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가 보낸 청구서②] 개발의 광풍 앞에서 울고 있는 '절울이'

제주도에서 갈등이 끊이지 않습니다. 너무 많은 관광객 때문입니다. 제주도를 헐값에 소비한 우리는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이 기획은 제주도가 관광객에게 보내는 '청구서'입니다. [편집자 말]

 

제주도 남서쪽 끝에 바다로 불쑥 얼굴을 내밀고 있는 오름이 있다. '절울이'다. 지금은 송악산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지만 옛 명칭은 절울이다.

'절'은 '물결'을 뜻하는 제주어로, 절울이는 물결이 운다는 뜻이다. 바다 물결이 산허리 절벽에 부딪쳐 우레같이 울린다는 뜻이라고 한다. 절울이라는 애달픈 명칭처럼 송악산에는 예부터 슬픈 이야기들이 여럿 전해 내려온다. 절벽에 부딪쳐 우는 물결의 울음은 이들 비화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구슬픈 노래이기도 하다.

송악산 정상에 오르면 송악산 자체의 장엄함에 감탄하게 된다. 김종철 선생은 <오름나그네>에서 지금 막 화산분화가 그친 듯한 송악산의 모습을 이렇게 전했다.

"산정에 올라서는 순간, 아! 하는 탄성과 함께 야릇한 충격이 스친다. 불기둥을 솟구치며 연출되던 지구의 대드라마의 생생한 무대가 눈앞에 있다."

 

절경 중의 절경 

출처=제주올레, 오마이뉴스.
제주올레길 중에서도 송악산을 지나는 10코스는 풍광이 좋기로 소문났다. 출처=제주올레, 오마이뉴스.

주변 경관도 절경이다. 남쪽으로 검푸른 망망대해가 펼쳐져 있고, 폴짝 뛰면 건널 것 같은 가파도와 마라도가 평평한 징검다리처럼 옥빛 바다 위에 떠 있다. 돌아서 북쪽을 바라보면 멀리 한라산 백록담이 온 섬을 내려다보며 앉아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 아래로 날개를 편 박쥐 형상의 단산과 서 있는 형태가 특이한 산방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유람선과 어선들이 오고 가는 형제섬도 손 내밀면 잡힐 듯하다.

송악산은 화산활동을 거친 제주의 오름 중에서도 이중 폭발을 거쳐 만들어진 이중 분화구를 갖고 있는 흔치 않은 오름이다. 먼저 생성된 큰 분화구 안에 두 번째 폭발로 만들어진 제2분화구가 형성된 구조다. 화산체를 구성하는 요소들도 뚜렷하고 완전한 형태를 하고 있어 환경적·경관적 가치뿐만 아니라 학술적 가치도 매우 높게 평가된다.

송악산은 일제강점기의 아픈 상처들이 수없이 많은 곳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이 중국 침략전의 발판으로 삼았던 흔적들과 전쟁 말기 최후의 거점으로 이용했던 상흔이 곳곳에 널려있다. 지금도 송악산에 가면 산허리의 동쪽 해안을 돌며 파놓은 20여 개의 해안동굴이 남아있다. 송악산 주변에는 고사포대와 포진지, 비행장과 비행기 격납고 등이 산재해 있다. 또한 인근에는 제주4·3항쟁 당시 군인, 경찰 등 토벌대에 의해 주민들이 집단 학살되었던 현장인 섯알오름과 당시 희생자들을 모신 백조일손지묘가 있다.

송악산은 이 지역 마을이 생성된 이후 절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긴 시간 지역주민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해왔다. 그 자체만으로도 온전히 지켜져야 할 이유를 갖는다. 제주의 역사와 문화가 오롯이 배어 있을 뿐만 아니라 이곳의 경치는 제주의 대표 경관의 위상을 갖는 곳이기도 하다. 환경적·지질학적 가치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송악산은 대자본을 앞세운 제주개발의 광풍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개발의 광풍

1991년 제주도개발특별법 제정 반대를 외치는 도민들과 양용찬 열사의 죽음에도 제주를 개발의 도가니로 몰고 갈 제주특별법은 날치기 통과되었다. 곧이어 제주특별법에 근거하여 1994년에 수립된 제주도종합개발계획에 의해 송악산 일대가 관광지구로 지정되고, 다음해에는 송악산 유원지 지정이 고시된다. 송악산 개발을 위한 행정절차의 토대가 갖춰진 것이다.

그리고 1999년 송악산 개발을 위한 본격적인 민간투자가 시작되었다. 송악산 제1분화구에 호텔 및 숙박시설과 놀이·위락시설 등이 들어서고, 제2분화구에는 곤돌라를 건설하는 등의 내용을 담을 송악산관광지구 개발사업이 추진되었다. 환경단체와 시민들의 반발이 이어지면서 송악산 개발 논쟁은 지역사회의 중심 이슈로 급부상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개발사업 승인권한을 갖고 있는 제주도의 행보가 참으로 안타까웠다. 제주도는 송악산은 이중 분화구가 아니고 지질학적 가치도 없다며 송악산의 보전가치를 떨어뜨리기 위한 사실무근의 억지 주장을 이어갔다. 심지어 제주도청 간부 공무원은 송악산 개발의 문제를 지적하는 환경단체와 언론인을 상대로 악성댓글을 달아 형사처벌을 받기도 했다.

결국 행정당국의 비호 아래 송악산관광지구 개발사업은 시행승인이 나고, 공사 시작을 알리는 기공식까지 벌어졌다. 송악산의 화산체가 무너지고, 분화구가 훼손될 지경까지 이른 것이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절울이의 절규를 하늘도 들은 것일까. 사업자들의 내분으로 사업시행자와 투자자 간의 소송전이 벌어지고 공사는 진행될 수가 없었다. 결국 사업승인을 해줬던 행정당국은 2002년 8월 송악산 개발사업시행승인을 취소하기에 이른다.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송악산의 본 모습이 가까스로 지켜지게 되었다.

가까스로 지켜냈지만

그러나 이것도 잠시, 10여 년이 지나고 송악산은 이 지역 모슬포의 강한 바람만큼이나 거센 개발의 바람 앞에 다시 서게 된다. 2010년 전후로 저비용항공사들이 앞 다투어 제주노선 취항을 완료했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숫자의 관광객들이 제주를 찾게 되었다. 제주지역 관광의 규모는 양적으로 급속하게 팽창하기 시작했다. 부동산 거래도 활발해지고, 관광을 목적으로 한 개발사업들이 온 섬을 들쑤셨다. 경관 좋기로 소문난 송악산의 알짜배기 터도 예외가 아니었다.

중국계 자본인 '신해원 유한회사'는 송악산을 포함한 이 일대 토지를 대거 매입하고 2013년부터 송악산 유원지 개발사업에 나섰다. 사업자는 "뉴오션타운 조성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송악산 일대 19만1950㎡ 면적에 약 3700억 원을 투입하여 460여 실 규모의 호텔과 휴양문화·상업시설을 조성한다는 계획이었다. 허나 사업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한 차례 개발과 보전의 논쟁을 벌이면서 지역사회에서는 송악산 일대의 보전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개발반대의 목소리가 이어지면서 개발사업 승인절차는 지지부진한 상황이었다.

지난 1월 송악산 뉴오션타운 개발사업에 대한 제주도 환경영향평가심의위원회가 개최됐다. 보통 환경영향평가 협의권한은 환경부장관이 갖고 있지만 제주의 경우는 제주특별법에 의해 제주도지사가 그 권한을 갖는다. 그동안 재심의 결정이 반복되면서 같은 안건으로 무려 다섯 번째 열리는 심의회의로, 개발사업 시행승인을 받기 위한 마지막 행정절차였다. 이에 앞서 제주도 경관심의위원회는 이 사업에 대해 4차례 보류 끝에 조건부 의결한 바가 있다.

환경영향평가 심의의 쟁점은 다양했다. 우선 토지이용계획 중 호텔의 입지와 높이가 문제였다. 주변 경관과 어울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업시행으로 이 지역 경관을 사실상 사유화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었다. 송악산 자락과 주변 알오름을 직접적으로 점유·훼손하면서 시설을 배치한 계획도 문제가 됐다. 공사과정에 인근 진지동굴의 붕괴와 훼손 우려도 지적되었다.

송악산 일대의 보전을 위협하는 여러 문제가 산재해 있었지만 환경영향평가 심의위원들의 평가·검토는 갈수록 무뎌지기만 했다. 결국 그동안 심의회의에서 재심의 결정을 내리며 요구한 보완내용도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채 환경영향평가는 통과되었다. 이제 송악산 개발을 위한 시행승인이 코앞까지 다가온 것이다. 남은 절차는 제주도 환경영향평가 조례에 따라 환경영향평가 협의내용에 대한 제주도의회의 동의 절차만 남았다.

송악산 개발에 대한 지역주민들의 의견도 갈린다. 사업지역의 일부 주민들은 사업추진과정에서부터 사업자와 상생관계를 내세우며 송악산 개발에 대해 찬성입장을 밝혀왔다.

하지만 환경영향평가 심의가 통과된 이후 송악산 훼손을 우려하는 이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 모임을 만들고 조직적으로 개발사업 반대운동에 나섰다. 최근에는 뉴오션타운 개발사업을 반대하는 1만인 서명지를 모아 기자회견도 열었다. 지역주민들이 직접 마을의 환경보전운동에 나서면서 지역사회의 분위기도 송악산 보전에 힘을 싣는 분위기이다.

원희룡의 선택은

출처=제주올레, 오마이뉴스.
제주올레길 중에서도 송악산을 지나는 10코스는 풍광이 좋기로 소문났다. 출처=제주올레, 오마이뉴스.

제주도가 환경영향평가 협의내용에 대한 동의안을 아직 제주도의회에 상정하지는 않았지만 조만간 제출될 것으로 보인다. 제주도가 지금까지 진행한 행정절차를 보면 사업승인을 염두에 둔 수순 밟기인 듯하다.

지난해 지방선거 당시 원희룡 지사는 후보 정책공약에서 송악산 유원지 개발사업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었다. 그러나 당선 이후 행보는 그렇지가 않다. 최근 지역건설경기 활성화를 위한 건설업체와 간담회를 갖고, 더 많은 관광객 수용을 위한 제주제2공항 건설계획에 적극적이다. 제주관광의 질적 전환은 입으로만 말할 뿐 제주도정의 정책은 여전히 제주관광의 규모 확대와 양적 팽창이다.

현재 제주는 국토교통부의 제주제2공항 건설계획 추진으로 깊은 갈등을 빚고 있다. 수용능력의 한계를 보이는 제주에 또 다른 공항 건설로 과잉관광과 난개발, 생활환경 악화로 이어질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제2의, 제3의 송악산 개발로 지역갈등은 커질 수밖에 없다.

관광객들이 제주을 찾는 이유는 제주의 아름답고 독특한 환경과 문화를 보고 체험하기 위해서다. 이러한 제주의 가치를 훼손하면서 관광객을 유치하고 관광산업을 키우겠다는 것은 이율배반이다. 절울이의 절규와 울음을 들어라. 송악산이 사라지고, 제주가 사라져 간다는 절울이의 경고를 들어라. / 이영웅 제주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와의 기사 제휴에 의해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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