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희의 노동세상] 6. 고 이민호군 포함 산업재해 유가족 네트워크 '다시는' 출범

다시는...

최근 어느 가족들 간의 모임이 발족됐다. 모임의 이름이 ‘다시는’이다. 2017년 구좌읍 ㈜제이크리에이션 음료 공장에서 현장실습 중 사망한 고 이민호 군의 부모님을 포함해 산업재해로 가족을 잃은 유가족과 피해자들의 네트워크다. 다시는 다른 이들이 산업재해로 인하여 소중한 가족을 잃는 아픔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으로 지어진 이름이다. 10년 전 삼성전자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황유미 님의 부모를 비롯해 2017년 전주 콜센터에서 직장 괴롭힘으로 사망한 고 홍수연 님의 아버님,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일하다 기계에 끼어 사망한 고 김용균 님의 부모까지 많은 가족들이 함께하고 있다. 

우리는 한 해에 2000명 이상이 일하다 죽는 나라에 살고 있다. 산재공화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일하다 많은 사람들이 다치거나 병들거나 죽어가고 있다. 하지만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한 노력은 부족해 보인다. 반복되는 사고가 이를 증명한다. 2017년 고 이민호 군의 사망이후 채 1년이 되지 않아 같은 사고로 삼다수 공장에서 30대 노동자가 사망했다. 노동부는 그제야 전국 62개의 생수공장을 집중점검 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해당 사고는 음료를 만들거나 플라스틱 용기에 액체를 담아 생산하는 모든 자동화 공정에 일어날 수 있는 것이었다. 언론은 앞 다투어 노동부의 집중점검이 있을 거라는 기사를 냈지만, 집중 점검의 결과가 어땠다는 기사는 찾기가 힘들다. 또 하나의 죽음이 잊혀져 가는 것 같아 아픈 대목이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이민호군은 2017년 11월 구좌읍 한동리 용암해수단지 내 음료공장에서 현장실습을 하다 제품 적재기의 상하작동설비에 목이 끼는 사고를 당해 세상을 떠났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산재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올해 1월 들어서야 고 이민호 군의 사망 사고가 발생한 기업의 사업주에 대한 1심 선고가 있었다. 3차례에 걸친 공판을 통해서 사고가 난 기계의 오류가 매우 잦았다는 사실과 그동안 회사에서 기계를 정비 하려는 시도조차 없었음이 밝혀졌다.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했던 회사에서는 총 594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항이 나왔다. 사업주가 그 많은 안전조치 중 어느 하나만 제대로 해놓았어도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현장관리자 없이 현장실습생에게 업무를 떠맡기고 안전을 소홀히 하다 급기야는 학생을 사망에 이르게 한 사업주에게 중형이 내려질 거라고 내심 기대했다. 하지만 이변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업주와 공장장에게는 집행유예가 떨어졌고 회사 법인에는 2000만원의 벌금이 부과되었을 뿐이다. 검사 측에서 즉각 항고했고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많은 이들이 죽음의 행렬을 막기 위해서는 솜방망이 처벌이 아닌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한다. 실제로 영국과 미국 등에서는 노동자의 사망사고가 발생할 경우 기업이 휘청거릴 정도의 벌금형에 처하는 제도가 운영되고 있다. 기업이 안전한 일터를 만드는 비용보다 노동자의 목숨 값을 지불하는 것이 훨씬 저렴한 대한민국의 구조에서는 노동자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 그러한 이유로 다시는 모임의 유가족들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조속한 도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만약 나의 일이었다면... 

유가족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TV에서만 보던 유가족이 내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것이다. 나의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뉴스에 사고 소식이 들려오면 "안타깝네"하고 더 이상의 관심을 갖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고 한다. 국민 모두가 관심을 가지면 노동자가 조금 더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으로 법과 제도가 바뀌었을 것이고, 우리 가족의 죽음으로까지 연결되지 않았을 거란 생각에서이다.

다시는 가족들은 노동자의 건강권을 규정하는 산업안전보건법 등 제도와 정책에 대한 의견을 지속적으로 피력한다. 다시는 이런 사고가 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토론회나 기자회견을 했다는 기사에는 ‘위로는 하지만,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마세요’는 식의 댓글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죽음의 원인이 사회구조에 기인한 상황에서 유가족은 정치적인 의견을 내야만 반복되는 죽음을 막을 수 있다. 고 이민호 군이 사망했을 때, 고 김용균 님이 사망했을 때도 여야를 막론하고 장례식장에 정치인들의 발길이 이어졌고 유족의 손을 잡고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다시는 노동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다시는’이란 단어에 깊은 여운이 남는다. 사고의 원인에 대한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통해서 다시는 같은 아픔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는…, 다시는…, 다시 곱씹어볼수록 많은 의미를 내포하는 단어이다. 

제주대학교에 다니며 스크린 골프장에서 알바를 했던 학생을 상담한 적이 있다. 사장은 CCTV를 설치해 일하는 것을 사사건건 감시했고, 임금체불 등 부당한 처우를 해왔고 학생은 노동부에 진정을 준비 중이었다.

“다시는 그 사장이 저 같은 피해자를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본인이 부당한 대우를 당했는데 그냥 넘어가게 되면 제2, 제3의 피해자가 나올 수 있기에 끝까지 문제제기를 해서 사장이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며 눈을 반짝인 학생의 얼굴이 떠오른다. 

산업재해 피해가족 네트워크 ‘다시는’의 활동이 본격화 되고 있다. 고 김용균 님의 죽음으로 개정된 산업안전보건법이 다양한 현장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도록 의견을 제출하고 목소리를 모아내고 있다. 현장실습생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제도의 문제점에 대해 당사자들과 만나는 지역별 유가족 간담회도 진행 중이다. 다시는 같은 아픔을 겪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유가족들의 마음이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었으면 한다. 

# 김경희는?

‘평화의 섬 제주’는 일하는 노동자가 평화로울 때 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노동자의 인권과 권리보장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공인노무사이며 민주노총제주본부 법규국장으로 도민 대상 노동 상담을 하며 법률교육 및 청소년노동인권교육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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