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귀포시, 이중섭미술관 세미나...17년 넘게 제자리 시설 개선, 대표작 매입 등 촉구

일 년에 30만명에 가까운 인원이 방문하는 제주 대표 관광 명소 이중섭미술관. 그러나 시설은 17년 전 그대로인데다 소장 작품도 부실해 ‘속 빈 강정’이라는 오명을 받고 있다. 때문에 개관 20년인 2020년을 계기로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귀포시는 지난달 30일 시청 문화강좌실에서 ‘이중섭미술관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번 세미나는 2022년 개관 20주년을 앞둔 이중섭미술관의 발전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열렸다. 

2002년 11월 문을 연 이중섭미술관은 현재 이중섭거리와 함께 시민과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서귀포 관광지다. 이중섭 소재 오페라 제작, 유족의 유품 기증 등 서귀포시가 이중섭과 각별한 인연을 가질 수 있는 배경도 거주지와 함께 이중섭미술관의 힘이 컸다. 개관 당시와 비교하면 미술관 1년 관람객 수는 열 배 이상 증가한 30만명이다.

하지만 시설 확충은 부끄럽게도 전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이중섭 원화는 은지화 등 45점을 확보했지만 작가의 대표작이라고 꼽을 만 한 작품은 아직도 없다. 종합적으로 미술관 발전이 한계점에 봉착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동시에 대책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한해 30만명이 찾는 이중섭미술관.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한해 30만명이 찾는 이중섭미술관.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세미나 참석자들은 한 목소리로 이중섭미술관이 처한 문제에 동감했다. 

주제 발표는 이지호 전 이응노미술관 관장과 김병철 예성건축사사무소 소장이 맡았다. 김병철 소장은 이중섭미술관을 설계한 인물이다. 토론은 김이순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교수가 좌장을 맡아 이경용 제주도의회 문화관광체육위원장과 변종필 양주시립 장욱진미술관 관장이 참여했다.

발제자로 나선 이지호 관장은 “이응노미술관은 작고 작가의 작품, 유품, 자료 같은 문화 유산을 체계적으로 과학적으로 관리·보존하는데 많은 공을 들인다. 매년 전문가 2명을 프랑스 이응노 아틀리에로 파견한다. 그곳에서 보관 중인 관련 자료를 조사한다”고 설명했다.

이 관장은 “현재 미술은 디지털 기술의 영향으로 종래의 시각 중심에서 오감을 자극하는 테크놀로지 문화로 전환하는 추세다. 가능성을 직접 보고, 듣고,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체험공간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이런 시각 문화의 변화는 이응노, 이중섭미술관 같은 작가미술관에 새로운 역할과 기능을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더불어 “이중섭미술관은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미술관으로 성장했지만, 그에 따른 시설 확충은 전무하다. 20세기에 머물고 있는 낡은 미술관 건물은 하루속히 개선해야 한다. 대표 작품 부재로 관람객의 만족도 역시 더 이상 높아지기 힘든 실정”이라면서 “더불어 모더니즘적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시스템도 벗어나야 한다. 대표적으로 미술관 전체 운영을 총괄하는 관장직이 아직도 없다는 불명예”라고 예술 당국에게 일침을 가했다.

서귀포시는 지난 5월 30일 이중섭미술관 발전 세미나를 개최했다. 제공=서귀포시. ⓒ제주의소리
서귀포시는 지난 5월 30일 이중섭미술관 발전 세미나를 개최했다. 제공=서귀포시. ⓒ제주의소리

김병철 소장은 “현재 이중섭미술관이 소장 중인 작품은 270점, 이중섭 원화 작품은 45점으로 합하면 300점이 넘는다. 그러나 전시 공간은 194.93㎡(58.96평), 수장고도 30.02㎡(9.08평)에 불과하다. 미술관 작품 수에 비교하면 전시 공간과 수장고가 매우 부족하다”고 우려했다.

김 소장은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과거보다 서귀포시가 미술관 인근 부지를 상당히 확보해 놓은 상태다. 전시 공간, 수장고, 편의 시설, 창작 공간 모두 한계치에 다다른 상황에서 미술관건물은 과거에 머물러 있다”고 건축물 개선을 촉구했다.

김 소장은 이중섭미술관의 리모델링, 증축 두 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리모델링의 경우 우선 내부 사무실, 판매공간, 상점 같은 공간을 분리해 전시 공간을 확보한다. 루프탑 카페나 옥상정원, 전망대 같은 휴게·소통공간도 마련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증축은 현재 미술관 건물은 상설전시관으로 바꾸고 아래쪽에 새로 건물을 지어 기획전시관, 판매·체험관과 광장을 조성한다. 위쪽에는 수장고, 사무실, 창작활동 공간을 마련해 관람객과 미술관 직원의 동선을 구분한다. 

김 소장은 증축의 장점으로 “지하 공간을 활용해 현재 정원의 훼손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토론에 참여한 변종필 관장은 “21세기 들어 미술관은 문화콘텐츠의 보고(寶庫)이자 창조적 예술문화공간으로 무한 가능성을 지닌 공간이라는 새로운 인식이 자리 잡았다”며 “이런 시대적 흐름에서 보면, 이중섭미술관이 새롭게 변모하려는 현 시점은 사회적 유용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미술관을 창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다.

변 관장은 “단순 시설 확충이 아닌 네트워크 사회로 급변하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제주도를 대표하고 나아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공립미술관으로서 ‘이중섭 미술관의 위상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를 염두해야 한다”고 이중섭미술관의 역할에 힘을 실었다.

서귀포시는 지난 5월 30일 이중섭미술관 발전 세미나를 개최했다. 제공=서귀포시. ⓒ제주의소리
이중섭미술관 발전 세미나 토론자들 모습. 제공=서귀포시. ⓒ제주의소리

이경용 위원장은 “지방자치단체장의 임기 시 공적(功績) 정도로 인식하는 건립 과정과 시간적으로 따르는 비전문적인 운영 현실은 매우 걱정스러운 수준”이라며 “그러다보니 마음만 앞서고 임기 내에 추진·완성하고 싶은 생각에 우선 건물 먼저 지어보겠다는 생각에서 서두르기가 일쑤”라고 우려했다.

이 위원장은 “예산 확보, 미술관 설계·건축 문제, 관장·학예연구사 등 전문가 확보, 소장품 정책, 교육 시스템 구축, 공공 서비스와 아트 상품 기획, 인력 수급과 운영 계획 등 그야말로 산적하리만치 쌓인 문제를 예상하고 미술관을 계획하거나 건립해야 한다”고 실무적인 고민에 주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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