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후 3시 제주지방법원 제201호 법정에서 검찰은 '제주판 살인의 추억'으로 불리는 제주 보육교사 살인사건 피고인 박모(51)씨가 범인일 수밖에 없는 세 가지 이유를 나열했다.

2009년 2월 사건 발생 당시에도 용의자 중 한명이었던 그가 법정에 서기까지 10년의 시간이 걸렸다. 택시기사였던 박씨가 진짜 범인인지 검찰의 공소사실을 토대로 재구성해 봤다.

▲ 피해자 사망 시기 혼선 ‘2월1일’ vs ‘2월7일’...동물사체 실험으로 실종 당일 2월1일 결론

2009년 2월8일 오후 1시50분 제주시 애월읍 고내오름 옆 농업용 배수로에서 이모(당시 27세)씨가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하의는 벗겨진 채 옆으로 누운 상태였다.

부검 결과 발견시점으로 기준 14시간 이내(2월7일) 사망했다는 부검의 소견이 나왔다. 당시 대기온도는 9.2도, 시신의 직장온도는 13.0도로 시신의 온도가 3.8도 더 높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시신은 야외에서 24시간 이상 노출되면 체내 온도가 대기 온도와 같아진다. 반면 경찰은 여러 정황에 비춰 실종 당일(2월1일) 피해 여성이 사망했다며 다른 의견을 냈다.

수사 초기부터 혼선이 빚어졌다. 사망 시점은 용의자를 특정 짓는데 결정적인 요소였다. 시점이 달라지면 전혀 다른 용의자가 등장할 수 있다. 박씨의 7일 행적은 알리바이가 확실했다.

경찰은 2018년 1월29일부터 3월2일까지 범행 현장에서 동물 사체를 이용해 체온변화 실험을 진행했다. 범행 당시 기온도 습도, 피의자의 의복까지 동일한 조건을 만들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무스탕을 입힌 돼지의 사체 내부 온도가 대기 온도보다 낮아졌다가 다시 높아지는 이상 현상이 나타났다. 일반적 법의학 상식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경찰은 이씨의 사망시점을 2월7일 아닌 2월1일로 특정 짓고 2018년 5월16일 경북 영주시에서 유력 용의자였던 박씨를 긴급 체포한다.

▲ 피해자 동선과 함께한 의문의 택시...박씨의 흰색 NF쏘나타와 유사한 차량 곳곳서 등장

2009년 2월1일 오전 3시쯤 이씨는 제주시 용담동에서 콜택시에 전화를 했지만 차량은 배치되지 않았다. 1시간 뒤 박씨의 휴대전화 신호는 제주시 애월 광령리 기지국에서 사라진다.

이씨는 용담동의 남자친구 집에서 나설 때 항상 택시를 이용해 집으로 향했다. 당시 남자친구 집에서 거주지인 제주시 애월읍 방향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용해로를 반드시 지나야 했다.

검찰이 이씨의 통화내역을 토대로 추정한 택시 탑승 시점은 2009년 2월1일 오전 3시8분이다. 1분18분초 뒤 차량이 반드시 지나야 하는 용해로 삼거리 CCTV에 쏘나타 택시가 등장했다.

당시 애월로 향하는 길목인 외도 일주도로에는 차량번호 자동판독기(AVNI)가 설치돼 있었다. 이날 오전 3시14분 AVNI에는 박씨의 차량인 60바58**의 흰색 NF쏘나타가 찍혔다.

외도 AVNI는 용해로삼거리 CCTV와 6.4km 떨어져 있었다. 시간차 5분은 새벽 시간대 일반 택시의 이동 시간과 거의 일치했다.

박씨의 택시가 찍힌 시간을 기준으로 1시간 이내 외도 AVNI를 통과한 차량은 모두 33대였다. 나머지 32대의 알리바이는 확인이 됐다. 이중 흰색 NF쏘나타 차량도 박씨가 유일했다.

오전 3시46분 시신이 발견된 지점을 기준으로 농협유통센터를 지나 제주시로 돌아가는 길목에 또 차량 1대가 포착됐다. 펜션 CCTV에 찍힌 차량은 노란색 캡의 흰색 NF쏘나타였다.

2009년 당시 제주지역 영업택시 중 노란색 캡이 달린 흰색 NF소나타는 18대에 불과했다. 이중 외도 AVNI를 거치고 알리바이까지 명확하지 않은 기사는 사실상 박씨 뿐이었다.

▲ 박씨의 택시에 이씨가 탑승했는지 최대 쟁점...군집을 이루는 미세증거 ‘실오라기’ 검증

검찰은 피해자의 사망 시점과 범행 당일 박씨의 이동 경로를 특정 짓기 위해 법의학과 과학기술을 총동원했다. 나머지 열쇠는 두 사람이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었다.

피해자의 시신에서는 박씨의 DNA가 나오지 않았다. 택시에도 피해자의 DNA는 없었다. 시신 발견 지점에서 여러 개의 담배꽁초가 발견됐지만 이 사건과는 관련이 없었다.

여기서 미세증거가 등장했다. 2009년 2월 검찰은 박씨의 택시 좌석과 트렁크에서 섬유조직 여러 개를 발견했다. 피해자의 옷에서도 의문의 실오라기들이 등장했다.

2009년 당시에는 미세섬유가 일반적 공산품의 섬유로 판단해 동일성 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10년이 지난 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두 사람의 옷에서 유의미한 결과물을 도출했다.

노출된 적이 없는 여성의 상의와 치마에서 박씨의 남방과 유사한 진청색 섬유가 다수 발견됐다. 택시 운전석과 조수석에는 여성이 입던 무스탕의 목 부분 안쪽의 동물섬유가 확인됐다.

특히 동물섬유는 둥근 유리구슬 형태의 독특한 구조가 일치했다. 공장에서 다량 생산되는 면섬유와 달리 동물 털은 종에 따라 고유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검찰은 이를 근거로 두 사람 간 격렬한 접촉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했다. 피해 여성의 부검에서도 몸 곳곳에서 몸싸움으로 추정되는 외상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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