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웅의 지금 제주는] (10) 국책사업 내세운 공권력 남용, 아직 '현재진행형'

최근 경찰청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가 제주해군기지 건설 사건의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인권침해 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경찰개혁위원회의 권고안을 경찰청이 수용하여 지난 2017년 8월 발족한 한시적인 위원회다. 진상조사위 활동은 경찰권 행사과정에서 인권침해가 있었거나 의심이 되는 사건, 인권침해 진정사건, 재심에서 무죄가 선고된 사건 등을 선정해 진상조사를 진행했다. 제주해군기지 건설 사건과 용산참사, 쌍용자동차 파업진압, 밀양 송전탑건설 사건,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 등이 포함되었다.

이번에 발표된 제주해군기지 사건의 조사결과는 개별적인 인권침해 사건을 넘어 조직적인 국가폭력이 자행된 사실이 낱낱이 드러났다. 공권력에 의한 불법·탈법 행위는 물론이고, 해군기지 강행을 위한 음모와 정치공작이 난무했다. 해군기지 입지선정 과정부터 공정성과 절차적 정당성은 결여되었다. 강정마을 주민들의 주민투표 등 자기결정권 행사는 공권력의 공작과 음모로 무참히 짓밟혔다.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주민들에 대한 해군과 경찰의 공권력 행사는 폭력 수준이었다. 국책사업이라는 미명하에 주민의 인권은 없었고, 민주주의도 없었다. 그리고 이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국가폭력으로 쌓아 올린 제주해군기지

진상조사위의 조사결과 해군기지 건설 강행을 위해 청와대를 비롯해 대한민국의 국가권력이 총 동원되어 공권력 남용과 국가폭력이 자행되었다. 2012년 3월에 작성된 ‘사이버사령부 관련 BH 협조회의 결과’라는 제목의 문건에는 청와대가 제주해군기지에 대한 집중적인 사이버 대응을 요구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후 사이버사령부의 ‘댓글공작’은 그해 대선개입으로까지 이어졌다. 청와대와 국방부의 여론조작뿐만 아니라 경찰 역시 당시 경찰청장의 지시에 따라 조직적으로 여론조작을 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제주도와 제주도의회의 행정적 절차상에도 심각한 문제가 재차 확인되었다. 당시 제주도환경영향평가심의위원회는 격론을 벌였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하지만 3일 후 주말에 급작스럽게 ‘보완회의’ 형식으로 회의를 소집해 통과시켰다. 절대보전지역 해제의 경우 당시 구성지 도의회 부의장이 직권으로 상정해 날치기 처리를 하였다. 그 과정에 개회 성원확인 생략, 심사보고 및 질의·토론 절차 무시, 일사부재리 원칙 훼손, 기명전자투표 방식 불이행 등의 문제가 확인됐다. 강정 일대 공유수면매립 동의과정 역시 제주도지역연안관리심의위원회 위원 15명 중에 당연직 위원 9명 모두 현직 공무원이라는 점도 공정성의 문제를 훼손한 사안이었다. 

이 외에도 언급해야 할 사안들은 너무나도 많다. 결론적으로 강정마을에 들어선 제주해군기지는 국가가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국민의 인권을 짓밟으며 만들어낸 국가폭력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진상조사위는 정부차원의 사과와 진상규명, 공공사업 추진 시 갈등 조정을 위한 법·제도 마련을 촉구했다. 제주도의 사과와 유사사례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경찰청의 조치도 권고했다. 관련기관의 비협조와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얻어낸 결과인 만큼 이번에는 정부가 나서서 아직 확인되지 않은 추가적인 사안들까지 명명백백히 진상을 규명해야 할 차례다. 나아가 민주주의를 말살한 불의의 산물인 제주해군기지를 어떻게 해야 할지도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

제2공항으로 이어지는 공권력 남용

제주해군기지에 이어 추진되고 있는 국책사업인 제주제2공항 건설계획에 대해서도 절차적 민주주의 훼손과 공권력 남용을 경계해야 한다. 이미 입지선정과정의 절차적 정당성은 크게 훼손된 상황이지만 국토부는 이를 무시하고 강행 의지를 비치고 있다. 성산 후보지 선정을 위해 특정 후보지 점수를 고의로 조작한 정황이 확인되고, 현 제주공항 활용방안에 대한 검토결과를 숨겨 왔던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제주도는 피해지역 주민의 권리와 자기결정권을 보호하기는커녕 사업추진에만 관심을 가질 뿐이다. 제2공항 예정지역 출신 공무원들을 지역으로 보내 찬성여론을 조직하도록 하고 있다는 얘기까지 심심찮게 들린다. 국토부가 사전타당성 용역결과를 발표할 당시 제주도는 도내 전역의 자생단체들에게 제2공항 건설 환영 현수막을 게시하도록 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원희룡 지사 지지자들이 제2공항 찬성 관변집회 참석을 독려하며 여론을 호도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경찰은 제2공항 관련 공청회 장소에서 마저 채증을 일삼으며 스스로 불법행위를 자초하고 있다. 그리고 제주도지사 산하의 자치경찰은 관련 공청회 및 설명회 장소에 난입해 본연의 업무와 무관하게 주민들을 통제하고 주민들의 활동을 방해하고 있다. 이미 강정마을의 제주해군기지 강행 초기에 벌어진 일들이 그대로 재연되고 있다.

제주해군기지 건설사업과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제주제2공항 건설계획을 보면서 과연 국가란 무엇이고 정의로운 국가는 실현될 수 없는지 자문하게 된다. 국가가 행하는 폭력이 합법화되고, 주민의 권리와 인권이 국가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짓밟힌다면 이는 과연 정의로운 국가인가. 제발 제주제2공항 건설계획이 제주해군기지의 가까운 미래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 이영웅 제주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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