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헌트 등 노벨·호암상 과학 석학, 제주서 열띤 강연

 "화성에서도 세포 분열이 일어나나요?"
"세포 분열 실험에 바다생물을 이용하는 이유가 있나요?"
"로봇이 인간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미래는 어느 정도 시기에 올까요?"

제주 과학 꿈나무들의 재기발랄한 질문에 노벨상·호암상을 수상한 세계적 과학 석학들도 연신 감탄사를 터뜨렸다.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이 주최·주관하고 호암재단이 후원하는 '제주청소년을 위한 노벨상·호암상 수상자 특별강연회'가 1일 오전 9시 30분 제주학생문화원 대극장에서 열렸다.

1일 제주학생문화원 대강당에서 열린 '노벨상·호암상 수상자 특별강연회'. ⓒ제주의소리
1일 제주학생문화원 대강당에서 열린 '노벨상·호암상 수상자 특별강연회'. ⓒ제주의소리

제주지역 중학생 150여명, 고등학생 450여명 등 총 500여명이 참석한 이날 강연회는 제주지역 청소년에게 노벨상 및 호암상을 수상한 석학의 과학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진로에 대한 설계 및 재탐색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됐다.

과학에 관심이 많거나 이공계 또는 생리의학 계열로 진로·진학을 희망한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사전 홍보가 이뤄지기도 했다.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인 영국 생화학자 팀 헌트(Tim Hunt, 75) 박사는 '세포 분열의 비밀을 풀다(Stumbling On The Secret of Cell Division)'라는 주제로, 2016년 호암공학상 수상자인 로봇공학자 오준호(65) 박사는 '로봇 기술과 미래(Robot Technology and The Future)'라는 주제로 강연에 나섰다.

강연자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이뤄낸 과학적 성과와 미래 전망 등을 전했다.

1일 제주학생문화원 대강당에서 열린 '노벨상·호암상 수상자 특별강연회'.
1일 제주학생문화원 대강당에서 열린 '노벨상·호암상 수상자 특별강연회'.
로봇공학자 오준호 박사. ⓒ제주의소리
로봇공학자 오준호 박사. ⓒ제주의소리

세계적으로도 내로라하는 로봇 공학 전문가인 오준호 박사는 우리의 삶의 영역에 자리 잡은 로봇공학을 흥미롭게 풀어냈다.

2002년 이족형 보행로봇 KHR-1 개발을 시작으로 2003년 KHR-2를 발표했고, 2004년에는 당시 기술적으로 가장 앞선다는 평가를 받던 일본 혼다의 아시모와 어깨를 겨룰 수 있는 성능을 지닌 한국 최초의 인간형 로봇인 휴보(Hubo)를 독자적인 기술로 개발했다.

2005년에는 다양한 얼굴 표정과 더욱 복잡한 몸동작이 가능한 알버트 휴보를 개발했으며, 2008년에는 세계에서 제일 가볍고 신속한 동작이 가능하다는 평을 얻은 휴보II 개발에 성공했다. 이렇게 개발된 휴보는 미국 DARPA(방위고등연구계획국)이 주최한 세계 로봇경연대회에서 미국, 일본팀을 물리치고 우승하는 쾌거를 이뤘다.

오 박사는 "로봇을 만들 때는 자율성(autonomy)과 기동성(mobility) 등 2가지를 고려하게 된다. 모빌리티가 센 로봇은 자율성을 낮추고, 자율성이 높은 로봇은 모빌리티를 억제한다. 자율성을 어디까지 허용하고, 기동성을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지가 가장 중요한 과제"라고 했다. 

오 박사는 "스마트폰 카메라의 자동 포커스 기능도, 서서히 연구가 이뤄지고 있는 자율주행 차량도 모두 로봇화가 된 사례"라며 "로봇의 영역과 사람이 잘하는 것은 구별돼 있다. 컴퓨터는 계산과 기억은 잘하지만 추상적으로 만들고 창조하는 것은 하지 못한다. 로봇은 인간의 삶을 돕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고 제언했다.

강의 직후 학생들로부터 질문을 받는 시간에는 전문적이면서도 상상력 넘치는 기발한 질문들이 쏟아졌다.

"미국의 로봇은 유압을 사용하는데, 한국의 로봇은 전기를 고집하는 이유가 있나", "사회적으로 가장 자연스럽게 로봇과 인간이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미래는 어느 시기가 될 것으로 보는가" 등의 질문이 나왔다. 오 박사 역시 짙은 미소를 지으며 학생들의 질문에 성심껏 답변했다.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팀 헌트 박사. ⓒ제주의소리
노벨생리·의학상 수상자 팀 헌트 박사. ⓒ제주의소리
학생들과 눈을 마주하며 질문을 받고 있는 팀 헌트 박사.  ⓒ제주의소리
학생들과 눈을 마주하며 질문을 받고 있는 팀 헌트 박사. ⓒ제주의소리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에 빛나는 헌트 박사의 강연은 카톨릭대 남석우 교수와의 협업으로 이뤄졌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생화학과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영국 왕립학술원, 미국 과학학술원 등에서 활동한 헌트 박사는 세포주기의 핵심 조절인자인 '사이클린(Cyclin)'을 발견함으로써 세포분열에 대한 이해를 분자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공로로 2001년 노벨상을 수상했다.

그는 성게알 실험모델을 활용해 세포의 분열 및 생성과정에서 주기적으로 생성되는 특정 단백질을 발견했으며, 이러한 특정 단백질을 '사이클린'으로 명명했다. 이 사이클린은 세포주기의 시작과 멈춤을 조절하는 스위치와 같은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이 같은 연구는 암의 발생 원인을 규명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세포분열은 세포성장기, DNA복제기, 분열준비기, 분열기의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주요 단계에서는 다음 단계로 넘어갈 준비가 됐는지를 확인하는 '확인점 dl'이 존재하고 이 확인점에서 사이클린 의존성 인산화 요소와 사이클린이 복합체를 형성하며 다음 단계로의 진입을 조절한다는 설명이다.

1일 제주학생문화원 대강당에서 열린 '노벨상·호암상 수상자 특별강연회'. ⓒ제주의소리

강의 직후에도 학생들로부터 "세포 분열이 끝나고 사이클린이 사라지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 "화성에서도 지구와 같은 세포 분열이 이뤄질 수 있는가", "조개와 성게 등 실험에 해양생물을 이용한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등의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다. 유창한 영어를 직접 구사하며 질문하는 학생들도 더러 있었다.

헌트 박사는 직접 학생들에게 다가가 눈을 맞추며 진솔한 답변을 전했다. 이후에도 많은 학생들이 손을 번쩍 들며 질문 기회를 요청했지만, 시간적인 문제로 간신히 진정될 정도로 열띤 분위기였다.

제주도교육청 관계자는 "제주 학생들에게 세계 석학의 강연을 통해 4차 산업사회의 변화하는 시대 흐름을 이해하고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진로 선택 확대의 계기가 부여됐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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