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으로 태어난 '경계의 언어'..."세계문학 반열 충분"
제주4.3으로 태어난 '경계의 언어'..."세계문학 반열 충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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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회 제주포럼] 4.3연구소 세션, 재일제주인 김시종 시인으로 '디아스포라' 조명
ⓒ제주의소리
31일 열린 제주4.3연구소의 제주포럼 세션 현장 모습. ⓒ제주의소리

제주인으로 평생을 일본에서 머물면서 일본어로서 제주와 한국을 이야기 해온 김시종 시인. 굴곡진 ‘경계인’으로 살아온 시인의 삶과 작품을 통해 ‘디아스포라(Diaspora)’를 이해하는 시간이 제주포럼에서 열렸다.

제주4.3연구소는 31일 제14회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 세션 ‘4.3과 경계-재일의 선상에서’를 진행했다.

김시종 시인 초청 강연 ‘경계는 내부와 외부의 대명사’를 시작으로 호소미 카즈유키 일본 교토대학교 교수의 주제 발표(일본으로부터 경계를 묻다-김시종 선생의 표현을 축으로)가 이어졌다. 토론은 허영선 4.3연구소장의 진행으로 정근식 서울대학교 교수와 이창익 제주대학교 교수가 맡았다.

1929년 부산에서 태어난 김 시인은 어린 시절을 제주에서 보내며 4.3에 직접 연루됐다. 스무살 때인 1949년 살아남기 위해 제주에서 일본으로 밀항했다. 오래도록 남‧북한 어느 국적도 선택하지 않은 채 ‘조선적’ 재일조선인으로 살았다. 그는 1998년 50여 년만에 고향을 찾았고, 2003년 제주에 있는 부모님의 묘소를 찾기 위해 한국적을 취득했다. 

4.3과 한국전쟁, 민청학련 사건(1974), 5.18광주항쟁(1980), 한국의 민주화운동에 이르는 한국사회의 변화를 지켜보며 시를 써왔다. 최근에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관련해 펜을 들었다.

2015년 자신이 쓴 회상기 《조선과 일본에서 살다-제주도에서 이카이노로》(이와나미신서)는 일본 아사히신문사가 주는 제42회 오사라기지로상을 받았다. 1986년에는 에세이집 《자이니치(在日)의 틈새에서》은 마이니치출판문화상, 2011년엔 시집 《잃어버린 계절》로 다카미준상을 받는 등 일본어로 쓰여졌지만 일본문학과는 또 다른 그의 문학성은 현지에서도 인정받았다. 기타 저서로는 시집 《지평선》, 《니이가타》, 《광주시편》 등이 있다. 

기조강연에서 김시종 시인은 "새삼스레 말할 말도 아니지만 언어는 그 사람의 의식이기도 하다. 사물을 생각하고 판단해 재종합할 수 있는 것도 언어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제 의식의 밑바탕에는 인연이 얽혀 있는 특정한 언어인 일본어가 깔려 있다. 분명 저는 일제의 굴레에서 70여 년 전에 해방돼 있기는 하다. 이것은 명백한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자기 의식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는 일본어까지 결별한 것은 아니"라고 자평했다.

또 "오히려 그 일본어를 쓰는 일을 생업으로 삼고 그 일본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렇기에 일본어는 검증돼야만 하는 제 존재증명의 눈금이 되기도 한다"고 자신의 위치를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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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조 강연 중인 김시종 시인. ⓒ제주의소리

김 시인은 “저의 재일 생활은 유려하고 교묘한 일본어에 등을 돌리는 것에서 시작됐다. 정담 과다한 일본어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저를 키워낸 일본어에 대한 나의 보복으로 삼아 문필생활을 하고 있다. 매끄럽지 못한 일본어로 시를 써 왔으니 특히 사적 심정이나 사념의 표출에 중점을 두는 일본의 현대시와는 동떨어진 것이 저의 시”라고 스스로를 돌아봤다.

더불어 “말하자면 70년 동안 저는 일본 시단 밖에서 시와 관여해서 살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예술의 원천이라 불리는 시의 세계에서조차 재일조선인인 저는 분명 일본 시의 경계 밖에 놓인 조선인 시인이었다”고 경계인으로서의 삶을 압축해서 설명했다.

발표자로 나선 호소미 카즈유키 교수는 이런 김시종의 시 세계에 대해 “김시종 선생의 문학은 일본어로 이뤄졌다고는 하나 ‘일본문학’이라는 범주를 넘어선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문학으로 분류할 수도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러한 ‘국민문학’으로서 모습을 적극적으로 ‘탈구축’ 하는 것이 김시종의 문학”이라고 고유한 특징에 주목했다.

특히 “김시종 선생은 항상 작품을 8월 15일과 4월 3일이라는 고유의 시점부터 쓰고 계시다는 것을 확인해야 한다”며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세계문학에 있어서 고유한 날짜는 무척 중요하다. 왜냐면 그 날짜에 새겨진 기억이 결코 국민의 역사로는 회수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김시종 문학의 예술성과 세계문학의 공통점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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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발표 중인 호조미 카즈유키 교수. ⓒ제주의소리

나아가 “이러한 점에서 김시종 선생의 표현은 저에게 분명히 세계문학이다. 이번 이벤트의 테마인 ‘경계’라는 문제에 비춰보면, 본디 경계를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모습이며, 문학은 그 경계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개인적인 생각이다. 국민문학은 그 경계를 무리하게 막은 곳에 성립하는 것”이라며 “즉 경계에서 만들어진 김시종 같은 분들의 표현이야말로 본래의 문학이며, 같은 경계 영역에서 탄생한 프랑스어 문학이나 영어문학과 맞닿아 있다는 생각을 담아, 저는 선생의 표현을 세계문학으로 부르고 싶다”고 찬사를 보냈다.

4.3에 대해 표현하는 것이 어느 때 보다 자유로워진 오늘 날, 그럼에도 김시종 시인은 이날 강연에서 ‘4.3’이란 단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자신에 대해 이야기 했다. 1948년 남로당원으로 활동했고 일본에 불법 밀입국한 본인의 과거가, 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에 영향을 줄까 한동안 4.3에 대해 침묵해온 태도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토론 순서에서 정근식 교수는 “김시종 선생은 2016년 펴낸 《조선과 일본에 살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자신의 능동적 ‘침묵’에 대해 썼다”며 “4.3에 대한 김시종의 고백을 들으면서 4.3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거나 수동적으로 휩쓸려 희생된 3만명 또는 그가 느낌으로 가진 5만명의 사라진 목소리들을 떠올렸다. 험한 세월을 살면서 한마디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 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냐”고 강조했다.

다른 토론자 이창익 교수는 “김시종 선생은 1950년대 중반 조총련으로부터 일본어로 글을 쓴다는 비판을 받았다. 일본문학에 아첨하고 주체성을 상실한 자라고 낙인이 찍히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일본어적 풍토를 이해해 뿌리내리면서 일본어에 아부하지 않고 오히려 일본어를 뛰어넘는 새로운 단어를 생산해냈다. ‘생리언어’와 같은 경이로운 용어도 탄생시켰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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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정근식 교수, 허영선 소장, 호조미 카즈유키 교수, 이창익 교수. ⓒ제주의소리

이 교수는 “언어로 경계를 뛰어넘는 일은 일반인이나 언어학자인 저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선생은 그것을 실천해왔다. 새로운 일본어의 창작과 발견은 일본어에 대한 복수가 아닌 4.3정신과 같은 화해와 평화라고 생각한다”며 “이는 잃어버린 기억을 복원시키는 생생한 창작인 동시에 그의 감각, 감수성, 예리함이 동원돼 경계를 허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것이 김시종의 일본어이자 문화이며 경계를 허무는 도구”라고 규정했다.

해질녘
시간이
지나
추가 끊어진
익사체가
몸통이
묶인 채
떼를 지어
해변에
밀려 올라왔다
남쪽 끝의
투명할 정도의
햇빛
속에서
여름은
속절없이
죽은 사람의
얼굴을 
못 알아보게
망가뜨린다
삼삼오오
유족이
모여들고
주저 앉는다
몸뚱이를 
무언중에
확인한다
물이 차고
물이 나고
모래가 아닌
해변의
자갈이
밤새 
웅웅거리며
운다.

- 김시종 장편 시집 《니이가타》 Ⅱ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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