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웅의 借古述今] 121. 구멍 당장

* 고망 : 구멍(穴)
* 당장 : 옛 시절 서원(書院)에 딸려 있던 사내종, 堂長

‘당장’의 본뜻은 서원에서 잔심부름을 하는 종(하인)인데, 여기서 말하는 ‘고망 당장’은 집 안에만 틀어박혀 사는 사람을 일컫는다. 집 안에만 박혀 사니, 바깥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까 우물은 좁은 공간 곧 운신 폭이 좁은 활동반경을 빗댄 말이다. ‘고망 당장’이란 우물 안 개구리같이 지극한 한정된 생활공간에서 살아가는 속 좁고 실속 없는 사람을 가리킨다. 말 그대로 당장 노릇밖에 못하게 되면 옹졸한 사람임을 면치 못한다 함이다. 한 생을 그렇게 산다면 참 부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호모 폴리티쿠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우물 안 개구리’는 집밖에 모르는 사람, 한마디로 칠칠치 못한 사람이라 할 수밖에 없다.

몇 년 전부터 우물 안 개구리와 같은 사람을 비유하는 말이 쓰인다. ‘방콕.’ 아재 개그처럼 처음엔 머리가 돌아가지 않아 긴가민가했다. 태국의 수도 방콕이라 생각해서. 할 일 없이 방에만 눌어붙어 산다고 ‘방에 콕 박혀 있다’고 ‘방콕’이라 한 것이다. 세상엔 새 말을 만드는 데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있다. ‘방에 콕 방콕’이라 한 것이니, 얼마나 재치 있는가.

‘우물 안 개구리’는 원래 <장자> ‘추수편’에 나온 말이다.

우물 안 개구리가 동해에 사는 자라한테 이런 얘기를 했다 한다.

“나는 참으로 즐겁다. 우물 시렁 위에 뛰어오르기도 하고, 우물 안에 들어가 부서진 벽돌 가장자리에서 쉬기도 한다. 또 물에 들면 겨드랑이와 턱으로 물에 떠 있기도 하고, 발로 진흙을 차면 발등까지 흙에 묻힌다. 저 장구벌레나 게나 올챙이 따위야 어찌 내 팔자에 겨누기나 할까? 또 다른 웅덩이의 물을 온통 차지해 마음대로 노리는 즐거움이 지극하거늘, 동해에 사는 자라야, 자네는 왜 지금까지 내게 와서 보지 않느냐?”

수도 시설이 안돼 음용수가 귀하던 시절, 물을 얻기 위해 땅을 깊이 파 지하수가 고이게 한 곳이 우물이다. 깊은 우물 안에서 태어나 자란 개구리는 당연히 우물 안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을 게 아닌가. 좁은 우물 안에서만 살았으니, 넓은 세상이 있는 걸 알 턱이 없다. 그러니 세상에는 우물 안에서 본 돌과 이끼, 우물물밖에 없고 하늘은 우물 구멍으로 들어오는 것처럼 동그랗고 작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우물 안에 갇히면, 우물의 반경 안으로 들어오는 하늘밖에 보이지 않는다. 식견이 얕고 좁을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출처=고병련. ⓒ제주의소리
우물 안에 갇히면, 우물의 반경 안으로 들어오는 하늘밖에 보이지 않는다. 식견이 얕고 좁을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출처=고병련. ⓒ제주의소리

세상에는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바깥세상의 형편도 제대로 모르면서 자기가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이처럼 경험이 적어서 보고 들은 게 별로 없거나, 저만 잘난 줄 알고 주변에 관심을 두지 않는 사람을 두고 ‘우물 안 개구리’라 빗댄다.

그러니까 넓은 세상을 알지 못하면서 저만 잘난 줄 아는 사람을 비꼬는 말이다.

모든 인간에게는 자신이 경험하고 배운 것에 명백한 한계가 있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경험과 지식에 대한 집착이 생기기 쉬우므로 스스로 주의해야 한다고 경계하는 금언이다.

그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신이 속한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생각하는 안목을 지녀야 함은 물론,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이 전부라는 고정관념을 버리고 타인의 가치관과 경험 등을 이해하는 상대주의적 관점을 취해야 한다.

우리 스스로가 지구라는 큰 우물에 있다는 지각도 도움이 될 것이다.

이 말과 반대개념이라 할 수 있는 것이 바다 속의 ‘연어’다. 연어는 개구리완 달리 광활한 바다에서 활동한다. 넓은 바다를 헤치고 다니다 알을 낳기 위해 저가 태어난 모천(母川)까지 오르내린다. 연어가 사람이라면 사물의 이치와 세상 돌아가는 물정이 한눈에 들어올 것이다.

유사한 성어가 ‘정저지와(井底之蛙)’다. ‘좌정관천(坐井觀天)’도 있다. 우물 안에 앉아 하늘을 바라본다는 말이다. 우물 안에 갇히면, 우물의 반경 안으로 들어오는 하늘밖에 보이지 않는다. 식견이 얕고 좁을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어르신들이 하던 말이 귓전으로 내린다.

“얘야, 무사 집이만 박아졈시니게. 고망 당장 허지 마랑 배끼띠 나강 보름도 쐬곡 허라게.
(얘야, 어찌 집에만 박아져 있느냐. 고망 당장 노릇만 하지 말고 밖에 나가 바람도 쐬고 해라.)”

비록 섬에 살아도 우리 선인들에게 앞을 내다보는 인생에 대한 긴 안목이 있었다. 생활의 지혜, 선견지명(先見之明)이다.

'고망 당장'은 한마디로 옹졸한 사람이다. 세상이 달라졌다. 뜻 있는 자에게 세상이 일망무제로이 열려 있다. 하지 않아서 그렇지 몸을 세워 하고자 하면 할 일도 많은 세상이다.

‘난 개가 꽝 물어 든다’ 고 했다.

산야를 누비고 돌아다니는 개라야 사냥을 할 수 있는 법이다.

방에만 콕 박혀 있으면, 집 밖 돌아가는 사정을 알 수 없는 법.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 두드려야 열린다. /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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