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시선] 제도개선, 제주도 ‘머뭇’-도의회 ‘앞장’ 씁쓸

4월23일 제주도의회에서 카지노 관련 정책 토론회가 열렸다. 주제는 ‘카지노 대형화 이대로 좋은가?’. 갈수록 몸집을 불려가는 제주도내 카지노에 문제의식을 느낀 도의회가 마련한 자리였다. 찬반 격론이 벌어지는 와중에 찬성 쪽에서 대형화는 세계적인 추세라며 해외 사례를 소개했다. 일본에서 복합리조트 법안(카지노 법안)이 통과된 것도 이러한 흐름을 거스를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과연 그럴까?    

카지노에 관한 한 난 문외한에 가깝다. 어쭙잖은 식견으로 ‘전문가’들의 주장을 반박할 입장이 못된다. 하나 합리적 의심까지 떨쳐버릴 수는 없었다.    

팩트 체크를 해봤다. 당시 일본 국민의 76%가 법안 통과에 반대했다는 여론조사(아사히신문)가 눈에 띄었다. 그럼에도 연립 여당인 자민·공명당의 기세에 눌려 반대 측은 힘을 쓰지 못했다. 여기에는 누구나 한번쯤 들어봤을 미국 카지노 업체들의 집요한 로비가 작용했다. 정치후원금은 기본이었다. 업체들은 정·관계 거물들을 자문, 고문 등으로 영입했다. 아베 신조 총리와 아소 다로 부총리도 ‘카지노 의련(議聯)’ 최고 고문을 지냈다고 하니 끈끈한 유대를 읽을 수 있다. 이처럼 카지노 법안에는 정부·여당과 재계, 글로벌 자본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었던 것이다.   

오랜기간 ‘파친코 천국’으로 도박 중독 환자를 양산한 일본에서 카지노 법안 반대가 우세한 것도 따지고 보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사정이 이렇다면 적어도 일본 만큼은 ‘세계적 추세’를 갖다 붙이기에는 멋쩍은 구석이 있다.   

지난해 원희룡 도정은 카지노 문제로 홍역을 치렀다. 2월21일 ‘랜딩카지노 영업장 소재지 및 면적 변경 허가’로 사달이 났다. 지방선거를 불과 3개월여 앞둔 때였다. 심판론이 대두됐다. 

그럴만했다. 랜딩카지노는 영업장을 이전하면서 면적을 7배 가까이 늘렸다. 단숨에 전국 2위로 도약했다. 기존 카지노를 인수한 직후였다. 신규 허가가 막히자 일종의 우회로를 택한 것이었다. 허가 일주일 전 쯤 규제책을 마련하라는 제주도의회 의견은 무색해졌다.   

시민사회 등은 이를 카지노 대형화의 신호탄으로 받아들였다. 청정 제주가 도박공화국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해졌다. 기우가 아니었다. ‘사업권 인수→확장 이전’ 방식으로 무한정 덩치를 키우더라도 막을 도리가 없었다. 제도가 정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제주에 진출한 외국자본, 특히 중국계 자본은 이 점을 파고들었다. 이미 도내 외국인카지노 8곳 중 6곳은 중국 등 외국자본에 넘어갔다. 카지노에 눈독을 들이는 사업장은 지금도 줄지어 있다. 

‘제주의 마천루’를 표방한 드림타워 사업자도 지난해 7월 중문관광단지에 있는 카지노를 인수해 이전 준비를 마친 상태다. 드림타워는 중국 녹지그룹과 롯데관광개발이 함께 추진하는 프로젝트다.   

랜딩카지노 허가 당시 제주도 역시 눈치를 보는 듯 했다. 그만큼 여론이 좋지 않았다. 여러 가지 제도개선 계획을 발표했다. ‘카지노업 변경허가 제한 규정’ 마련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아직까지 이렇다할 후속 조치가 없다. 국회에 제출된 관광진흥법 개정안에 내심 기대는 것 같으나, 수년째 잠만 자고 있다. 개정안에는 제주도가 지난해 2월 내놓은 제도개선 사항과 비슷한 내용들이 담겼다. 

제주도가 자체적으로 ‘카지노산업 영향평가제도 마련을 위한 연구용역’을 벌이고는 있으나 어떻게 진척되고 있는지 소식이 없다. 당초 이 용역은 작년 9월부터 올해 2월까지로 잡혔다.

그동안 원 지사는 “세계적인 수준의 관리감독 체계가 구축되기 전까지 신규 허가는 내주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그렇다고 획기적으로 더 나아간 것도 없다. 

“카지노면적 총량제에 원칙적으로 찬성한다”(2018년 9월7일 도정질문)거나 드림타워 카지노 허가에 대해 우회적으로 부정적인 견해(2018년 9월4일 본회의)를 밝혔을 뿐이다. 그 사이 외국자본들은 카지노 몸집을 불리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였다. 

보다 못했는지 도의회가 나섰다. 더불어민주당 이상봉 의원이 총대를 멨다. 올초 ‘제주도 카지노업 관리 및 감독에 관한 조례’ 개정안을 발의했다. 허가 사항인 영업소 소재지 변경을 해당 건물의 대수선, 재건축, 멸실 등 불가항력에 의한 경우로 한정한 게 핵심이다. 그 밖의 사유로 인한 소재지 변경은 신규허가 요건 및 절차를 따르도록 했다. 당연히 그 밖의 사유에는 사업권 인수도 들어간다. 당분간 신규허가는 없다는게 도정 방침이고 보면, ‘꼼수 이전’을 원천봉쇄하겠다는 얘기다. 

이 개정안이 지난 10일 시작된 임시회에 상정됐다. 개정안 발의에는 민주당 뿐 아니라 자유한국당, 정의당, 교육의원까지 18명이 참여했다. 현재 재적의원이 42명이므로 의회 통과는 어렵지 않아 보인다. 

입법예고 후 개정안은 다소 수정됐다. ‘불가항력에 의한 경우’에 카지노 건물주의 과도한 임대조건 요구에 따른 불가피한 임대계약 만료 등을 추가했다. 이른바 갑질 피해는 구제해주겠다는 것이다. 업계 의견이 반영됐다. 또 영업소 소재지를 변경할 때 당초 허가면적의 10% 이내에서 늘리는 것을 허용하도록 했다. 

문제는 제주도의 태도다. 내부적으로 재의(再議) 요구 카드를 만지작거린다는 얘기가 나온다. 취지에는 공감하나 상위법(관광진흥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한차례 전력이 있다. 지난해 1월28일 같은 조례 개정안에 재의를 요구했다. 그 때는 영업장 면적을 기존 보다 2배 이상 확대할 경우 도지사가 변경 허가를 제한할 수 있도록 한 내용이 쟁점이었다.    

정작 관광진흥법 소관 부처인 문화관광체육부는 이미 관련 권한을 제주도지사에게 이양했다고 밝혀 파문이 일기도 했다. 결국 제주도는 조례 개정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이번에도 제주도는 비슷한 입장이라고 한다. 이쯤되면 재의 요구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나 다름없다. 물론 담당 국장은 12일 의회에 나와 재의 요구를 ‘공식적으로’ 언급한 바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여론이 나쁠 땐 제도개선을 약속해놓고 우물쭈물하다가 도의회가 치고 나가자 딴지(?)를 거는 것은 이율배반적이다. 언제 통과될지도 모르는 관광진흥법 개정에만 목을 매는 것도 너무 무책임하다. 자금력을 앞세운 사업자들은 이 순간에도 제도적 허점을 파고들게 뻔하다. <논설주간/상임이사>

* 소리시선(視線) /  ‘소리시선’ 코너는 말 그대로 독립언론 [제주의소리] 입장과 지향점을 녹여낸 칼럼란입니다. 논설위원들이 집필하는 ‘사설(社說)’ 성격의 칼럼으로 매주 수요일 정기적으로 독자들을 찾아 갑니다. 주요 현안에 따라 수요일 외에도 비정기 게재될 수 있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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