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적 인간] 25. 기생충(Parasite), 봉준호, 2019 

'영화적 인간'은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라고 말한 질 들뢰즈의 말처럼 결국 영화가 될(이미 영화가 된) 세상을 살아가는 인간들에 대한 글이다. 가급적 스포일러 없는 영화평을 쓰려고 하며, 영화를 통해 생각할 수 있는 삶의 이야기들이다. [편집자 주]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출처=네이버 영화.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 출처=네이버 영화.

대전에서 문학 공부를 할 때의 일이다. 고시원보다 더 저렴한 방이 있을 줄 몰랐다. 월세 8만원. 재개발구역의 집이었다. 동네 반은 이미 포클레인에 의해 헐렸다. 곧 아파트 단지 공사가 이루어질 예정지였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삶은 현재형이었다. 술 마시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사람, 골목길에서 줄넘기를 하며 노는 아이들, 중국집 배달 오토바이가 지나가고, 개똥 밟고 비명 지르는 아가씨도 있었다. 

그 집의 문제는 화장실이 없다는 점. 주인 할머니는 길 건너 대형마트를 이용하면 된다고 했다. 그 길은 경계였다. 나는 하루에도 여러 번 그 선을 넘었다. 심심하면 슬리퍼를 신은 채 대형마트를 배회했다. 그곳에는 예쁜 옷을 입은 마네킹이 있었다. 마네킹이 나를 노려보는 것 같아 짐짓 시선을 피하곤 했다. 

그곳에 머물 때 여수가 고향인 한 시인이 나를 찾아왔다. 그 역시 뒤늦게 서울로 올라가 문학을 공부하고 시집을 낸 처지였다. 그는 대학 시간강사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는 노총각이었고, 서울에서 옥탑방에 세 들어 살고 있었다. 그는 내가 사는 형편을 보며 안쓰러운 눈빛으로 내게 말했다. 

“왜 시는 가난한 곳에서 나와야 하는 거냐?”

그와 나는 집 근처 하천을 걸었다. 하천 물이 더러웠다. 

“서구 쪽 갑천 물은 깨끗하던데, 여긴 물도 더럽다이.”

그가 혀를 차며 말했다. 그래도 하천이라고 우리는 돌 위에 앉아 얘기했다. 문학, 고향, 꿈 등에 대한 얘기를 했던 것 같다. 한참을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그가 수첩을 꺼내 시를 쓰기 시작했다. 가난한 동네를 묘사하니 한 편의 시가 되었다. 

그 집에서 그해 겨울을 보냈다. 전기장판에 의지해 버텼다. 실내에서도 입에서 김이 날 정도로 추웠다. 결국 한증(寒症)이라는 병에 걸렸다. 몸을 덜덜덜 떨었다. 

다시 봄이 왔지만 그 동네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며 나는 생각했다.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야겠다고. 거울 속에 비친 내 얼굴을 보며. 주인 할머니에게 이사를 하겠다고 말하자 조금만 더 버티면 이사 비용도 나오는데 더 지내보라고 해서 나는 약간 망설였다. 

이사를 한다고 해서 아주 좋은 집으로 옮긴 건 아니었다. 도서관 근처 고시원이었다. 옆방에 스님이 살았다. 가끔 불경 외는 소리가 들렸다. 종교처럼 의지할 대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문학이 나를 햇빛 빛나는 곳으로 데려가줄 거라는 헛된 꿈을 꾸기 시작했다. 공동 부엌에서 라면을 끓이다 지용신인문학상을 받게 되었다는 전화를 받았다. 그렇게 문학에 기생하게 되었다. 

현택훈
시인. 시집 《지구 레코드》, 《남방큰돌고래》, 《난 아무 곳에도 가지 않아요》, 산문집 《기억에서 들리는 소리는 녹슬지 않는다》 발간. 영화 잡지 <키노>를 애독했으며, 영화 <스쿨 오브 락>의 잭 블랙처럼 뚱뚱하고, 영화 <해피 투게더>의 장국영처럼 이기적인 사랑을 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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