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제주형 도시재생, 길을 묻다] (29) 권정우 탐라지예 건축사무소장
아이, 학부모, 지역주민과 머리 맞대며 치열한 부딪침 끝에 김영수도서관 짓다

제주북초등학교 안에 위치한 김영수도서관. ⓒ제주의소리
제주북초등학교 안에 위치한 김영수도서관. ⓒ제주의소리

권정우 탐라지예 건축사무소 소장의 설계로 새롭게 단장한 김영수도서관은 관사와 창고를 함께 활용한 연면적 365,03㎡의 지상 2층 건물이다. 열람실 한복판에 기와집이 들어앉아있는 독특한 구조다. 한 평 남짓한 방 5개가 장짓문을 두고 이어져 있고, 문을 열면 하나의 큰 방으로 합쳐진다.

2층 열람실의 특징은 목관아를 향해 크게 난 파노라마 창. 목관아가 한 눈에 들어오는 이 창 덕분에 화사하고 시원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동굴 같은 화장실, 기와를 얹은 담장, 계단 밑 비밀의 방 등 곳곳이 눈길을 끈다.

김영수도서관을 주목받게 하는 건 ‘건물이 새롭게 리모델링 됐다’는 것 이상이다. 도시재생이 본격화한 제주시 원도심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는 하나의 사건이면서, 새로운 연결의 가능성을 싹틔운 것으로 평가받는다.

김영수도서관 1층. 커뮤니티 공간 역할을 할 이 곳에서는 한옥이 주는 편안한 공간감이 느껴진다. ⓒ제주의소리
김영수도서관 1층. 커뮤니티 공간 역할을 할 이 곳에서는 한옥이 주는 편안한 공간감이 느껴진다. ⓒ제주의소리

제주시 원도심은 제주의 역사를 품은 곳이지만 지금은 활기가 떨어져 아이들을 키우기 좋은 곳으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아이들과 손잡고 갈 수 있는 마을도서관’이 숙원사업이었던 이유다.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꼭 필요한 공간인 도서관은 ‘살고 싶은 원도심’으로 만드는 전제조건인 셈이다.

권 소장이 창고를 뒤져가며 이 건물이 처음 지어질 때 자료를 찾아본 것도, 타 지역에서 주목받는 공공도서관을 찾아다닌 것도, 공간 구성 하나를 위해 고재를 찾고 장인들과 협업한 것도 원도심 주민들의 기대와 바람을 담은 곳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제주시 원도심 도시재생 1호 결과물이면서, 앞으로 많은 변화를 가능하게 할 거점이 될 거라는 기대가 높다.

권 소장은 김영수도서관 프로젝트의 설계와 감리 역할을 맡았지만 사실상 그의 열정은 시공 과정에서도 빛이 났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권정우 탐라지예 건축사사무소 소장. ⓒ제주의소리
권정우 탐라지예 건축사사무소 소장. ⓒ제주의소리

- 김영수도서관이 마을도서관으로 재탄생한 것을 두고 보람이 클 것 같다. 공공건축이면서도 새롭고 다양한 시도를 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유휴공간을 활용했다는 취지도 있지만, 학교 내 공간을 사회적으로 여는 작업이었다는 게 의미가 크다. 방과후 갈 곳이 없는 아이들을 보살펴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일과 시간 이후에는 동네사람들이 이용하는 공간으로 만들 수 있다. 교장선생님의 의지가 컸다.

처음에 와서 보니 관사와 창고가 다 잠겨있더라. 공간이 있는데 놀고 있던 거다. 사실 다 새로 지으려고만 하고, 일단 있는 건물을 쓸어버리려고 하는데, 찾아보면 안 쓰는 공간이지만 건축가가 좀 만지면, 해석을 다시하면 좋은 공간으로 만들 수 있다.

- 과거의 모습을 최대한 구현한 것인가? 설계 과정에서 전반적으로 어디에 초점을 맞췄나.

옛날 박제된 모습을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 아닌 어떤 모티브를 가지고 하이브리드 느낌의 공간을 만드는 데 관심이 있다. 일단 지금 우리 시대에 기능적으로 편해야 될 게 아닌가? 그래서 절충한 느낌으로 만들었다. 바로 앞에 있는 목관아, 관덕정은 권위의 상징이다. 민가처럼 한옥을 만들어 그 위계를 낮추는 작업을 했다. 살창 하나를 고르는 데도 격식이 빠진 타입을 골랐다. 이런 것 하나하나가 건물의 성격을, 캐릭터를 만드는 데 중요하다.

한옥이 주는 기분 좋은 공간감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표준화된 아파트 규격의 공간에서 살고 있어서 아이들은 그런 공간감을 느끼기 힘들다. 그래서 1층에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사랑방 다섯 칸을 집어넣었다. 여기 앉아보면 편안함이 느껴진다.

(도서관과 연결된 관사의 경우)건들지 말자고 해서 되도록 그대로 둔거다. 이 흔적을 그대로 남겨서 보여주자는 취지로 일부만 보수했다.

- 고재를 구하느라 애를 먹고, 장인들과의 협업을 했다고도 들었다. 힘든 길을 택한 것 같다.

오래된 공간감을 나타낼 수 있는 고재를 찾기 위해 인천도 두 번 갔는데, 맘에 드는 게 있으면 수입산에 너무 비쌌다. 다행히 6년을 재워놓은 강원도 참나무를 구했다. 타이밍이 맞았다.

전통 한옥은 기둥과 보가 만날 때 접합하고 이음을 한다. 나무를 다 깎아서 맞춘다. 다행히 경복궁 수리를 하다 잠시 쉬는 기간에 있는 대목장(大木匠, 큰 건축물을 짓는 목공 명인)을 모실 수 있었다. 이 분이 뼈다귀를 다 짜고 가셨다. 아무 말 없이 일주일 동안 나무를 깎았는데, 나중에 다른 목수들에게 들어보니 ‘이건 미친짓이었다’고 하더라. 참나무는 매우 단단한 나무인데 투덜거리지도 않고 아무 말 없이 짜맞춰준 거다.

기와 담장 아래로 아이들이 오고갈 수 있는 통로가 눈에 띈다. 김영수도서관 곳곳에는 아이들이 편하게 놀 수 있는 공간들이 있다. ⓒ제주의소리
기와 담장 아래로 아이들이 오고갈 수 있는 통로가 눈에 띈다. 김영수도서관 곳곳에는 아이들이 편하게 놀 수 있는 공간들이 있다. ⓒ제주의소리
김영수도서관 2층 파노라마창. 창 밖의 망경루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제주의소리
김영수도서관 2층 파노라마창. 창 밖의 망경루가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제주의소리

- 통상적이고 편한 방법 대신 어려운 길을 택했다. 이렇게 되면 아무래도 부담이 커지는 것 아닌가?

건축가의 의지다. 관급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어떤 건축을 하겠다는 마인드가 집을 바꾸는 거다. 그게 진짜 건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배웠다.

- 아이들이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놀 수 있는’ 도서관이라는 특징이 눈에 띈다.

도서관은 고정적인 자리에 앉아서 조용히 책을 보는 곳이라는 개념이 바뀌고 있다. 편하게 와서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복합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서울 한내 지혜의 숲 도서관에는 ‘우리 도서관은 조용히 책 읽는 도서관이 아닙니다’라고 적혀있다. 이걸 보고 신선하다고 생각했다.

- 설계와 건축 과정에서 학교, 학부모, 마을주민들과 끊임없이 논의를 이어왔다고 들었다. 공공건축에서 찾기 힘든 사례다.

설계를 했는데 과정에서 부딪침들이 있었다.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을 구성했지만 학부모들과의 논의 과정에서 난색을 표하는 분들도 있었다. 건축가는 이 과정에서 건축주의 목소리를 적절하게 조합시켜야 하는 역할이 있다. 이 과정이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건축은 ‘도면 그려서 던져주고 납품하면 끝’이 많다. 재미나 감흥이 없고 좋은 작업들이 안 나온다. 이 구도를 바꾸지 못하면 공공건축이 발전할 수 없다. 이번 김영수도서관은 그런 구도가 아닌 다른 구도가 섞이니까 가능했던 거다. 서로 다른 부서가 같이 판을 짜니까 가능했던 일이다.

공공건축의 경우 똑같이 돈을 들이면 좋아져야 될 게 아닌가, 감흥이 있어야 하는 데 그런 게 없다. 총괄건축가(공공건축물과 도시계획 전반 자문 역할), 공공건축가(건축 전 과정에 참여해 공공건축물의 품격을 높이는 역할)와 같은 제도를 많이 하고 있는데 제주에서는 반대가 많다.

- 설계 과정에서 가장 고심한 공간이 있다면?

2층 열람실의 파노라마뷰를 연구했다. 앞에 좋은 풍경(망경루, 벚나무 등)이 있는데 정작 학교를 이용하는 아이들은 이 풍경을 못 느낀다는 거다. 그래서 애들에게 이 풍경을 모두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2층에서 외부 옥상으로 나가면 밖을 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 김영수도서관은 하나의 리모델링 프로젝트일 뿐 아니라 제주시 원도심 도시재생의 하나의 기점이라고 할 수 있는 공공건축물이기도 하다. 남다른 고민이 있었을 법 하다. 더군다나 이 곳 제주시 원도심은 점점 아이들이 줄고, 인구가 빠져나가는 활력이 떨어진 곳으로 여겨진다.

도서관 같은 기본적인 인프라가 없는데 누가 선뜻 와서 살겠나. 정주환경 개선이라는 게 아파트가 많이 들어오는 것 필요하긴 하지만, 사람들이 와서 ‘살기 좋다’고 느낄 수 있는 기본 인프라가 있어야 한다.

흔히 도시재생, 원도심 활성화를 얘기할 때 토목사업처럼 확장하는 경우가 많다. 길바닥에 돈을 그냥 쏟아 붓는 건 별로 의미가 없다고 본다. 처음엔 ‘깔끔하네’ 정도의 느낌이 들겠지만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피부로 와닿을 수 있는 감흥은 없다.

여기 사람이 올 수 있는 콘텐츠가 없다. 올 수 있는 곳을 만드는 작업을 누군가 해야한다. 제주북초 안에 100주년 기념관이 있는데 공간이 놀고 있다. 안에 좋은 자료가 많은데, 이걸 잘 연결해서 오픈하면 좋겠다. 아이들이 매년 만들어내는 책자 등 나오는 콘텐츠들이 많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구경할 수 있다.

김영수도서관은 옛 관사와도 연결된 구조다. 과거 모습을 살린 이 방에서는 가족들이 모여 편하게 등을 기대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제주의소리
김영수도서관은 옛 관사와도 연결된 구조다. 과거 모습을 살린 이 방에서는 가족들이 모여 편하게 등을 기대 책을 읽고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제주의소리
권정우 탐라지예 건축사사무소 소장. ⓒ제주의소리
권정우 탐라지예 건축사사무소 소장. ⓒ제주의소리

- 제주시 원도심은 도시재생이 본격화했다. 김영수도서관이 중요한 기점이 된 것 같다. 단순히 공간 하나가 리모델링 된 게 아니라, 도시재생의 관점에서도 의미있는 연결점이 됐을 것으로 보인다.

학교가 중요한, 원도심의 핵이다. 기회들을 잘 포착하면 더 좋은 (사람들을 오게 만들)거리가 나올 수 있다. 개관 전 회의적이었던 분들도 분위기가 점점 올라오니 ‘이제 그 이유를 알겠다’고 하신다. 김영수도서관이 어떤 중요한 시발점이 된 것은 분명하다. 이제 이게 진짜 마중물이 될 수 있어야 한다.

- 김영수도서관을 무엇으로 채웠으면 하나?

아이와 아빠가 하룻밤 자고, 아침에 아빠가 짜파게티를 끓여주는 활동과 같은 다양한 프로그램이 열렸으면 한다. 또 주민들이 슬리퍼와 잠옷 차림으로 여러 가지를 논의할 수 있는 공간,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동네의 사랑방’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한다.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