막가파식으로 밀어부쳤던 제주해군기지 추진 과정의 민낯이 ‘조금이나마’ 드러났으니 말이다. 

진상조사위가 출범한 것은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8월이다. 하기야 적폐 청산이 문재인 정부의 핵심 과제이고 보면 대표적인 인권침해 사례로 지목돼온 제주해군기지를 건너뛴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었다.   

보고서에서 진상조사위도 고백했듯이 이번 조사는 적지않은 한계를 노출했다. 우선 조사 대상이 ‘경찰권 행사에 있어서 인권침해가 있었는지’ 여부에 국한됐다. 위원회 운영 규칙 때문이었다. 

다음은 보고서 내용이다. 

제주도는 주요 퇴직자에 대한 정보가 없다고 회신했다. 해군 관계자는 소재 파악에 실패했다. 국정원과 기무사는 조사 권한 조차 없었다. 협조 요청 공문을 보냈으나 두 기관은 응하지 않았다. 

제주해군기지 유치 결정 과정에서 경찰의 정보활동에 대한 조사도 충분히 진행되지 못했다. 퇴직 경찰관의 경우에도 개인정보 보호, 정보 제공 부동의 등으로 소재 파악에 애를 먹었다.

주민 등 진정인 측과 경찰 등이 서로 상반된 주장을 펼치는 사안은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가 없을 경우 인권침해 사례로 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보고서에 나온 인권침해 사례는 ‘새발의 피’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진상조사위는 ‘경찰권의 행사 뿐만 아니라 제주도내 행정기관, 해군, 해경, 국정원 등 여러 기관에 의해서도 인권침해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고서에 적시했다. 

눈에 띄는 대목도 적지않다. 

육지부 경찰의 제주 파견 규모가 정확히 드러났다. 2011년 8월부터 2012년 9월까지 총 1만9688명이나 동원됐다. 반대 투쟁이 격렬했던 시기였다. 강정의 상징이었던 구럼비가 발파로 부서진 건 2012년 3월7일이었다. 응원경찰의 대규모 투입은 4.3당시 소름끼치는 진압작전을 연상케했다. 

자치단체 수장이 맞나 싶을 만큼 해군과 보조를 맞춘 김태환 지사를 비롯해 제주도가 해군기지 후보지 선정을 얼마나 일방적이고 무리하게 추진했는지 알 수 있는 근거도 확인됐다. 

찬성 주민들이 2007년 4월26일 ‘그들만의 박수 총회’로 해군기지 유치를 결정한 후 제주도가 강정마을을 최종 후보지로 선정하고 국방부가 후보지를 확정하자 강정 민심은 들끓기 시작했다. 

그해 6월19일 마을 임시총회에서 해군기지 찬반을 다시 묻기위해 주민투표를 실시하려 했을 때 그 유명한 ‘투표함 탈취 사건’이 벌어진다. 

2007년 6월19일 서귀포시 강정마을 의례회관에서 제주해군기지 유치를 주도한 당시 윤모 마을회장에 대한 탄핵 건 등으로 마을총회 투표가 진행되자 해군과 접촉한 찬성측 어촌계 해녀들이 투표함을 탈취해 도주하는 모습.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총회장은 고성, 욕설, 몸싸움 등으로 아수라장이 됐으나 경찰은 팔짱을 끼고있었다. 특히 서귀포시청 직원들은 찬성측이 투표함을 탈취한 직후 자기들끼리 “성공했다”며 자축하기도 했다. 투표함 탈취를 통한 총회 무산이 준비된 각본이었으며, 서귀포시 또한 적어도 이러한 정보를 사전에 공유하고 있었음을 짐작케한다.  

8월10일 다시 열린 임시총회에서 압도적 표차로 유치 반대가 결정됐으나, 해군은 당일 총회 불참 종용 전화도 모자라 노인 100여명에게 밤늦게까지 제주도 일주 관광을 시킨 사실도 진상조사위는 확인했다. 총회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붙잡아두기 위해서였다. 

‘반대인사 구속’ ‘외부인사 차단’ 등을 논의한 2008년 9월17일의 유관기관 대책회의는 익히 알려진 사건이다.

이번에 새롭게 조명된 내용도 있다. 해군, 경찰, 국정원 등이 다 모인 자리에서 ‘주민 분열 유도’ ‘공세적 법집행 필요’ ‘걸림돌 제거’ 등의 발언이 제주도청 고위 간부의 입에서 나왔다고 한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경찰에 의한 인권침해 사례는 보고서에 나온 것만 해도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다. 폭행, 위협, 욕설, 무리한 연행, 종교행사 방해 등이 횡행했다. 지금 생각해도 쓴웃음이 나오는 장면 하나. 서귀포경찰서 정보관은 채증을 한다며 시위자의 모습을 휴대폰으로 찍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보수단체의 해군기지 건설 촉구 집회에 해군이 장비와 식수를 제공하고, 현역 장교는 반대 측을 비난하는 현수막을 직접 설치했다는 대목에 이르면 박근혜 정부의 이른바 화이트리스트, 블랙리스트를 떠올리게 된다. 

강정 해안에서 항의 시위를 벌이던 카약을 해경 보트가 고의적 충돌로 전복시킨 후 바다에 빠진 사람을 구하기는 커녕 카약 압수에 급급했던 모습에선 부아가 치밀어오른다. 그들에게 국민은 어떤 존재인지 의아할 따름이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해군제주기지사업단 정문 앞에서 경찰과 해군기지반대 단체들의 몸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경찰 뿐 아니라 국군사이버사령부, 심지어 청와대까지 제주해군기지 관련 사이버대응에 조직적으로 개입한 사실이 문서를 통해 확인된 점도 이번 조사의 성과라면 성과다. 

어두웠던 과거를 소환하게 하는 또 하나의 통계가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진정사건 처리 현황이다.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인권위에 접수된 진정은 24건이었으나 구제조치 권고 결정이 내려진 것은 3건에 불과했다. 진정이 종결될 때까지 걸린 기간은 평균 268일, 가장 오래된 경우는 805일이나 됐다. 보수정부에선 국가인권위원회마저 정부와 한몸처럼 움직였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세상이 바뀌었다고 모든게 따라 변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진상조사위는 국제관함식을 앞둔 지난해에도 해군의 집회 방해와 경찰의 방관이 있었다고 판단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강정 주민들에게 ‘깊은 유감’을 표명하는 순간에도 ‘신고된 집회’마저 제대로 열리지 못했다. 

권력기관은 대통령의 의지와 무관하게 작동하는 그들만의 매커니즘이 있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조사가 진작에 이뤄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만시지탄이다. 그랬다면 상처가 이렇게까지 도지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물론 5년전에도 시도는 있었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원희룡 지사는 후보 시절부터 해군기지 추진 과정에서 발생한 각종 사건에 대해 진상을 조사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군(軍) 관사 건립 문제로 상황이 꼬이더니 끝내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진상조사위가 밝혔듯이 강정의 가장 큰 아픔은 마을공동체의 파괴다. 

피붙이 보다 살갑던 이웃사촌끼리 눈길 조차 주지 않고, 심지어 친지, 가족 간에도 명절이나 제사를 따로 지내는 모습은 해군기지가 남긴 가장 큰 상흔이다. 트라우마는 그만큼 크고도 깊었다. 

이는 갈등 해결이 이제 시작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충분치 않아 보이지만 진상조사위가 해법의 일단을 제시했다. 정부와 제주도의 사과, 여러 국가기관의 부당한 행위에 대한 진상규명, 다각적인 치유책 마련 등이다. 

올해 3.1절 특사 때 명단에 든 강정주민과 활동가는 19명 뿐이었다. 그동안 체포·연행된 사람은 697명에 달한다. 이래서는 치유가 어렵다. 도로를 내고 건물을 지어주는게 능사가 아니다. 지금도 강정에는 냉기가 흐르고 있다. <논설주간/상임이사>

* 소리시선(視線) /  ‘소리시선’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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