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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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웅의 借古述今] (122) 대접 커녕 짐 취급 받건 개, 어느새 반려 위치로

* ‘개’라고, 옛날 푸대접 받던 개만이 아니다. 사냥개, 안내견, 군견에 이어 의식이 흐름을 따라 애완견에서 요즘 반려견에 이른다. 사르트르와 개 얘기까지 미친다. 그러니 개도 개 나름이란 생각이 든다.
  
‘개값’이라 함은, 물건 값이 헐값임을 빗댈 때 하는 말이다.
  
집에서 기르는 닭이나 오리 같은 두 발 달린 건 가금이고, 말이나 소처럼 네 발 달린 건 가축이다. 가축 가운데서도 말과 소 그리고 돼지는 특히 생활에 유익하다. 마차를 끌거나 타고 다니는 교통수단이 됐던 말. 밭을 갈고 수확한 곡식을 실어 나르던 소 그리고 구정물에 겨를 타고 먹여도 잘만 커 줄 뿐 아니라, 한 번에 여남은 마리 새끼를 낳아 돈을 벌어 주던 돼지. 게다가 예전에 이놈을 집에서 키워 자녀 혼사에 고기를 유용하게 썼다. 돼지 두세 마리 잡아 동네방네 잔치를 벌이던 시절 얘기다.
  
한데 이 유용한 가축에서 유독 빠지는 게 ‘개’다. 개도 사농(사냥)에 쓰도록 훈련된 개가 아니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새끼를 많이 낳지만 귀찮게 짐만 됐다. 돈 주고 사가는 사람도 없고, 돈 받아 팔려는 사람도 없었다. 

“갠 공으로 가져가는 게 아니여.” 
(개는 공으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다.)

오죽 값을 쳐 주지 않았으면 그런 푸념을 했을까. 새끼개를 얻어가면서 고작 돈 몇 천원을 인사치레로 건네는 게 관습화됐다. 따라서 대접을 받기는커녕 잔뜩 짐만 되는 게 개였다. 더군다나 가난에 쪼들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에 사람 먹을 것도 없는데 없는 식량을 축내니 미움을 살 수밖에….

고작 ‘월월월’ 짖어 도둑을 막는다고 하지만, 도둑이 들려면 짖던 개도 안 짖는다 했지 않은가. 그쯤 되고 보면 개가 설 자리가 없다. 다른 가축처럼 길러 보았자 수익성이라곤 없으니 눈 밖에 나게 마련이었다. 오죽 했으면 어쩌다 물건을 잘못 팔았을 때, ‘개값 받았다’고 한다. 너무 싸게 헐값을 받았다는 푸념이다. 옛날 우리 농촌에서 기르기를 제일 꺼려하던 게 ‘개’임은 두 말할 것이 없다.

상전벽해라더니 세상 많이 변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 ‘개값’ 얘기했다 어느 세상 사람이냐고 웃어 버릴 것이다. 요즘 개값, 장난이 아니잖은가. 값의 고하를 떠나 신수가 얼마나 좋아졌는가 말이다. 그냥 개가 아닌, 애완견에서 한 단계 뛰어올라 ‘반려견’이다. 신분의 수직상승이란 말은 사람보다 개에게 딱 맞는 말일 것 같다.

신분이 ‘반려’다. 伴侶. 짝 반, 짝 려. 그러니까 ‘짝’ 곧 동무라는 뜻이다. 인생을 함께 하는 동무라 함이니, 반려견은 개가 아닌 인격이 아닌가.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반려견의 지위에 오르지 못할망정 요즘을 풍요로운 때라 마당에 놓아기르는 누렁이도 애지중지한다. ⓒ제주의소리 자료사진

서양에서는 개를 ‘견공’이라 한다. ‘공(公)’은 벼슬이다. 반려견에 견줄 바 아니라 작위(爵位)에까지 이르기도 한다. 실존주의 철학가이고 <말>에 주어진 노벨문학상 수상을 거부한 소설가 사르트르는 같은 작가 보봐르와 정식 혼인하지 않고 계약결혼 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사르트르는 많은 저술 활동으로 엄청난 고료수입을 올렸는데, 문제가 생겼다. 사후에 보봐르에게 유산을 상속할 수가 없었다는 게 아닌가. 사실혼일 뿐, 법적인 부부로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그의 유산은 그들이 기르던 견공에게 돌아갔다고 한다. 생뚱맞게도 프랑스에선 개에게도 유산 상속이 이뤄지는 모양이다. 아무리 개 아닌, 견공이라 하나 그 막대한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쓰랴.

비록 예로부터 ‘개값’이라 천대 받긴 했지만 왜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아이고, 개엥 너미 내무리지 말라게. 경해도 개 팔자 상팔자엔 헌다.” 
(아이고, 개라고 너무 나무라지 마라. 그래도 개 팔자가 상팔자라고 한다.)

  
하긴 개라고 다 개가 아니다. 들짐승을 포획하는 데 끌고 다니는 사냥개, 마약이나 지뢰·사체 수색 등에 쓰는 군‧경찰견, 맹인에게 길을 안내하는 안내견, 주인에게 충성을 다해 목숨을 살리는 의견(義犬)도 있다.

반려견의 지위에 오르지 못할망정 요즘을 풍요로운 때라 마당에 놓아기르는 누렁이도 애지중지한다. 끼니만 챙겨주는 게 아니다. 큼지막한 좋은 집에 들어 편히 잠자게 하고 함께 놀아주고 산책하고…. 술 거나하게 먹어 뒤뚱거리면서도 갈빗집에서 먹다 남은 뼈를 봉지에 담고 와 먹이는 주인장의 지극 정성이라니. 

그런다고 개가 하는 일이 뭐가 있는가 말이다. 그리 늘어지기만 하니, ‘개 팔자 상팔자’라 한 게 맞다. / 김길웅 시인·수필가·칼럼니스트

동보(東甫) 김길웅 선생은 국어교사로서, 중등교장을 끝으로 교단을 떠날 때까지 수십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1993년 시인, 수필가로 등단했다. 문학평론가이자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칩거하면서 수필, 시, 평론과 씨름한 일화는 그의 열정과 집념을 짐작케한다. 제주수필문학회, 제주문인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대한문학대상, 한국문인상 본상, 제주도문화상(예술부문)을 수상했다. 수필집 <마음자리>, 시집 <텅 빈 부재>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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