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제주국제대학교 공연예술학과 연극 ‘리어왕’

5일 제주국제대학교 공연예술학과의 '리어왕' 공연 무대 인사 장면.ⓒ제주의소리
5일 제주국제대학교 공연예술학과의 '리어왕' 공연 무대 인사 장면.ⓒ제주의소리

4~5일 제주국제대학교(국제대) 공연예술학과 학생들이 공연한 연극 <리어왕>은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이다. <햄릿>, <오셀로>, <맥베스>와 함께 4대 비극이란 명성을 지닌다.

<리어왕>의 주인공은 리어왕. 옛 영국의 최고 지도자다. 늙은 왕의 슬하에는 세 딸 고너릴(오은정 배우), 리건(김영서), 그리고 막내 코딜리어(강수지)가 있다. 첫째, 둘째 딸은 물려받을 유산에만 신경 쓰면서 마음에도 없는 달콤한 말로 아버지의 환심을 산다. 막내 딸 거짓말 대신 진심이 중요하게 여기면서 말을 아낀다. 그러나 노쇠한 왕에게는 아첨과 아부가 듣기 좋은 법. 막내는 아무런 유산도 없이 쫓겨나듯 이국 프랑스 왕과 결혼하고, 첫째와 둘째는 나란히 왕국의 절반을 나눠 가진다. 한편, ‘서자(庶子)’라는 자격지심에 사로잡힌 글로스터(정진호) 백작의 아들 에드먼드(이동민)는 자신이 적자가 되기 위한 계략을 세운다.

<리어왕>은 처음부터 끝까지 팽팽한 긴장감과 수많은 갈등이 지속된다. 막내 딸과 아버지, 두 딸과 아버지, 사위와 장인, 두 형제 사이, 서자와 아버지, 적자와 아버지, 왕과 신하, 아내와 남편, 불륜과 삼각관계 등 크고 작은 갈등의 연속이다.

그런 갈등을 유발하는 원인은 욕심, 욕망이다. 물질에 대한 욕심, 권력에 대한 욕망,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갈구 같은 저마다의 감정이 충돌하면서 작품은 거대한 서사를 구축한다.

그 서사의 핵심이자 본질은 나약한 인간이라고 본다. 욕심에 사로잡혀 파멸로 향하는 나약함, 물리력 앞에 무너지는 선의의 나약함, 스러져 가는 권위와 버림 받는 상처에 무너지는 나약함까지. 결국 <리어왕>은 솔직한 인간 내면을 긴박한 줄거리 속 다양한 욕망 군상으로 통해 보여준다.

기자는 <리어왕> 원작을 읽어 본 적 없이 연극을 관람했지만, 이 같은 메시지를 큰 무리 없이 느낄 수 있었다. 그만큼 이야기의 진행, 배우의 발성·연기, 연출, 소품 등 공연 요소가 전반적으로 짜임새 있다는 반증이다.

특히 발성이 가장 인상 깊었다. 모든 배우가 힘이 실린 목소리로 연기하는데 꽤나 집중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배우들은 대부분 2~3학년으로 이제야 연기에 대해 기초를 쌓기 시작하는 단계인 만큼, 이런 점이 반영되지 않았는지 엉성하게 짐작해본다.

덕분에 한껏 힘 들어간 연기나 대사가 엉키는 실수도 종종 나왔다. 제한된 여건이다 보니, 한 배우가 색이 다른 가면 여러 개를 번갈아 착용하며 역할을 구분하는 정도였다. 어쩔 수 없이 더 집중해서 관람해야 하는 노력이 필요했다. 개인적으로 쇠락해 가는 리어왕이 겪는 인간적 고통, 고뇌를 조금 더 부각시켰으면 하는 바람도 들었다. 어쨌거나 열정 있게 배역에 몰입하는 집중력은 관객들에게 호소력을 남기기 충분했다. 공연 의상, 소품은 전반적으로 단출하지만 극 분위기에 어울리도록 신경 썼다는 느낌을 줬다. 

여러 감정 변화를 소화한 이주민(리어왕 역), 성준(에드거·콘월 역), 이동민(에드먼드·프랑스 왕 역)의 열연은 기억에 남는다. 안정된 연기의 김시혁(켄트 역), 허허실실 핵심을 찌르는 광대 역의 박유진, 각 배역에 맞는 감정을 잘 보여준 세 딸(오은정·김영서·강수지), 쉴 새 없이 가면을 바꾸며 여러 인물을 소화한 박혜영, 아쉬움이 많이 남을 정진호 역시 마찬가지.

국제대 공연예술학과 강사로 활동하는 오상운(예술공간 오이 공동대표)은 이번 작품 지도 교수로 참여했다. 간혹 관객에게 웃음을 선사한 유머 장면에서 오 지도 교수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리어왕> 작품을 보면서 왜 셰익스피어 작품이 고전으로 오랫동안 사랑받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다양한 인간 군상의 가면을 벗겨낸 작가의 시선뿐만 아니라, 다채로운 비유, 맺고 끊는 극의 진행 방식은 오늘 날에도 많은 것을 시사한다.

며칠 전 무대 위에 올린 현기영의 <순이삼촌>과 이번 <리어왕>까지, 고전에 주목한 국제대 공연예술학과의 시도가 무척 반갑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작품으로 더 많은 도민들과 만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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