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서 만난 문경수-고이삼-조동현 3인방 '취중진담'..."4.3외면하고 어찌 제주 사랑할 수 있나?"

일본 도쿄 거리에서 만난 고이삼 신간사 대표, 조동현 4.3을생각하는모임도쿄 대표, 문경수 리츠메이칸대학 명예교수(왼쪽부터). ⓒ제주의소리
일본 도쿄 거리에서 지난 5월21일 만난 고이삼 신간사 대표, 조동현 4.3을생각하는모임 도쿄 대표, 문경수 리츠메이칸대학 명예교수(왼쪽부터). ⓒ제주의소리

4.3은 제주 안에서만 머물고 있는 역사가 아니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수 많은 이들이 4.3의 아픈 기억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다. 이웃나라 일본에는 '4.3발언'이 금기시 되던 때부터 제주 밖에서 4.3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몸부림 친 이들의 역사가 서려있는 곳이다.

독립언론 [제주의소리]는 최근 일본 도쿄의 한 선술집에서 문경수 리츠메이칸대학교 명예교수, 고이삼 도서출판 신간사 대표, 조동현 4.3을생각하는모임 도쿄대표 등 일본4.3 운동의 산증인들을 만났다. 

이번 만남은 [제주의소리]와 '제주4.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가 도쿄에 거주하는 4.3생존수형인과의 인터뷰에 도움을 준 문경수 교수의 주선으로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30여년간 4.3운동에 몸담아 온 이들은 4.3을 둘러싼 시각과 평가에 대해 거침없고 가감없이 풀어냈다.

문경수 교수는 리츠메이칸 대학에서 오랜 기간 강단에 서며 4.3과 자이니치(재일 한국인), 한국현대사에 대한 여러 저술서를 집필한 대표적인 4.3운동가다. 일본에서도 가장 많은 제주인이 거주하는 오사카를 중심으로 활동을 펼쳐왔다. 현재 4.3을생각하는모임 오사카 대표를 맡고 있다.

고이삼 대표는 1988년부터 4.3을생각하는모임의 사무국장을 맡으며 일본에서의 4.3위령제 행사를 추진해 왔다. 재일소설가 김석범 선생의 <까마귀의 죽음>, 현기영 작가의 <순이삼촌> 등 일본 내 4.3관련 작품들은 모두 고 대표가 운영하는 신간사에서 출간됐다.

문 교수와 고 대표는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제주4.3평화재단이 처음으로 제정한 '4.3특별공로상' 국외활동 부문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조동현 대표는 일본에서 한때 '조선신보' 기자생활을 한데 이어 사업가로 성공, 1998년 4.3 50주년 위령제부터 본격적으로 4.3에 참여했다. 현재는 4.3을 생각하는 모임 도쿄 대표와 김석범 작가의 매니저로 활동하며 4.3운동에 매진하고 있다.

일본 도쿄 거리에서 만난 고이삼 신간사 대표, 조동현 4.3을생각하는모임 도쿄 대표, 문경수 리츠메이칸대학 명예교수(왼쪽부터). ⓒ제주의소리
일본 도쿄 선술집에서 만난 고이삼 신간사 대표, 조동현 4.3을생각하는모임 도쿄 대표, 문경수 리츠메이칸대학 명예교수(왼쪽부터). ⓒ제주의소리

일본에서의 4.3운동은 매해 성장세를 이어가며,  4.3행사에 많게는 1천여명에서 적게는 수 백명이 모이는 행사로 자리잡았다.

지난 4월 27일 도쿄에서 열린 4.3추도기념집회에도 600여명이 모여 4.3 원혼들을 추모했다. 2000엔의 유료 공연으로 진행됨에도 당초 정해진 인원보다 더 많은 이들이 모여들었다. 행사장 형편 상 내년부터는 인원을 제한해야 할 정도에 이르렀다.

지난해 열린 70주년 행사에는 1500여명이 참석하는 감격을 누리기도 했다.

"일본에서도 여러 방면의 시민운동이 전개되고 있지만 제주4.3은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운동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어요. 일본 내 시민운동이 죽어가고 있는 와중에도 4.3은 살아남았고, 오히려 다른 운동권에 있던 일본인들도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순조롭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1988년 당시 일본의 4.3운동은 길거리에서 무턱대고 전단지를 뿌리는 일부터 시작됐다. 100명도 모이기 힘들 정도로 반응은 차가웠다. 

남로당 등이 관여된 4.3은 사건 특성상 북한에 대한 증오가 깊을 수 밖에 없었다. 최초에는 조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계열의 방해가 많기도 했다. 반대로 민단(재일본대한민국민단)에서도 정치적 성향 상 4.3을 멀리 했다. 

4.3운동 초기, 아이러니 하게도 제주4.3은 좌·우의 극한 정치적 대립 상황으로 '자이니치' 사이에서도 힘을 얻기 힘든 분위기였다.  

4.3 당시 일본으로 건너간 제주도민은 1만여명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 가운데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섞여 있었다. 서로가 배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일본에서도 4.3을 언급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본 도쿄 선술집에서 만난 일본 4.3운동가 조동현 4.3을생각하는모임 도쿄 대표, 문경수 리츠메이칸대학 명예교수, 고이삼 신간사 대표(왼쪽부터). ⓒ제주의소리
일본 도쿄 선술집에서 만난 조동현 4.3을생각하는모임 도쿄 대표, 문경수 리츠메이칸대학 명예교수, 고이삼 신간사 대표(왼쪽부터). ⓒ제주의소리

오늘날의 성과는 꾸준한 설득과 소통의 결실이었다.

"민단 계통의 제주도민회가 이제 3세 시대입니다. '같이 하자'고 끊임없이 설득했죠. '4.3모임도, 제주도민회도 모두 제주도를 사랑하는 모임이지 않나, 4.3을 외면하면서 어떻게 제주를 사랑한다고 할 수 있겠나' 호소했더니 끝내 마음을 돌렸습니다. 이번에 제주도민회장이 처음으로 추도 집회에 참석했어요."

일본 언론의 관심도 이끌어냈다.

"일본의 유력 일간지 아사히신문은 60주년 당시 2페이지 특집으로 제주4.3을 다뤘습니다. 조선현대사를 연구하는 일본학자들도 이젠 4.3을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이제 일본 언론인들도 4.3에 대해 모른다고 할 수 없게 됐어요. 모르면 바보니까 아는척이라도 해야 할 상황이 됐습니다."

일본에서의 4.3운동은 이제 본 궤도에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렇다보니 제주, 그리고 한국에서의 4.3이 그 운동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다소 직설적인 표현도 마다치 않았다.

"올해 4.3에 대한 국방부와 경찰의 사과가 이뤄졌죠. 일본 아사히신문에도 실렸는데, 서울의 중앙 신문에는 관련 기사가 나오지 않더라고요."

"제주에서만 4.3을 이야기하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들어요. 4.3을 전국화, 국제화 하기 이전에 제주화를 먼저 하자는 것이에요. 과거에 비해 4.3에 대한 지원은 비교할 수 없을만큼 커졌어요. 비싼 돈 받으면서 할 수 있는 행사가 많은데, 제주에서 열린 전야제에는 젊은 사람들이 없더라고요. 4.3단체 등 보이던 사람들만 보이는데, 어떻게 국제화를 논할 것인지 아쉽습니다."

이들은 4.3을 다루는 행사에 접근함에 있어 더 치열한 고민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뼈 있는 제언을 건넸다.

"제주는 제주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일본에서도 일본의 역할이 있어요. 이 곳에서 어떻게 4.3을 더 알리고, 제주에서의 4.3운동을 더 도울 수 있겠는가 고민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입니다."

"내년은 또 오기 마련입니다. 4.3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해 추모하러 온 그 사람들을 배반할 수 없어요. 집회의 퀄리티를 더 높이고 참가자들의 만족도를 높여 나가야 해요. 4.3에 대해 제대로 알고싶다는 이들의 요구를 충족하기 위해 어떤 프로그램을 준비해야 할지 매일, 매시간마다 고민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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